오늘날 죽음에 이르는 과정과 그 이후의 장례 절차는 정교한 ‘시스템’에 의해 진행된다. 우리 시대의 어른들은 가족들과 동떨어져 고독한 중환자실에서 삶을 마감하는 첫 세대가 되고 있다. 그리고 죽음에 이르는 절차와 사후에 남은 자식들이 수고하고 번거로운 일을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그들로서는 익숙지 않은, 화장을 선택하는 중이다.
오늘날의 노인들은 최소한 유년기를 농촌 공동체에서 성장한 세대다. 그들이 성장하던 무렵의 농촌 공동체에서 장례는 온 마을 사람들이 함께 치르는 의례였다. 엄격한 절차 속에서 마을 사람들 모두가 애도의 뜻을 강하게 드러냈다. 곡소리가 끊이지 않아야 했으며 꼬마 아이들도 상여 앞에서 만장을 들고 죽음 의례에 참여했다. 경북 영주에서도 소백산 기슭으로 한참을 들어가야 했던 내 고향에서, 초등학교 1학년 다닐 즈음에, 동네 어른이 운명하셔서 상여 앞에서 만장을 들고 걸었던 기억이 난다.
공동체 성원 모두의 애도와 의례 참여, 자식과 친지들의 비통함의 격렬한 표출, 따라서 혼자 고독하게 죽는 게 아니라 공동체 사이에서 혈연관계와 다를 바 없는 마을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자신이 나고 자란 고향의 뒷산에 묻혀 영면한다는 의식, 만약 그곳이 선영일 경우 앞서 간 조상님들의 발치 아래에 영원히 잠든다는 혈연적 의식 등이 옛 상례문화에는 존재했다.
그러나 오늘날 대도시에서는 이 같은 집합적 정서를 전혀 기대하기 어렵다. 비록 대도시라 해도 한 세대 전만 해도 동네 어귀에 누구네 집에 초상이 났다는 근조등이 내걸리기도 했었고, 더러는 아파트 주차장의 일부를 비워서 조문객을 맞기도 했는데, 이제는 그러한 일을 대형 병원에 딸린 장례식장이나 전문 장례식장에서 치르게 되었다.
경기도 고양시의 한 장례식장의 모습. | 정윤수
현대도시, 공동체적 전통 장례 불가능
다시, 내 경험에 한정하여 보건대, 1997년 겨울이 한 분기점이었다. 집안에 상이 나서 서울대병원의 옛 장례식장에서 일을 치르게 되었는데, 일가의 아주머니들이 직접 국을 끓이고 음식을 장만해 가며 조문객을 맞이했다. 그 무렵의 장례식장 건물은 너무 낡아서 난방이 제대로 되지 않아 집안 사람 중에 누군가가 회사 사무실에서 석유난로를 서너 대 가져오기도 했고, 조문을 위한 술과 안주도 근처 슈퍼에서 조달했다. 그 무렵 장례식장 부근의 슈퍼는 이런 일에 응하여 간단한 조문용품이나 술과 안주를 준비해놓기도 했다. 게다가 장례식장을 돌아다니면서 음식을 얻기도 하고 소란 피우지 않을 테니 몇 푼이라도 달라는 불한당도 있었다. 40대 서넛이 나타나서 쓰레기를 치운다, 장작을 피운다 하면서 부탁하지도 않은 일을 건성으로 하더니 돈을 요구했다. 그것 또한 그 시절의 민간 풍습이라 몇만원 쥐어줘서 다른 상가로 보낸 기억이 있다.
지금은 그런 일도 없고, 그런 공간도 없고, 그렇게들 온가족이 직접 국을 끓이면서 슬픈 가운데서 바삐 일을 하는 일은 사라졌다. 어떤 점에서 지금은 질병과 죽음에 대한 이미지가 매우 산뜻하게 처리되는 듯한 느낌이다. 신문에 실리는 추모공원 광고에서 텔레비전 드라마의 이미지들에 이르기까지 오열하고 통곡하는 풍경은 아주 드물다. 특히 대형 병원이 ‘장소 협찬’을 하는 드라마의 경우 응급실, VIP 입원실, 장례식장 등은 마치 특급 호텔의 부대시설처럼 근사하게 재현된다.
