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로부터 온 편지]중·일간 우호 기대하는 평화의 섬

중국 입장에서도 오키나와와의 우호관계를 확보하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반면, 일본은 오키나와와 중국의 교류협력관계가 일본의 영토주권을 침해할 수 있는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모노레일을 타고 오키나와 현청 역에서 내려 도보로 10여분을 걸어가면 중국풍의 건축물이 나타난다. 빨간 기와로 지어진 고풍스러운 건물에는 지성묘(至聖廟)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이 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중앙에 대성전(大成展)이 있고, 그 왼편에는 현대식 2층 건물이 하나 있는데 명륜당(明倫堂)이라고 적혀 있다.

그렇다면 이 중국풍의 시설은 무엇일까. 공자와 4명의 제자 격인 유가(안자, 증자, 자사자, 맹자)의 신위를 모신 문묘이다. 앞에서 언급한 ‘지성묘’라는 현판에서의 지성은 유학의 창시자인 공자를 의미한다. 이 시설은 공자의 출생지인 중국 산동성 곡부의 공자묘와 동일하게 지어진 것이다.

지성묘 인근에는 중국풍 정원인 복주원(福州園)도 있다. 중국과의 조공무역을 기반으로 한 중계무역으로 류큐왕국이 번영했던 시기에 지어진 중국식 정원으로, 류큐의 진공사와 유학생들이 머물렀던 중국 복건성 복주의 정원 양식을 오키나와에 재현한 것이다. 이 마을에는 이러한 중국풍의 시설과 유적 말고도 일상 곳곳에 중국 문화의 흔적이 남아 있다. 오키나와 시내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중화반점도 여럿 눈에 띈다.

오키나와 지성묘의 지성문. / 쿠메소우세이카이(久米崇聖會) 홈페이지

대성전 모습. /쿠메소우세이카이(久米崇聖會) 홈페이지

이 마을의 이름은 쿠미(久米)인데, 류큐왕국 시절에는 쿠미손(久米村)이라 불렸다. 쿠미손은 류큐왕국이 명나라와 조공책봉 관계에 들어간 직후인 1392년 복건성을 포함한 중국 남부에서 이주한 36성(姓)의 중국인 후손들이 모여 살던 곳으로, 당시 류큐의 대외무역과 정치의 핵심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사람들이 모여 살던 곳이다. 현재에도 오키나와 전역에 흩어져 살고 있는 이 중국계 후예들은 공자의 탄신일인 9월 24일에 모여 제사를 지내는데, 이나미네 게이치, 나카이마 히로카즈 등 오키나와의 전 지사 등이 이들 중국 귀화인의 후손이라는 점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오키나와와 인연 깊은 시진핑 주석
현재의 오키나와는 센카쿠 제도 문제를 둘러싸고 중·일 간에 일촉즉발의 상황에 처해 있지만,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양국의 관계는 매우 우호적이었다. 중국과 오키나와 관계가 그랬다는 것인데, 이 부분에서 눈여겨볼 것은 현재 중국의 국가주석인 시진핑과 오키나와의 관계이다.

시진핑은 중국의 어느 정치가보다 오키나와와 인연이 깊다. 중앙권력에 진출하기 직전까지 그는 오키나와와 역사적 관계가 깊은 복건성에서만 무려 17년의 세월을 보냈다. 특히 2000년에서 2007년까지는 복건성의 성장(省長)으로 있으면서 오키나와와의 공식·비공식 교류를 활발히 전개했는데, 이 시기에 오키나와의 현 지사가 복건성을 방문하고, 복건성의 성장이 오키나와를 방문하는 일은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오키나와 입장에서 복건성은 중세 류큐왕국 시절부터 중국으로부터 책봉사가 출발하고 오키나와로부터는 진공선이 도달했던 역사적 공간이었기 때문에, 또 복건성의 문화와 생활양식이 오키나와에 끼친 영향이 막대하기 때문에 이 두 지역 간의 우호협력관계는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동시에 오키나와 입장에서는 거의 유일한 산업이랄 수 있는 관광산업의 확대를 위해 중국과 협력관계를 확대할 필요성을 갖고 있었다. 산업적 기반이 전무한 오키나와의 경제상황에서 관광산업의 확대는 필수적이었는데, 관광객의 다수를 점하고 있는 대만은 물론 더 나아가 중국 관광객을 오키나와로 유치할 수 있다면, 이것은 오키나와 현의 경제성장과 관련해 매우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이런 전략 속에서 오키나와와 상하이 및 베이징 간의 항공기 직항노선을 개설하는 일은 당시 오키나와 현청의 입장에서는 중요한 정치적·경제적 의미가 있었다.

