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무심히 한 나쁜짓, 누군가엔 치명적

줄리언 웰즈의 죄
토머스 H. 쿡 지음·한정아 옮김·RHK·1만3800원

작가인 줄리언 웰즈가 자살한다. 나치가 프랑스인 642명을 학살한 오라두르, 무고한 용의자를 고문하여 자백하게 만들었던 쿠엥카의 사람들, 애국자란 망상에 빠져 ‘반역자’인 소년들을 살해한 소련의 살인마 안드레이 치카텔로, 피의 백작부인이라 불린 엘리자베스 바토리 등 줄리언은 ‘어둠’을 쫓아 세계를 떠돌며 자료를 모으고 책을 썼다. 줄리언이 집착한 주제는 ‘한 사람의 인생에 어떤 사건이 갑자기 끼어들어 그전까지 숨겨져 있던 그의 본성을 아무런 경고도 없이 드러내고, 그래서 그는 놀라운 자기 발견의 음울한 희생자로 영원히 남는 것’이었다.

절친한 친구이자 문학평론가인 필립은 젊은 시절 그를 만났고, 평생 질투하며 존경했다. 그런데 그는 왜 자살한 것일까. 왜 어둠에 빠져든 것일까. ‘시작이 그토록 찬란했는데 세상은 도대체 무슨 음모를 꾸며 그를 그토록 어둡고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간 것인가?’

줄리언이 처음 쓴 <쿠엥카의 고문>에는 ‘내가 지은 죄의 유일한 목격자인 필립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라는 헌정사가 쓰여 있고, 결말에는 ‘자신의 죄를 잊고 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는 말이 있다. 필립은 줄리언의 죄가 대체 무엇인지 알기 위해 프랑스로, 슬로바키아로, 러시아로, 아르헨티나로 향한다.

아르헨티나가 시작이었다. 줄리언과 필립이 대학을 졸업하고 함께 떠난 여행. 실종과 납치, 고문, 살인이 군사정권과 좌익 게릴라에 의해 상시 벌어지던 위험한 시절이었지만 젊은 그들은 세상의 거친 단면을 보고 싶었다.

여행 도중에 그들의 가이드를 맡았던 여인 마리솔이 실종되었다. 자살하기 직전 줄리언은 아르헨티나 지도를 보고 있었고, 파리 아파트에서는 마리솔의 사진과 자료들이 발견된다. 필립은 위대한 탐정이 된 것처럼 단서들을 추적하고, 마치 스파이영화의 주인공처럼 선과 악, 진실과 거짓이 모호한 세계에서 줄리언이 살아왔음을 알게 된다. 줄리언은 ‘가장 두려운 것을 이미 맞닥뜨’렸고,‘ 복구가 불가능한’ 폐허가 된 후 영원히 대양에서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처럼 어둠의 세계를 떠돌았다. 철들지 않은 시절에 행했던 죄 때문에.

<줄리언 웰즈의 죄>는 그레이엄 그린의 스릴러, 조지프 콘래드의 <어둠의 심연>, 오손 웰즈의 <제3의 사나이> 등 수많은 소설과 영화를 인용하고 경의를 바친다. 유려한 문장과 해박한 지식도 좋지만 무엇보다 토머스 H. 쿡은 냉정하다. <줄리언 웰즈의 죄>는 ‘죄’에 대해 말한다. 철들지 않는 사람들이 저지르는 끔찍한 죄. 현실이 아니라 이상에 현혹되고, 자신의 가치를 과대평가하는 이들이 저지르는 악행. 장난처럼 행하지만 누군가는 치명적으로 다치고, 쓰러진다. ‘우리 실수에 대해 대가를 치르는 사람들은 항상, 너무 작아서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보잘 것 없는 사람들, 먼지 같은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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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를 지은 줄리언이지만 적어도 그는 고결했다. 스스로 ‘마음의 무기징역’을 살다가 끝내 죽음을 선고했다. 왜 결백한 이들은, 온순한 이들은 세상의 주인이 되기는커녕 희생자로 살아가야만 하는가. 토머스 H. 쿡은 담담하게 답한다. 우리들이 지은 죄 때문이라고.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