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경제]용의자 - 탈북자 정착 가로막는 ‘낙인효과’

“탈북자라는 게 잠정적으로 간첩 혐의를 갖고 있는 사람들인데 왜 자꾸 지동철을 감싸고 돌아!”

국정원 김석호 실장이 기무사 민세훈 대령(박희순 분)을 이렇게 몰아붙인다. 민 대령은 자칫 잘못하면 간첩으로 몰릴 지경이다.

민 대령은 북한 특수요원 출신의 탈북자 지동철(공유 분)을 잡기 위해 투입된 기무사 특수요원. 하지만 지동철 체포에 나선 수뇌부의 움직임이 어쩐지 미덥지가 않다.

원신연 감독의 영화 <용의자>는 한국판 본 시리즈를 연상케 할 정도의 액션을 선보인다. 후진 기어를 놓고 계단을 내려가는 산타모와 이를 추격하는 기아 크레도스의 차량신은 특히 인상 깊다. 국산차도 제법 괜찮은 차량신을 선보일 수 있다는 것이 반갑다.

대리운전을 하면서 살아가는 탈북자 지동철은 한 사람을 쫓고 있다. 자신의 아내와 딸을 죽인 자다.

지동철을 챙기던 해주그룹 박근호 회장이 방북 전날 암살당한다. 박 회장은 북한에 ‘선물’을 줄 예정이었다. 박 회장의 암살 현장을 목격한 지동철은 용의자가 돼 쫓긴다.

국정원이 운영하는 탈북자 특수요원 모임 북진회도 지동철을 제거하려 든다. 케이블 TV 프로듀서인 최경희가 이 소란에 연루되고, 지동철과 함께 진실 캐기에 나선다.

탈북자는 더 이상 낯선 사람들이 아니다. 지난해 기준으로 2만5000명가량이 국내에 거주한다. 하지만 차별을 받으며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 많다.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에 따르면 탈북자 실업률은 9.7%에 달한다.

같은 기간 실업률 2.7%보다 3배 높다. 경제활동 참가율은 56.9%로 국내 경제활동 참가율 62.1%보다 낮다. 탈북 근로자의 월평균 소득은 법정최저임금을 조금 넘는 141만4000원에 불과했다.

영화 속 지동철도 대리운전을 하며 생계를 이어간다. 정부는 탈북자들의 정착을 돕기 위해 재교육을 시킨다. 그럼에도 좋은 일자리를 갖기 힘들다. 왜 그럴까? 여기에는 ‘낙인 효과’도 작용한다. 다른 말로 ‘스티그마 효과’라고도 한다.

스티그마란 불에 달군 도장을 가축 몸에 찍어 소유자를 표시하는 ‘낙인’을 말한다. 낙인 효과란 좋지 않은 경력으로 인해 한 번 나쁜 사람으로 찍히면 의식적이거나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쉽게 말해 “넌 나쁜 놈이야. 넌 일을 못해. 넌 무능해”라고 말하면 지금은 그렇지 않은 사람도 의기소침해지더니 결국은 무능하고 나쁜 사람처럼 행동한다는 것이다.

‘경상도 남자는 무뚝뚝하다’, ‘지방대 출신은 일을 못한다’ 등의 낙인을 찍으면 원래 다정다감했던 경상도 남자가 무뚝뚝해지고, 창의력 넘치고 열정적이던 지방대 출신 직원이 웬일인지 무능력해지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보면 한 소녀가 할머니로부터 “너는 스무살이 되기 전에 죽는다”는 말을 들었다. 이 말은 소녀의 무의식 속에 깊숙이 자리잡았다.

18세가 되자 소녀가 앓기 시작했고 상태는 갈수록 나빠졌지만 병원은 그 원인을 찾지 못했다. 이를 ‘자기실현적 예언’이라고 한다. 낙인 효과는 부정적인 자기실현적 예언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2011년 ‘자본변동성 원인 분석과 정책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외환위기를 겪은 나라일수록 자본 흐름이 불안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위기를 당한 나라’라고 낙인이 한 번 찍히면 투자자들이 더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한 번 부도가 났던 기업이라면 약간의 이상 징조에도 자금 조달이 쉽지 않다.

영화 속 경제

탈북자들을 ‘잠재적인 간첩’이라고 낙인찍어버리면 탈북자들은 진짜 간첩이 될 수도 있다. ‘자본주의에 익숙지 않아 일을 잘 못할 것’이라고 낙인찍어버리면 정말 무능한 사람들로 전락해버릴 수도 있다. 낙인찍기가 만연한 사회의 성장 잠재력이 높을 리 없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