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수의 도시 이미지 읽기]붕어빵처럼 일률적인 ‘키즈 카페’

키즈 카페의 시설과 기구들은 정확히 그 놀이의 형태까지 정해준다. 역사를 막론하고 모든 시대의 아이들은 나뭇가지 하나만으로도 다양한 상징을 부여하며 놀았다. 그런데 놀이 방식이 거의 정해져 있는 인공의 기구에서 저마다의 상상이 샘솟을 리 없다. 하늘을 우러러보거나 바람을 느끼는 일은 상상하기 어렵다.

옛날에는 온 동네가 놀이터였다고 말하는 것은 아마도 지나친 과장일 것이다. 그렇기는 해도 저 1970년대 안팎의 상경 시절에는 동네 곳곳이 놀이터이긴 했다. 일률적으로 정해진, 비교적 안전하고 몇 가지 놀이시설이 갖춰진, 그런 놀이터는 찾아보기 어려웠고 천변이나 공터나 뒷산이나 예비군 훈련장 같은 곳에서 해지는 줄 모르고 놀았다. 또 골목이라는 아늑한 공간이 있어서, 그 안에서 소꿉놀이도 하고 공놀이도 하고 구슬치기도 했다.

골목이나 공터는 아이들의 연령이나 성별이나 취향에 따라 수시로 ‘용도 변경’이 되었다. 담벼락에 공을 차기도 했다. 아직 미숙한 아이였기 때문에 축구공은 때로 담벼락으로 날아가지 않고 이발소나 미용실의 헐거운 유리창을 들이받기도 했다. 동네 할아버지가 “시끄럽다 이 녀석들아, 딴 데 가서 놀아라” 하면 키들키들거리면서 짐짓 도망가는 시늉이라도 했고, 어스름이 깔리면 이집 저집에서 제 자식들을 외쳐 부르는 어머니들의 점호에 의해 공터와 골목은 어느덧 조용해지곤 했다.

경기도의 한 실내 놀이시설에서 어린이가 오토바이 놀이기구를 타고 있다. | 정윤수

아이들이 사라진 놀이터 주차장 둔갑
그러다가 아파트가 이 대도시의 집단 군락지로 정형화되면서 규격에 따라 조성된 놀이터가 제공되었다. 1980년대 이후의 아이들은 그 놀이터를 유년의 안전하고도 안락했던 성장 공간으로 기억할 것이다.

요즘 아이들은 어디서 놀고 있을까. 물론 오후의 한가로운 때에 동네 아파트 단지의 놀이터에 가보면 꼬마 아이들 한둘쯤 뛰놀고 있다. 주말이면 아이들 손잡고 나온 주민들로 때로 북적대기도 한다. 그러나 그 옛날의 골목이나 과거 어느 한때의 놀이터에서 들려올 법한 경쾌한 소란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곧장, 또는 집에 잠깐 들러 간식을 먹은 후 학원으로 간다. 대개들 학원에 가기 때문에 학원에 가지 않는 아이는 혼자 놀이터에 나와 놀기도 머쓱하다. 유년시절의 놀이는 기본적으로 또래 집단과의 육체적·정서적 교감이기 때문이다.

요즘의 동네 놀이터는 종종 텅 비어 있거나, 더러 주차장으로 용도 변경이 되는 중이다. 비좁은 주차난 때문에 놀이터를 용도 변경하는 사례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 이 거대 도시가 본격적으로 창건될 때부터 지속되어온 일이다.

