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류현진은 ‘형상기억 메모리폼 침대야구’

류현진은 팬들이 편안하게 침대에 누워서 볼 수 있을 정도로 ‘편안한 야구’를 한다. 또 그는 자신이 좋았을 때 몸상태, 투구 밸런스, 손 끝의 감각을 기억하는 능력이 굉장히 뛰어나다.

2014년, 류현진(27·LA 다저스)의 야구는 한 단어로 설명된다. 류현진의 야구는 ‘형상기억 메모리폼 침대야구’다.

류현진은 4월 18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AT&T 파크에서 열린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의 경기에 시즌 5번째 선발 등판해서 또다시 완벽한 피칭을 이어갔다. 류현진은 7이닝 동안 안타 4개만 내줬고, 볼넷 1개, 삼진 2개를 잡으며 무실점 피칭을 했다. 8회부터 나온 ‘필승 계투조’ 브라이언 윌슨과 마무리 켄리 잰슨이 가까스로 1점만 주고 막아낸 덕분에 류현진은 시즌 3승(1패)째를 따냈다.

류현진의 야구는 박찬호의 야구와 다르다. 박찬호가 훨씬 빠른 공을 던졌지만 경기 운영이 불안했다. 1990년대 후반, 박찬호의 등판을 지켜보던 많은 팬들은 손에 땀을 쥔 채 경기를 지켜봐야 했다. 그런데, 류현진의 야구는 보기에 편안하다.

LA 다저스의 류현진이 3월 23일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애리조나와의 경기에서 역투하고 있다. / AFP연합뉴스

‘침대야구’다. 중동팀들이 보여주는 ‘침대축구’는 이기고 있는 경기에서 시간을 보내기 위해 툭하면 드러눕는 부정적인 뜻이 담겨 있다. 하지만 류현진의 ‘침대야구’는 돈 매팅리 감독은 물론 경기를 지켜보는 팬들이 편안하게 침대에 누워서 볼 수 있을 정도로 ‘편안한 야구’다. 내야수의 실책이 나오고 병살 타구를 놓쳐도 ‘미스터 컴퍼터블’답게 위기를 헤쳐나가면서 편안한 상황을 만들어간다.

시즌 첫 등판부터 ‘침대야구’의 정수를 보여줬다. 호주 시드니에서 3월 24일 열린 개막 2차전 4회말 수비 때 ‘천적’이었던 애리조나 3번 폴 골드슈미트의 타구는 평범한 내야수 직선타였지만 2루수 디 고든이 이를 놓쳤다. 류현진은 흔들림없이 4번 마틴 프라도를 삼진 처리했다. 5번 미겔 몬테로의 타구는 유격수-2루수-1루수로 이어지는 평범한 병살타성 타구. 이닝이 끝날 상황이었지만 이번에는 유격수 핸리 라미레스와 2루수 고든의 호흡이 맞지 않으며 주자 2명을 모두 살려주는 플레이가 이어졌다.

위기관리 뛰어난 ‘미스터 컴퍼터블’
류현진은 그래도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을 보여줬다. 6번 마크 트럼보를 상대로 바깥쪽 체인지업과 빠른 패스트볼을 효과적으로 섞어 뜬공 처리했고, 7번 헤라르도 파라는 과감한 몸쪽 승부와 함께 좌타자를 상대로 잘 사용하지 않는 체인지업을 결정구로 가져가며 루킹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상황 종료.

18일 샌프란시스코전에서도 류현진은 5회까지 매 이닝 주자를 내보내기는 했지만 심각한 위기상황을 맞지 않았다. 류현진의 등 뒤에 서 있는 주자들이 위협적이지 않았고, 결국 7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다.

3월 30일 샌디에이고와의 경기에서 첫 이닝을 막은 류현진이 포수 엘리스와 함께 덕아웃으로 향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류현진이 ‘침대야구’를 할 수 있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볼넷을 주지 않는다. 류현진은 올 시즌 5경기 등판해 28이닝을 던지는 동안 볼넷을 겨우 9개만 내줬다. 9이닝당 볼넷으로 계산하면 2.57개다. 시즌 초반 무리한 등판 일정 때문에 최악의 결과를 남겼던 지난 5일 샌프란시스코전(2이닝 8실점)을 제외하면 9이닝당 볼넷 숫자가 2.07개로 줄어든다. 2.07은 지난 시즌을 기준으로 했을 때 메이저리그 전체 투수 중 15위 언저리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류현진은 지난 시즌 9이닝 당 볼넷 2.3개를 기록했다. 올 시즌 그 숫자가 더 낮아질 가능성이 높다.

