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홈플러스 막았더니 이번엔 대형마트의 기습

망원시장 영세상인들 “홈플러스 폐점 이끌어내 겨우 한숨 돌렸는데…”

상생 석 달 만에 홈플러스 크기의 또 다른 공룡마트 들어서 망연자실

지난해 12월 31일 홈플러스 익스프레스(SSM) 망원점은 폐점했다. ‘합정동 홈플러스 입점저지 주민대책위원회’는 지난 3월 5일부터 11일까지 망원시장을 포함해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반경 500m 이내의 상점 55곳을 설문조사했다.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폐점이 매출에 도움이 됐는지, 도움이 됐다면 얼마만큼의 매출 상승으로 이어졌는지 등을 조사했다.

매출 늘고 심리적 안정 찾았는데 날벼락
조사 결과 2013년 12월 매출액과 비교했을 때, 2014년 1월 매출액이 증가했다는 곳은 56.4%인 것으로 나타났다. 매출액은 평균 12.7% 증가했다. 특히 생활용품 가게와 쌀 가게는 20%가 넘는 매출 증가율을 기록했다. 망원시장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고 있는 임병근씨는 “홈플러스 익스프레스가 하루 매출이 적을 때는 1500만원, 많을 때는 2000만원이었다. 그 돈이 자연스럽게 이 지역 작은 가게들로 분산된 것”이라고 말했다. 2007년 문을 열었던 홈플러스 익스프레스는 개점 이후 연간 80억원의 매출을 올렸던 곳이다. 임씨는 “대형마트의 경우 싼값으로 물류를 한꺼번에 유통시키기 때문에 지역 대리점 등에서 물건을 받아 쓰는 우리들은 솔직히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고 말했다.

홈플러스의 철수는 시장 상인들에게 심리적 안정감도 가져다준 것으로 나타났다. 홈플러스의 철수가 긍정적이라고 평가한 상인들 중 15.2%가 심리적 안정을 얻을 수 있어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조사를 진행한 조영권 주민대책위원회 집행위원은 “만약 심리적인 안정만을 따로 조사했다면 대부분의 상인들이 심리적 안정을 얻었다고 답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망원시장 내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고 있는 한 상인은 “홈플러스 익스프레스가 들어온 지는 7년 됐고, 나는 홈플러스가 들어오기 바로 6개월 전에 여기서 슈퍼마켓을 시작했다. 장사가 늘 힘든 건 아니었지만, 홈플러스 익스프레스가 있을 때는 늘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철수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고 말했다. 또 다른 상인은 “홈플러스가 나갔다고 당장 매출이 크게 오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역 상권이 보호되고 있다는 생각이 드니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이제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것을 벗어나 미래계획도 세우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2012년 서울 망원시장, 월드컵시장 상인들이 여의도 국회 앞에서 합정동 홈플러스 입점을 반대하는 삼보일배를 하고 있다./김창길 기자

마트 하나가 폐점된 것이지만, 인근 지역의 영세상인들에게 미친 영향은 상당히 컸다.

그러나 지난 3월 26일 홈플러스 익스프레스가 있던 자리를 지나가던 망원시장 상인들은 날벼락 같은 소식을 들었다. 홈플러스 익스프레스가 철수한 지 3개월밖에 안 됐는데 홈플러스와 똑같은 크기의 마트가 입점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취급하는 품목 또한 야채, 생선, 정육, 생활용품 등 홈플러스 익스프레스가 판매했던 품목들이다. 홈플러스 익스프레스의 폐점은 망원시장과 인근 월드컵시장 상인들이 2년 넘게 합정동에 대형 홈플러스가 들어오는 것을 반대하는 싸움을 하면서 받아낸 약속이었다. 지난해 4월 홈플러스와 재래시장 상인들은 합정동에 홈플러스가 들어오는 대신 망원역의 홈플러스 익스프레스를 철수하는 상생협약을 맺었다.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폐점은 대기업과 영세 자영업자가 상생을 하는 경제민주화의 상징적인 결과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3개월 만에, 홈플러스 익스프레스가 철수한 바로 그 자리에 홈플러스 익스프레스와 비슷한 규모의 마트가 들어온 것이다.

1층에 홈플러스 익스프레스가 있었던 건물은 현재 한 종친회가 소유하고 있다. 종친회 측 관계자는 마트가 들어선 것은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으며, 수익적인 측면에서는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 관계자는 “지난해 12월 홈플러스 익스프레스가 나가고 난 후부터 입점을 희망하는 사람들로부터 제안서를 받았다. 사실 그 자리는 망원역 1번 출구 바로 앞이고, 마을버스로 인근이 다 연결돼 있는 황금알을 낳는다는 길목이다”라며 “마트 하려는 사람들은 이 자리에 기를 쓰고 들어오려고 한다”고 말했다.

건물주, 높은 임대료 수입에 약속 어겨
홈플러스가 나간 직후만 해도 건물주인 종친회 측은 마트에는 임대를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었다. 주차장 공간을 확보할 계획이었는데, 마트가 다시 들어오면 창고로 쓰게 내줘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망원시장 상인회 측도 이미 지난 1월 종친회 측의 이런 입장을 확인했었다. 종친회 관계자는 “마트에는 임대를 주지 않으려 했는데, 월세를 비교해 보니 마트 외에 다른 곳들은 제안한 가격이 마트에 비해 너무 낮았다”면서 “우리가 마트에 임대를 하지 않겠다는 것은 시장 상인들과 이야기하다 나온 것이지 서면으로 각서를 써준 것도 아니다. 법적으로 고문변호사에게 확인해 봤는데 문제될 것은 없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홈플러스 익스프레스는 입점했을 당시 1800만원의 월세를 낸 것으로 알려졌지만, 새로 들어온 마트는 이보다 더 높은 금액을 부른 것으로 알려졌다. 조영권 집행위원장은 “종친회 측의 말대로 법적인 하자는 없을 수 있겠지만, 재래시장 상인들이 마트를 밀어낸 상징적인 공간에 또다시 마트가 들어온다는 것은 납득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상인들은 물론 지역주민들까지도 의아해하는 부분”이라는 조 위원장은 “단지 수익이 얼마가 나느냐는 문제라기보다는 이것이 지역사회에 어떤 의미인지를 짚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역 상인들이 2년 넘게 싸운 자리에 3개월 만에 비슷한 규모의 마트가 들어오지만 관계당국으로서도 손을 쓸 수가 없는 일이다. 마포구청 지역경제과 관계자는 “지난해 상생협약도 구청을 빼고 홈플러스와 지역상인들 간 당사자끼리 협의가 있었다. 협약에 대해서는 우리가 구체적으로 관여한 것은 없고, 또 그 건물에 다른 업체가 들어온다고 해도 법적으로 제재할 수 있는 근거는 없다”고 말했다.

서정래 망원시장상인회 회장은 “지역 상인들 사이에서는 2년간 투쟁의 성과들이 3개월 만에 사라져버린 데 대한 허탈감과 분노가 상당하다. 다시 지역 상권이 죽어버릴 것이라는 심리적인 위축감도 크다”고 말했다. 서 회장은 “상인회 측에서는 대응을 할 생각인데, 아직은 갑작스러운 일이라 구체적인 방안은 정하지 못했다. 곧 상인들끼리 의견을 모아 대응책을 마련할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