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수의 도시 이미지 읽기]우리는 제대로 기념하고 추모하는가

G20이나 대구육상선수권대회 같은 활기찬 행사에 쓰인 곡을 국가에 의해 희생된 양민을 추념하는 행사에서 부를 정도라면,우리의 대도시 곳곳에 서있는 수많은 기념비와 추모비와 충혼탑과 위령비가 과연 제대로 기억하고 위로하고 탄식하고 생각하는 조형물인가, 우리는 기억해야만 하는 것을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가, 의심하게 된다.

베를린에서 그것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수백개의 관이 놓여 있는 줄 알았다. ‘베를린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미국 건축가 피터 아이젠만이 설계하여 2005년에 완공된 곳이다. 보자마자 마음이 숙연해진다. 머리가 숙여진다. 더러는 울컥해진다. 히틀러 나치즘의 민간인 대량 학살에 대한 처절한 속죄의 공간이다. 히틀러의 야만이라고 하지만 굳이 어떤 특정 시기의 폭력적인 권력의 야만으로 축소시키지 않고 ‘독일이 저지른 대량 학살’이라는 점을 충분히 떠올리게 했다는 점도 놀라웠다.

왜 그런가. 그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은 베를린 한복판에 위치해 있으며, 주위로 상가건물과 민간주택도 있기 때문이다. 삶의 공간 한복판에 죽음의 표지를, 그것도 자신들이 저질렀던 학살에 대한 깊은 죄의식의 표지를 세웠기 때문이다. 피터 아이젠만이 설계한 검은 콘크리트 블록은 죽은 자의 시신을 영원 속으로 봉인한 관의 형상을 하고 있다. 그것도 수많은 관들이 높낮이가 조금씩 다른 기단 위에 얹혀져 있어서 멀리서 보면 야트막하게 조성된 공동묘지처럼 보인다. 그 사이로 꽤 많은 사람들이 서성거리며 아주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어 추모의 상징들을 본다.

제주도 제주시에 위치한 4.3 평화박물관의 모습. / 정윤수

베를린 복판의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대량 학살이 왜, 어떻게, 어떤 규모로 자행되었는가에 대한 추모 전시도 따로 마련되어 있고, 그 안에는 짙은 어둠 속에 희생된 자의 이름만 또렷하게 보이는 공간도 있다. 어떤 이의 이름, 누군가 불렀을 이름, 아버지가 아니면 어머니가 혹은 애틋하게 마음을 나눴던 애인이 귓가에 속삭이며 불렀을 이름이 또렷하게 떠오르면 마음이 먹먹해진다.

역설적이게도 거대하게 기립한 남근상 형태의 ‘기념탑’을 가장 잘 만들었던 나라가 독일이다. 패권적 민족주의가 활개를 치던 19세기 독일에서, 그리고 그 역사와 문화의 뿌리가 사실상 동일한 오스트리아에서 거대한 기념탑 문화가 ‘발전’했다. 특히 히틀러 시대에 오면. ‘히틀러의 건축가’로 불린 알베르트 슈페어를 위시하여 ‘순수한 독일인을 향한 숭고한 찬미’의 조각을 빚은 아르노 브레커와 그의 뒤를 이어 우람하고 창대한 기념물을 빚어낸 요제프 토락 같은 조각가들이 압도적인 위용의 기념비 원형을 만들어냈다. 그 이후 전 세계 주요 도시에 기립한 숱한 기념비들은 대개는 이들이 완성한 비율과 형태와 동작을 취하고 있다. 물론 그 기념비들이 모두 파시즘 문화인 것은 결코 아니지만 말이다.

