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경제]‘블랙 스완’ ‘닭의 비상’이 경제에 쓰이면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닐스의 모험>은 추억의 애니다. 1980년대 일요일 아침 방송됐던 만화영화다. 오시이 마모루는 훗날 ‘공각기동대’를 제작했다

원작은 스웨덴의 여류작가 셀마 라게를뢰프의 소설 <닐스 홀게르손의 신기한 스웨덴 여행>이다. 1906~1907년 2년간 쓰여졌으니까 벌써 100년도 더 된 소설이다. 그는 1909년 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닐스의 모험은 말괄량이 삐삐와 함께 전 세계에 가장 잘 알려진 스웨덴 캐릭터라 할 만하다.

매번 말썽만 피우는 농장집 아들 닐스가 있다. 빨간 모자에 호루라기를 찬 말썽꾸러기 닐스는 집에서 키우는 닭과 소, 개들을 괴롭힌다. 어느 날 요정 할아버지를 만나지만 짓궂게 굴다 덜컥 마법에 걸린다. 수다쟁이 햄스터 ‘캐럿’과 함께 갑자기 15㎝ 크기로 몸집이 줄어들어버린 거다.

비행을 갈망하던 거위 모르텐이 때마침 기러기들을 만나 하늘로 솟구친다. 얼떨결에 모르텐의 목에 걸려 있는 올가미를 잡은 닐스는 모르텐과 함께 새들의 고향 ‘라플란드’로 날아간다.

경제·금융 용어에는 유독 새와 관련된 것이 많다. 지난해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은 소득세 인상을 추진하면서 “세금 인상은 거위의 털을 뽑는 것과 같다”고 말해 공분을 샀다.

이 말은 프랑스 루이 14세 때 재무상인 장 바티스트 콜베르의 말에서 유래했다. 그는 “바람직한 조세 원칙은 거위가 비명을 덜 지르도록 하면서 최대한 많은 깃털을 뽑는 것”이라고 말했다. 깃털은 세금이고, 거위는 국민이다.

블랙 스완(검은 고니)도 있다. 블랙 스완이란 거의 일어나지 않는 일이지만 한 번 일어나면 엄청난 파문을 일으키는 사건을 말한다. 사람들은 흑고니가 없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때까지 발견된 고니는 모두 흰색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697년 호주에서 흑고니가 발견되면서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준 데서 비롯됐다.

2007년 금융위기 당시 뉴욕대 나심 니콜러스 탈레브 교수가 월가의 허상을 통렬히 파헤친 <블랙 스완>이라는 책을 출간하면서 경제 영역에서도 널리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블랙 스완에서 의미가 확대된 것이 화이트 스완과 그레이 스완이다. 당연히 일어날 것이라 알고, 대책도 있지만 적절하게 처방하지 못해 사단이 나는 것이 화이트 스완이다. 과도한 규제완화, 지나친 유동성, 과도한 부채로 인해 위험도가 높아져가지만 설마하다 시기를 놓치는 경우다.

그레이 스완은 일어날 것을 잘 알지만 대책이 없어 발만 동동 구르다 사고가 터지는 것을 말한다. 너무 많은 돈이 풀려 나가 인플레 우려가 있다는 것을 알지만 돈을 거둘 경우 경기가 침체되기 때문에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어 지켜보다가 망하는 경우다.

주식시장에는 ‘미운 오리’와 ‘백조’가 있다. 주식이 애물단지로 전락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게 미운오리주다. 요즘은 건설주나 해운주가 이 부류에 속한다. ‘백조’는 큰 수익을 안겨주는 주식이다. ‘미운 오리’가 ‘백조’됐다는 표현은 주식시장은 물론 부동산, 기업투자 부분에서도 종종 쓰인다.

브라질의 경제를 빗대는 용어 중에는 ‘닭의 비상’이 있다. 불황에서 회복돼 경제가 될 만하면 고꾸라지던 1990년대의 브라질 경제는 아무리 날아보려고 안간힘을 써도 결국 날지 못하는 닭의 비상에 비유됐다. 최근 브라질이 급성장하면서 비아냥은 ‘독수리의 비상’이라는 찬사로 바뀌었다.

영화 속 경제

투자 격언 중에는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과 함께 나타난다’는 말이 있다. 황혼(상승 혹은 하락장)이 온다는 게 확인됐을 때 재빨리 투자하라는 얘기다. 시장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시점에 무리하게 예단해서 들어가지 말고 방향성을 어느 정도 확인한 뒤 투자하라는 얘기다. 헤겔의 저서 <법철학>에서 인용된 말이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