이는 기본적으로 대형 병원의 마케팅 때문이지만, 고통스러운 질병과 극단적인 죽음에 대하여 우리의 인식이 변화된 까닭도 분명히 있다. 현대 도시의 물리적 공간과 생활·문화 패턴이 전통 장례를 치르기에는 역부족인 상태다. 고밀도의 주택 환경과 핵가족 구성으로는 옛 농촌사회로부터 연원하는 공동체적 장례를 치를 수 없다. 대형 병원이나 전문 상조회사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오늘날 죽음에 이르는 과정과 그 이후의 장례 절차는 정교한 ‘시스템’에 의해 진행된다. 고인의 오랜 벗 중에 누군가가 호상을 맡는 일도 없어지고, 이것은 이렇게 하고 저것은 저렇게 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집안 어른도 거의 없다. 대형 장례식장과 전문 상조회사의 시스템이 간결하고 정확하게 진행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죽어가는 자의 고통이나 이를 함께하는 가족들의 슬픔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 모두가 고통스럽고 모두가 애통해한다. 다만 온 가족에게 둘러싸여 마지막 숨을 몰아쉬고 선영에 가서 묻힌다고 하는 문화는 거의 사라졌다.
요즘은 텔레비전 드라마에서도 슬픔에 잠긴 가족들을 보며 유언을 남기는 장면이 거의 사라졌다. 그 대신 생명 연장 장치에 의존한 채 중환자실에서 홀로 운명하는 모습이 더 자주 나온다. 드라마의 이러한 장면은 지금 우리 시대의 삶과 죽음을 어쩌면 제대로 묘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모든 죽음이 고통스럽고 비통한 것이지만 오늘날 우리 시대의 어른들은 가족들과 동떨어져 고독한 중환자실에서 삶을 마감하는 첫 세대가 되고 있다.
짐 되기 싫은 어른들의 고결한 결정
매장보다 화장률이 급속히 늘어난 추세도 같은 맥락의 일이다. 2010년 11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전국 16개 시·도에 거주하는 30세 이상 성인 남녀 3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79.3%가 화장을 선호한다고 답했다. 매장을 원한다는 답은 15.1%에 그쳤다. 아닌 게 아니라 보건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1991년의 화장률은 17.8%였으나 2005년 52.6%, 2011년 71.1% 등으로 증가했다. 대도시뿐만 아니라 농촌을 배경으로 하는 군소 도시에서도 사정은 비슷하다. 경남 남해군의 경우 화장률이 70%를 넘어섰고, 군민 1만5000명이 화장 서약까지 했다.
중요한 것은 죽음을 앞둔 노인들이 매장 대신 화장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이 세대는, 멀리는 일제 때 태어나 한국전쟁과 극단적인 가난을 견뎌냈다. ‘생존’ 자체가 삶의 유일한 목적이었던 세대였다. 집 한 채 장만하여 자식 교육을 어느 정도 해내는 것이 필사적인 목표였다. 죽음에 이르는 고통스러운 절차와 함께 사후에 남은 자식들이 수고스럽고 번거로운 일을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오늘의 노인 세대는, 그들로서는 익숙지 않은, 화장을 선택하는 중이다. 이는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겠다’는 결연하고도 엄숙한 우리 시대 어른들의 고결한 결정이다.
<정윤수 문화평론가>
![[오늘을 생각한다]](http://img.khan.co.kr/spko/ranking/weekly/140098/20240424110300_14009801.jpg)
그럼, 국민이 바뀌란 소리냐?
대통령 말씀에 또 답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