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로부터 온 편지]태평양전쟁 때 침몰한 ‘쓰시마호의 비극’

일본은 미군과의 전쟁을 대비하기 위해 오키나와의 학동 및 민간인을 일본 본토로 소개(疏開)하는 작전을 시작한다. 쓰시마호가 학동 826명, 일반 소개자 835명을 싣고 오키나와를 떠나 목적지인 가고시마를 향해 출발한 것은 1944년 8월 19일이었다.

전남 진도 연안에서 일어난 세월호 침몰사고와 학생들의 죽음을 생각하면서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평시에 일어난 해난사고에서도 이러하거니와, 분쟁을 포함한 비상시에 과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할 의지와 역량이 있는 것일까.

6586t급 여객선 세월호의 침몰사건을 목격하면서, 나는 아시아·태평양전쟁(1941~1945) 말기 오키나와에서 일어난 ‘쓰시마호(對馬丸) 사건’(1944)을 떠올렸다. 진주만 기습공격을 받은 직후 미국은 일본과의 전면전에 돌입했다. 중일전쟁이 교착상태에 빠지고, 미국이 원유와 석탄을 포함한 일본으로의 수출금지 정책을 밀어붙이자, 일본은 전쟁 수행에 필요한 자원과 에너지를 확보하기 위해 오키나와 남방의 동남아 국가를 침략했다.

미군의 일본 상륙을 막는 방파제 역할
개전 초기에는 필리핀과 말레이시아, 버마 등 당시 서구 열강의 식민지였던 동남아시아 각국을 빠른 속도로 점령해 나갔지만, 이것은 그동안 전쟁을 관망하고 있던 미국을 포함한 서방국가들에 아시아·태평양에서 일본과의 전쟁을 불가피하게 했다. 특히 유럽의 다른 국가들과는 달리 세계대전으로 인한 전쟁 피해를 본 바가 없는 미국이 적대국인 일본과 본격적인 전쟁을 벌이게 됨으로써,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하게 될 때까지, 아시아·태평양 전 지역은 세계대전의 광풍 속으로 끌려들어가게 된다.

미 해군 잠수함으로부터 피격돼 침몰하기 전 항해 중인 쓰시마호의 모습. / 쓰시마호 기념관

이 전쟁에서 일본의 패색이 짙어지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1944년 7월 7일 일본이 위임통치하고 있던 마리아나 제도 사이판 섬에서의 일본군의 패배일 것이다. 사이판에서 일본군은 “살아서 치욕을 겪지 마라”는 임전지침인 <전진훈>에 따라 전원 옥쇄(玉碎)의 운명 속에 노출된다. 이러한 전황을 보고받은 당시 도조 히테키 정권은 일본의 ‘절대 국방권’을 일본 본토와 한반도, 만주국 등으로 수정한다. 사이판이 함락되었다는 것은 연합군과의 ‘본토 결전’이 임박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일본 군부는 오키나와에 일본군 32군을 편성하여 미군의 본토 진격을 막기 위한 방파제로 간주하고 ‘장기소모전’ 전략을 구상한다.

이를 위해 만주국과 중국 북부, 대만과 남방 지역의 병력을 재배치시키고 중국과 한반도에서 군부와 위안부를 강제 동원했다. 동시에 오키나와에서의 미군과의 전쟁을 대비하기 위해 오키나와의 학동 및 민간인을 일본 본토로 소개(疏開)하는 작전을 시작한다. 전시 일본이 오키나와의 학동 및 민간인을 본토로 소개하고자 한 이유는 무엇일까.

오키나와 전쟁은 민·관 총력전의 형태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아동과 노인들은 전쟁 동원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한다. 동시에 전쟁 준비와 수행을 위해서는 오키나와 외부에서 입도한 군인들의 숙영지와 막대한 식량을 비축하고 있어야 한다. 때문에 학교시설을 군의 숙영지로 개조하고, 오키나와의 민간인을 외부로 소개함으로써 식량 문제에 있어서도 좀 더 효과적인 전쟁 준비를 가능케 할 수 있다.