중국 입장에서도 오키나와와의 우호관계를 확보하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오키나와가 대만과 중국의 양안 사이에 있다는 점도 그러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미·일 군사동맹의 거점이라는 지정학적 문제 때문이다. 오키나와 본도에 집중되어 있는 미국의 군사시설은 냉전기에도 그러했거니와 특히 중국의 개혁개방 이후 ‘대국굴기’(大國堀起·대국으로 우뚝 선다는 뜻)의 야심을 실현시키는 과정에서, 이것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의 대중국 포위정책의 핵심 지역으로 기능하고 있다. 오키나와와 괌에 있는 미군기지들은 동중국해에서 남중국해에 이르는 중국의 군사 팽창을 노골적으로 견제하는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중국 입장에서는 오키나와의 미군기지가 일본과 한반도의 안보적 상황을 관리하기보다는 중국의 군사적 팽창을 제압하고 포위하기 위한 위협으로 느끼고 있다.

오키나와-중국 교류 확대 긴장하는 일본
반면, 일본의 경우는 오키나와와 중국의 교류협력관계가 일본의 영토주권을 침해할 수 있는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들은 중국과 오키나와 사이의 교류협력의 확대와 발전이 후텐마기지의 현외 이전을 주장하고 있는 시민들의 요구와 모종의 관계를 맺고 있다고 의심한다. 일본의 극우파들은 오키나와에서 미군기지가 이전되면 오키나와가 중국의 세력권에 들어가게 될 뿐만 아니라, 중국의 군사공격으로 점령당할 수도 있다는 ‘중국 위협론’을 확대재생산하고 있다.

일본이 센카쿠 제도를 실효지배하고 있기는 하지만, 전후의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나 1972년의 중·일 국교정상화 과정에서 명확하게 일본의 영토로 규정된 바는 없다. 아베를 포함한 일본의 우파세력들은 센카쿠 제도가 중국으로부터 공격당할 경우 동맹국인 미국이 일본을 대신해서 중국과 군사적 충돌을 선택하지 않을 가능성에 노심초사하고 있다. 미국 역시 분쟁지역화된 영토문제에 대해서는 명시적 의견을 표명하지 않고 있다. 바로 이런 사실은 거꾸로 일본의 극우세력들이 ‘중국 위협론’을 빌미로 각종의 우경화 전략을 실현하는 근거가 되고 있다. ‘집단적 자위권’ 문제의 경우 헌법의 해석 변경을 통해 ‘교전권’을 부여하게 한다든가, 자위대를 국방군으로 전환해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로 가겠다는 아베 주장의 명백한 근거로 거론되는 것이 오키나와의 센카쿠 제도인 것이다.

오키나와로부터 온 편지

그렇다면 이러한 중국, 일본, 미국의 오키나와 인식 속에서 정작 오키나와 현민의 생각은 어떠한가. 오키나와 현민은 일관되게 오키나와의 자치와 자립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역설하고 있다. 이들은 오키나와 현에 존재하는 미군기지를 현외 이전하는 것만이 사실상 식민지로 전락한 오키나와의 존엄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이며, 중·일 간의 군사적 충돌을 예방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일본의 극우세력이 상상하듯 중국으로의 귀속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키나와인들이 상상하는 미래는 자치도(自治都)부터 독립국(獨立國)까지 다양하다. 하지만 단 하나의 분명한 소망이 있다면 그것은 오키나와가 평화와 공존의 섬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명원 문학평론가·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racan@kh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