1968년 8월 9일자 동아일보는 영등포 구내에 하나밖에 없는 놀이터를 서울시가 주차장으로 허가를 내줬다고 보도하면서 아이들이 놀이터를 빼앗긴 채 차들이 질주하는 길가에서 놀고 있다고 전한다. 1979년 5월 5일자 경향신문은 “자동차가 늘어나자 주차장이 부족하다고 아우성이지만 그보다 더 크고 시급한 문제는 내일의 역사를 이어갈 어린이들이 마음놓고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하다고 진단한다. 1992년 11월 8일자 한겨레신문은 경기도 수원시와 군포시가 주차난 해소를 위해 어린이 놀이터 지하에 공영주차장을 만들려고 하고 있어 어린이 안전사고 위험이 높아졌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근래의 몇몇 뉴스들은 지하 주차장이 없는 오래된 아파트 단지들이 앞다퉈 놀이터를 주차장으로 바꾸려고 한다고 전한다. 저출산으로 아이들 수도 급격히 줄었고 그나마도 학원에 가거나 컴퓨터에 앉아 있으니, 텅 빈 놀이터를 주차장으로라도 쓰자는 것은 어쩌면 현실적인 판단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요즘 아이들은 놀지 않는 것일까. 그럴 리가. 놀이의 감각적 쾌락과 일정한 정서적 교훈은 실로 원천적이며 역사적인 것이라서 어느 세대의 아이들이나 뛰놀게 마련이다. 그런데 어디서? 동네 놀이터에는 몇 명 없던데?

경기도의 한 실내 놀이터에서 부모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어린이들이 놀고 있다. | 정윤수

꽉 막힌 놀이공간, 어른들의 직무유기
혹시 키즈 카페에 가본 일이 있는가. 실내 놀이터라고 해도 좋다. 아이들 다 키운 독자라면 익숙지 않겠지만,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아이들의 부모라면, 그리고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장기 어린이의 부모라면 동네 상가마다 들어서는 키즈 카페의 풍경을 금방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키즈 카페는 여가와 육아를 일순간이나마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장소다. 법·제도가 미비하여 안전사고의 위험성이 높고, 영유아 전문가들의 꼼꼼한 설계라기보다는 판에 박은 듯이 일률적으로 배열해 놓은 공간이라서 교육적 효과가 그리 높다고도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성업 중이다. 밖에서 맘 놓고 뛰어놀 만한 곳이 사라지고 있으며 아파트 실내는 답답한 데다가 층간소음 탓으로 마음껏 놀 수도 없기 때문이다.

부모로서는 아이들이 키즈 카페에서 노는 동안 잠시 쉬거나 다른 일을 볼 수도 있다. 게다가 한동안 쌀쌀한 겨울이었고, 조금 날씨가 풀리기는 했지만, 초미세 먼지의 공습 아니었던가. 그러니 아이들이 한두 시간이라도 맘 놓고 뛰어놀게 하려면 키즈 카페를 찾는 수밖에 없다.

이렇게 아이들이 실내의 제한된 공간으로 들어오는 순간 상상력 또한 제한된다. 키즈 카페의 시설과 기구들은 정확히 그 놀이의 형태까지 정해준다. 역사를 막론하고 모든 시대의 아이들은 나뭇가지 하나만으로도 얼마든지 다양한 상징을 부여하며 놀았다. 그런데 어떤 방식으로 놀아야 한다고 거의 정해져 있는 인공의 기구에서 저마다의 자연스러운 상상이 샘솟기는 어렵다. 하늘을 우러러보거나 바람을 느끼는 일은 상상하기 어렵다. 쪼그리고 앉아 막 피어나는 꽃을 바라보거나 나무 뒤에 숨거나 그 위로 올라가는 아이들도 없어졌다.

정윤수의 도시 이미지 읽기

롤랑 바르트는 아이들이 물건을 가지고 노는 행위는 그 물건의 용도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조물주처럼 창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는 생명을 창조한다. 그 놀이에서 사물들은 스스로 움직인다.” 그러나 화학제품의 놀이기구 안에서 그런 일을 기대하기란 쉽지 않다. 물론 21세기의 아이들도 무한한 잠재력과 상상력으로 언젠가 인공 공간의 임계치를 뛰어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 그렇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만으로 아이들을 붕어빵처럼 일률적인, 더욱이 꽉 막힌 실내 놀이공간에서 놀게 하는 것은 우리 시대 어른들의 심각한 직무유기다.

<정윤수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