마야 린은 이러한 지배적인 경향과 달리, 죽은 자를 진심으로 추모하고 그 앞에서 진심으로 숙연해질 수 있는 조형을 빚어낸 건축가다. 1980년, 미국 재향군인회가 추진하여 베트남에 참전했다가 죽어간 용사들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마야 린의 추모비는 워싱턴 한복판의 ‘내셔널 몰’, 그러니까 미국 정치영화에서 자주 보이는, 조지 워싱턴과 에이브러햄 링컨을 기리는 기념관과 기념탑 사이에 들어섰다. 전국에서 모여든 1400여점의 응모작들이 대체로 하늘 높이 치솟은 형태였는데, 최종 당선된 마야 린의 설계안은 낮게, 심지어 땅으로 가라앉는 듯이 보일 정도였다. 게다가 예일대 건축과 3학년생이었고 중국계였으며 심지어 ‘여성’이었다. 마야 린에 의하여 기념비나 추모비에 대한 고정관념이 변하였고, 전쟁에 대한 의미가 달라졌으며, 죽음에 대한 마음이 더욱 깊어졌다. 넓게 보면 베를린의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을 설계한 피터 아이젠만도 마야 린 이후의 변화되고 깊어진 사유와 연관 있는 것이다.

물론 더 중요한 것은 이 같은 외형의 추모만이 아니라 역사적 비극을 제대로 기억하고 추모하는 과정이다. 국가가 기념이나 추모의 날짜를 확정하고, 그에 따른 공간을 마련하고, 일정한 형태의 상징물을 세운다고 할 때, 그 과정 속에서 기념이나 추모의 의미가 깊이 논의되어야 한다. 어떤 명칭으로 호명할 것이며, 어떤 ‘기억’을 기억할 것이며, 그것을 또한 실질적으로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하는 점이 중요하다.

베를린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 위키백과

추념행사 도중에 떠날 채비하는 총리
얼마 전에 치러진 ‘4·3 국가추념일’을 생각해 보자. 국가에 의한 양민 학살, 특히 한국전쟁 전후 시기의 비극에 대하여 깊이 연구해온 성공회대 김동춘 교수(사회학)는 “‘추념’으로 명칭을 정할 경우, 제주 4·3사건에 대한 국민들의 인지도, 그리고 대다수 국민들이 이 희생을 억울한 ‘희생’으로 받아들일 기초적인 지식과 마음의 자세가 되어 있는가”를 지적한다. ‘기념’이 될 경우에도 “피학살을 국가의 기념으로 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을 뿐더러 그 경우 일각에서 비판하듯이 4월 3일을 기념일로 잡는 것에 대해 심각한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고 본다. 게다가 대개의 국가기념일이 ‘공휴일’로 그치는 일도 많다. 김동춘 교수는 “각종 의례를 보면 역사성도 예술성도 없는 높은 사람들의 장황한 발언과 공연들로 채워져 있고, 진정으로 그 사건을 기억하기 위한 어떤 배려나 노력도 찾아보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그같은 일이 재현되었다. 대통령은 불참하였고 정홍원 총리는 추념사를 마친 뒤 국회 대표 및 국회의원들이 헌화와 분향을 하는 도중에 떠날 채비를 하고, 1부 행사가 끝날 무렵 자리를 떴다고 현장에 있던 유족회 관계자와 강창일 의원은 말한다. 송승문 유족회 부회장은 “마치 정부 차원에서 ‘기념일 지정했으면 됐지 않느냐’는 태도인 것 같아 불쾌했다”고 말했다. 게다가 “참 아름다운 많은 꿈이 이 땅에 태어나서 행복한 내가 아니냐” 하는 가사의 노래 ‘아름다운 나라’가 공식 추모행사 중에 울려퍼졌다고 하니, 참으로 국가적인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희생자의 명부를 보라. 여든 넘은 노인도 있고 두 살배기 아이도 있다. 과연 “아름다운 많은 꿈”이란 말인가.

정윤수의 도시 이미지 읽기

G20이나 대구육상선수권대회 같은 활기찬 행사에 쓰인 곡을 국가에 의해 희생된 양민을 추념하는 행사에서 부를 정도라면, 우리의 대도시 곳곳에 서 있는 수많은 기념비와 추모비와 충혼탑과 위령비가 과연 제대로 기억하고 위로하고 탄식하고 생각하는 조형물인가, 국가는 또 우리는, 기억해야만 하는 것을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가, 심각하게 의심하게 된다.

<정윤수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