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내시경]더 감칠맛 나는 뮤지컬 서편제

한 뮤지컬 작품의 앙코르 무대가 화제다. 바로 임권택 감독의 영화로 유명했던 <서편제>다. 창작 뮤지컬의 진화를 고스란히 담아내 반가운 공연이다.

우리에겐 기념비적 성과를 이뤄낸 영화 타이틀로 잘 알려진 이 제목은 사실 판소리 창법에서의 한 유파를 말한다. 조선시대 명창 중 한 사람으로 손꼽히던 박유전의 음악적 실험을 이어받은 유파를 일컫는 서편제는 주로 전라도 광주와 나주, 강진, 해남 등지에서 인기를 누렸던 창법이었다. 서편제라는 이름은 이들 지역이 섬진강의 서쪽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것인데, 부드럽고 구성지며 애절하게 소리의 끝을 길게 이어 부르는 것이 특징이다. 활달하고 우렁찬 동편제와 좋은 대조를 이룬다.

서편제의 대표적인 노래는 바로 ‘심청가’다. 특히 심봉사가 딸을 만나 마침내 눈을 뜨게 되는 부분의 구성진 소리는 듣는 이의 애간장을 녹이는 매력을 담고 있는 것으로 유명한데, 영화와 뮤지컬에서도 남녀 주인공인 동호와 송화의 재회 장면에 등장하며 우리 가락의 맛을 멋들어지게 재연해주었다는 평가다.

뮤지컬<서편제> / 오넬컴퍼니 제공

무대용 콘텐츠는 영화가 원작인 무비컬에 속하지만, 스크린보다 훨씬 더 매력적이다. 아무래도 ‘소리’를 듣고 ‘음악’을 즐기는 재미라는 측면에서 현장 예술인 공연이 기계적 재생의 영상물보다 날것 그대로의 ‘감칠맛’을 더욱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가 국악인이었던 오정해의 매력을 멋지게 담아낸 결과물이었다면, 무대의 히로인은 이자람과 차지연의 몫이다. 전자가 국악을 바탕으로 한 다양한 변주의 재미를 보여주는 한편, 후자는 선 굵은 연기와 소리로 묵직한 감동을 재연해낸다.

특히, 이자람을 보면 절로 감탄이 터져나온다. 저토록 자그마한 체구에서 어떻게 저런 소리와 에너지, 선한 기운마저 뿜어져 나오는지 그야말로 신기할 정도다. 그밖에도 엠블랙의 지오와 마이클 리가 연기하는 동호, 서범석과 양준모가 번갈아 묘사해내는 아버지 유봉의 모습도 각각의 매력이 담겨 있어 흥미롭다. 세 번째 시즌을 맞이하며 보다 정교하고 세밀하게 다듬어진 느낌도 들어 반갑다. 캐릭터들을 조금 더 선명하게 매만지고 관객들의 감성을 이끌어가는 완급의 조절을 고려한 덕분이다. 무대 위 이미지들과 이야기들이 무리 없이 잔잔히 흘러 극의 종반부에는 주인공들의 소리찾기 여행을 내내 함께 걸어온 착각마저 준다. 덕분에 “살다 보면 살아진다”는 노랫말은 저도 몰래 스며나오는 한숨과 함께 공연 후에도 입가를 오래 맴도는 중독성 강한 선율로 남는다.

특히, 유봉의 죽음은 이 뮤지컬의 백미다.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소리인지 울음인지 아니면 원망 섞인 비명인지 분간할 수 없는 여주인공 송화의 절규에는 그저 눈물만 흐른다. 마음에 ‘한’을 담아 소리를 완성하고자 했던 이들의 소리 길 여정이 마침내 ‘득음’의 경지에 오르는 순간이다. 무대에서는 이 극적인 장면을 다시 현대적 양식의 무용극 형식으로 풀어서 재구성한다. 무대라서 더더욱 북받쳐 오르는 희열이자 감동이다.

뮤지컬<서편제> / 오넬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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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에는 나름 사연도 여럿 있다. 초연이 되던 해 명을 달리했던 고 조왕연 프로듀서의 한 많은 인생은 특히 눈시울을 적신다. 시장은 늘어나고 돈 버는 인기배우들이나 해외 원작자들도 많아졌다지만, 여전히 창작 뮤지컬을 만드는 이들의 사정은 그리 크게 나아진 것이 없는 듯 싶어 안타깝다. 서편제의 소리 길이 우리 창작 뮤지컬계의 사정과도 묘하게 닮은 것 같아 애잔한 마음이다. 관객으로서, 애호가로서 고맙고 반가운 마음을 커튼콜의 기립박수로 대신해본다. 모쪼록 많이 보고 즐기는 무대가 되길 진심으로 기원해본다.

<원종원 순천향대 교수·뮤지컬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