그러나 오키나와 현민들은 오키나와 외부로의 집단소개에 반발했다. 특히 초등학교 3학년부터 6학년까지의 모든 어린이를 보호자 동반 없이 일본 본토로 소개하라는 당국의 정책에 대해 부모들의 반발은 격심했다. 거기에는 오키나와 인근 해안은 물론이고 일본 본토 지역까지 작전권으로 하고 있는 미군의 전투기와 잠수함들이 일본 본토와 오키나와를 이동하는 선박에 대한 공격이 빈번했고, 그 과정에서 군인과 민간인 가릴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했기 때문이다.

쓰시마호가 학동 826명, 일반 소개자 835명을 싣고 오키나와를 떠나 목적지인 가고시마를 향해 출발한 것은 1944년 8월 19일이었다. 이 배에 탄 학동들은 모두 초등학교 3학년에서 6학년까지의 어린이들로 부모들과는 생이별한 채였다. 쓰시마호는 다른 두 척의 수송선과 함께 T자 형의 대열을 이루어 나갔는데, 그 뒤를 구축함과 포함(砲艦)이 따랐다. 가고시마를 향해 그렇게 3일간의 항해가 지속되던 8월 22일 저녁 10시 쓰시마호는 가고시마현 아쿠세키섬(惡石島) 인근에 도착했다.

총 1418명 사망, 철저한 보도통제
그런데 이곳에는 사이판에서 출진하여 일본 근해를 봉쇄하는 역할을 담당했던 미국의 공격형 잠수함 SS-287 보핀(Bowfin)이 있었다. 일본의 구축함과 수송선을 발견한 잠수함은 선단을 향해 무차별 어뢰 공격을 했는데, 그 가운데 3발이 쓰시마호에 명중했다. 이 공격에 6724t의 거대 화물선 쓰시마호는 빠른 속도로 침몰하기 시작했다. 쓰시마호는 애초에 여객수송선이 아니라 화물수송선이었다. 따라서 소개되는 학동과 민간인들은 창문도 없고 빛도 들어오지 않는 배의 바닥 부분에 수용되어 있었는데, 어뢰 공격으로 배의 밑부분에 거대한 천공이 생겨나고 빠른 속도로 바닷물이 유입됨에 따라, 공포 속에서 죽음을 맞거나 본능적으로 바다로 뛰어들었지만, 결국 대다수가 익사하게 된다.

쓰시마호가 침몰하고 배에 승선해 있던 학동과 민간인들이 사선을 넘나들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두 척의 수송선과 군함들은 표류하는 소개자들을 방치한 채 나가사키 방향을 향해 빠른 속도로 도주해버렸다. 조난된 소개자들을 구출하지 않고 이들 선단이 비정하게 해역을 벗어나 도주한 것은 이들을 구조하려 시간을 지체할 경우 미군 잠수함에 대한 추가공격이 우려되었기 때문이다.

쓰시마호에 타고 있던 소개민들이 초등학교 학생이거나 노인들이었기 때문에, 또 망망대해에서 이들을 구조해줄 선박이 없었기 때문에, 게다가 쓰시마호의 격침과 침몰 시간대가 파도가 높고 캄캄한 심야였기 때문에, 이 배에 승선했던 소개민 대부분은 속절없는 공포 속에서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 이날 미군 잠수함의 공격으로 학동 804명, 일반 소개자 569명, 선원 및 선박 포병 45명 등 모두 1418명이 사망했다. 출발 당시 쓰시마호에 승선했던 학동들이 826명이었으니, 이 비극에서 생존한 학동이 22명에 불과했을 정도로 끔찍한 비극이었다. 살아남은 이들은 상당 기간 바다에서 표류하다가 인근을 지나는 어선 등에 의해 구조된 사람들이다. 그러나 쓰시마호의 비극은 태평양전쟁이 종결될 때까지 철저한 보도통제 때문에 오키나와인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오키나와로부터 온 편지

쓰시마호의 비극이 알려질 경우 군당국의 오키나와인 소개작전이 강력한 장애에 직면하게 될 것을 우려한 일본 정부와 군당국의 전시검열 때문이었다. 그러나 군과 정부가 강력하게 정보 전파를 억압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비극의 진상은 생존자들의 증언과 소문의 형태로 오키나와에도 알려지기 시작했다. 물론 당시에도 이러한 진상과 관련한 소문이 퍼지는 것을 염려한 군당국은 ‘유언비어’라며 사건의 진상이 알려지는 것을 억압했고, 스파이 혐의 등을 덧씌워 진실을 말하는 자의 입을 억눌렀다.

<이명원 문학평론가·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racan@kh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