둘째는 내야 땅볼을 통해 병살타를 끌어낼 수 있다는 점이다. 류현진은 올 시즌 첫 등판이었던 애리조나전에서 땅볼아웃/뜬공아웃의 비율이 0.22밖에 안 될 정도로 뜬 공의 비율이 높았지만, 이후 등판에서는 빠르게 땅볼아웃의 비율을 높였다. 가장 최근 등판이었던 18일 경기에서는 땅볼타구 12개를 끌어냈고, 뜬공타구는 6개밖에 되지 않았다. 류현진의 탁월한 땅볼 유도 능력은 지난 시즌 26개의 병살타를 만들어냈다. 지난 3월 31일 샌디에이고전이 류현진 땅볼 유도의 진수를 보여준 경기였다.

당시 류현진은 1회 오른손타자 바깥쪽 제구가 흔들리며 선두타자 에버스 카브레라에게 볼넷을 내줬다. 2번 크리스 디노피아에게는 우전안타를 맞았는데, 우익수 야시엘 푸이그가 무리한 송구를 하다가 타자주자를 2루까지 보냈다.

한국프로야구 30시즌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무사 2·3루에서 득점 확률은 85.9%다. 기대할 수 있는 득점은 2.06점이나 된다. 그러나 류현진은 샌디에이고의 기대를 여지없이 깨버렸다. 2012시즌 내셔널리그 타점왕 3번 체이스 헤들리를 속구 4개로 삼진 처리해 아웃카운트 1개를 잡았다.

4번 테드 지오코와의 승부는 ‘에이스’로서 팀의 신뢰를 받고 있는 장면을 여지없이 보여줬다. 초구, 2구가 모두 볼 판정을 받자 주저하지 않고 볼넷을 내줘 1루를 채웠다. 포수 AJ 엘리스도 이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이후 욘더 알론소를 상대로 이날 최고 구속인 150㎞ 속구로 투수앞 땅볼을 이끌었고 직접 잡아 투수-포수-1루수로 이어지는 병살타를 완성해 점수를 주지 않았다. 만루 위기를 맞아도 마음 편하게 볼 수 있는 류현진표 ‘침대야구’의 비밀이 여기에 있다.

볼넷 적고 병살타 유도 능력 높아
볼넷을 내주지 않고, 땅볼을 많이 유도해낼 수 있는 것은 역시 류현진의 뛰어난 ‘제구력’ 덕분이다. 제구력이란 공을 원하는 곳에 던질 수 있는 능력이다. 공을 원하는 곳에 던지기 위해서는 항상 일정한 투구폼을 유지해야 하는 것이 필수다. 투수들은 그 일정한 투구폼에 대한 ‘감’을 잃지 않기 위해서 공을 자주 던진다. 선발투수들이 등판 사이에 불펜 피칭을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류현진은 불펜 피칭을 하지 않는다. 류현진을 곁에서 오래 지켜본 정민철 한화 투수코치는 류현진에 대해 “기억력이 굉장히 좋은 선수”라고 평가했다. 단순히 숫자나 기록을 잘 외우는 기억력이 아니다. 정 코치는 “자신이 좋았을 때의 몸상태, 투구 밸런스, 손 끝의 감각을 기억하는 능력이 굉장히 뛰어나다. 잠시 흔들리더라도 재빨리 그때 기억을 되살리고 그 상태로 되돌아가는 길을 빨리 찾는다”고 말했다.

볼펜 피칭하지 않아도 좋은 감각 유지
체인지업의 각이 좋지 않다면, 다른 선수들처럼 불펜에서 많은 공을 던져가면서 밸런스를 회복하지 않는다. 각이 좋았을 때의 여러 가지 감각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서 금세 회복한다. 류현진이 선발 투구 사이에 불펜 피칭을 하지 않는 이유도 굳이 불펜 피칭을 통해 다시 한 번 몸이 좋은 밸런스를 기억해 되살려내도록 채근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기억하고 있고, 이를 다시 끄집어내 적용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 그만큼 어깨를 소모시키지 않아도 되고 체력을 아낄 수 있다.

다저스의 에이스인 클레이튼 커쇼도 인정했다. 커쇼는 류현진이 등판했던 3월 24일 경기 중 중계진과의 인터뷰에서 “류현진은 잠에서 깨자마자 모든 구종을 스트라이크로 던질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며 “솔직히 부럽다. 나는 모든 구종에 이상이 없는지 꼼꼼하게 점검해야 하는데, 류현진은 잠에서 깨자마자 그게 된다”고 말했다.

류현진이 탁월한 ‘야구 IQ’를 바탕으로 ‘형상기억 메모리폼 침대야구’를 보여주고 있다. 잘 던질 때를 몸이 스스로 기억해 던지는 야구, 보는 이로 하여금 침대에 누워서 편안하게 볼 수 있도록 하는 야구다. 류현진이 ‘적응 기간’이었던 지난 시즌을 끝내고, 올 시즌 ‘최고’를 향한 꿈을 던지기 시작했다. 무리한 등판 일정으로 흔들렸던 4월 5일 샌프란시스코전 경기 결과를 빼면, 류현진은 4경기에서 26이닝 무실점을 기록 중이다. 괴물이 보여줄 2014시즌의 모습이 심지어 무섭기까지 하다.

<이용균 경향신문 체육부 기자 noda@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