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전역하고 싶으면 재판 포기하라?

군인사법상 ‘확정판결’ 나올 때까지 기소휴직으로 피고인 묶어둘 수 있어…

“기본권 과도한 침해 독소조항” 개선 목소리 높아

검찰에 기소되면 피곤하다. 조사를 받기 위해 검찰청을 수없이 드나들어야 하는 것은 물론, 재판 준비를 위해 부랴부랴 법 공부를 하느라 머리도 아프다. 군대에서 군검찰에 기소를 당하면 사회에 있을 때보다 두 배로 괴롭다. ‘기소휴직’을 당해 군인도 민간인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로 언제 끝날지 모르는 재판과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현행 군인사법에 따르면 ‘사형, 무기, 또는 장기 2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에 해당하는 사건’으로 기소됐을 경우 임용권자가 직권으로 피고인인 장교에게 휴직을 명할 수 있다. 기소휴직에 들어간 군인은 월급의 절반만 받을 수 있다. 해군 김 중위의 경우 월급 실수령액이 49만8000원이었다. 휴직상태이기 때문에 영외에서 생활할 수는 있지만, 군인복무규율(군무 외 겸직 금지)에 의해 다른 일자리를 구할 수는 없다.

휴직 범위 줄이는 선에서 법 ‘찔끔’ 개정
군인사법 제49조 2항은 기소휴직 기간을 ‘해당 사건의 계속기간’으로 정하고 있다. 즉 확정 판결이 나올 때까지 붙잡아둘 수 있다는 얘기다. 기소휴직을 피해 군대에서 벗어나는 방법도 있다. 피고인이 하급심에서 유죄를 인정하면 사건이 종결되면서 기소휴직이 풀린다. 하지만 대법원까지 유무죄를 다툴 경우 김 중위처럼 몇 년을 경계인으로 살아야 한다.

2009년 국가인권위는 확정판결 이전이라도 하급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경우 기소휴직자를 복직시키도록 권고했다. 그해 5월 국방부는 인권위 권고안의 방향대로 군인사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실제로 법을 개정하진 않았다.

올 2월 경남 창원시 진해구에 해군 군사법원 공동법정이 문을 열었다. /연합뉴스

결국 국회의 입법을 통해 기소휴직 제도가 약간 ‘개선’됐다. 2012년 6월 민홍철 민주당(현 새정치연합) 의원이 발의한 군인사법 개정안은 다음해 12월 국회를 통과했다. 기소휴직의 범위는 ‘모든 형사사건’에서 ‘사형, 무기, 또는 장기 2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에 해당하는 사건’으로 다소 축소됐고, 피고인이 방어권 차원에서 요청할 경우에도 기소휴직이 가능하도록 했다. 이 개정안은 올 7월부터 시행된다.

하지만 기소휴직 제도 연구자들과 법조인들은 하나같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지금의 개정안은 핵심을 건드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기소휴직 연구자인 박정일 원광대 법학연구소 연구원은 민 의원의 개정안에선 다뤄지지 않은 군인사법 49조 2항(‘기소휴직에 따른 휴직기간은 해당 사건의 계속기간으로 한다’)부터 고쳐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 연구원은 위 조항이 헌법 27조 등으로 보장된 재판청구권을 실질적으로 제한한다고 봤다. 법원의 판결에 불복할 경우 재판 기간이 늘어나고, 재판 기간이 늘어날수록 의무복무기간이 연장돼 그만큼 기소휴직자의 불이익도 커진다. 박 연구원은 “재판은 결과가 언제 어떻게 나올지 막연하다. 재판 결과의 불복이 가져오는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재판청구권의 내용인 상소를 결정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국방부가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2003년부터 2013년까지 부사관 이상 장교 중 기소휴직된 사람은 공군의 경우 총 58명, 해군은 71명이었다. 육군은 연간 기소되는 사람이 100단위를 넘어 정확한 기소휴직자 집계가 어렵다고 밝혀왔다. 지난 10년간 육군의 기소휴직자는 300여명 선으로 추정된다. 같은 기간 중 육·해·공군에서 국가보안법으로 기소휴직된 사람은 육군과 공군이 각 3명, 해군은 김 중위 1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기소휴직이 길어질 것을 걱정해 항소를 포기한 것처럼 보이는 사례도 있다. 2011년 공군 소속 강모 중위는 그해 7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휴직에 들어갔다. 당시 공군의 발표에 따르면 강 중위는 종북 성향 인터넷카페에 김정일·김정은 부자에게 바치는 충성맹세서를 작성했다. 두 달 뒤 강 중위는 징역 1년6월, 집행유예 3년 형을 선고받았다. 강 중위가 항소하지 않아 형은 그대로 확정됐다.

또한 박 연구원은 현행 기소휴직 자체가 헌법 제27조 4항 ‘무죄추정의 원칙’을 위반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기소휴직 제도의 존재 자체가 피고인들의 ‘상소 의지’를 꺾고, 휴직상태에서의 처분 자체가 일종의 징벌로 작용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박 연구원은 기소휴직의 기준을 구체적이고 엄격하게 정하는 방향으로 군인사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확정판결이 날 때까지 기소휴직을 할 것이 아니라, 사건의 경중과 재판의 심급단계에 따라 휴직기간을 제한해 휴직이 장기화되는 일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10년간 육해공 기소휴직자 수백명 달해
군법무관 출신인 강석민 변호사도 군인사법 49조 2항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강 변호사는 2009년 인권위가 권고한 대로 하급심에서 무죄가 난 기소휴직자는 복직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기소휴직 자체가 직업의 자유를 침해하는 부분이 있으며, 군에서 징벌적으로 휴직을 시키는 경우도 있다. 무죄추정의 원칙에 입각하자면 하급심에서 무죄가 날 경우 풀어주는 것이 어떤가 싶다”고 말했다.

강 변호사는 현행 법대로라면 2심 판결이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될 경우 피고인이 큰 고통에 빠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법원이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을 하면 다시 고등법원을 거치고 또 대법원으로 올라와야 하는데, 이 과정이 몇 년이 걸릴지 모른다”며 “확정판결이 날 때까지 무작정 피고인을 휴직상태로 붙잡아두는 것은 기본권을 과도하게 침해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광철 변호사는 의무복무 기간이 있는 단기장교의 경우 재판 도중 의무복무 기간이 지나면 사건을 민간법원으로 이송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현행 군인사법 시행령 제6조는 휴직기간은 의무복무일수에 포함시키지 않도록 되어 있다. 다만 기소휴직자가 무죄를 확정받으면 휴직기간도 의무복무일수에 포함된다. 이 변호사는 단기장교와 똑같은 의무복무인 사병과 형평성이 맞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사병의 경우 의무복무가 지나면 군에서 제대를 시키고 사건을 민간법원으로 이송한다. 그런데 의무복무 장교는 제대를 하고 싶어도 재판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제대를 하지 못하는 문제가 생긴다.”

이 변호사는 의무복무 날짜가 지난 장교를 기소휴직으로 붙잡아두는 지금의 군인사법은 “누구든지 병역의무의 이행으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는 헌법 39조 2항을 위반하고 있을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