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이야기]도로명주소 혼란, 대비해 온 우정

새 주소 체계인 도로명주소가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 2년 유예기간을 거쳐 올해부터 전면 시행에 들어갔지만 사용률이 30%를 밑돌고, 불편·불만을 호소하는 목소리까지 여기저기서 불거지고 있다.

도로명주소는 선진국에서 오래 전부터 사용하고 있는 국제적으로 보편화된 주소 체계로서 이를 도입할 경우 한국을 찾는 외국인의 길 찾기가 편리해지고, 경찰·소방 등 응급구조기관의 현장 대응력이 제고되며, 물류비 등 사회·경제적 비용이 대폭 줄어든다는 게 정부의 주장이었다. 하지만 막상 시행하고 보니 이런 장점보다 문제점이 더 많이 지적되는 현실이다.

가장 큰 불만은 부동산 중개시장에서 나온다. 토지대장이나 등기부 등 부동산 관계 문서에서 부동산 소재지는 등기부등본상 지번주소를 쓰도록 되어 있다. 반면 매도·매수자나 임차·임대인, 중개인 등의 인적사항에는 도로명주소를 써야 한다.

한 계약서 안에 지번주소와 도로명주소를 모두 기입해야 하는 불편은 물론 건물주와 토지 소유주를 확인·대조하는 작업과 같은 번거로움이 따르는 것이다. 계약하려는 부동산의 지번주소는 제대로 적었지만 도로명주소를 잘못 기입해 법적 분쟁에 휘말릴 수도 있다.

새 주소 체계로 바뀐 뒤의 서울 광화문 우체국 집배실 모습. | 우정사업본부 제공

기존 지번주소 체계에서 표현이 가능했던 지역을 도로명주소로는 표현할 수 없는 문제점도 불거진다. 가령 서울 강남구 역삼동 일대에 대한 개발계획을 도로명주소로 고시하려면 ‘강남구 테헤란로 202 한국은행 강남본부 일대 반경 1㎞ 지역’ 식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면(面) 단위로 해야 하는 기상예보에 선(線) 개념의 도로명주소를 적용하는 것도 마땅치 않다.

서울 강남 부동산시장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대치동 은마아파트의 도로명주소는 ‘서울 강남구 삼성로 212’다. 찾아가기가 더 어려울 뿐 아니라 동 이름이나 아파트 브랜드가 갖는 프리미엄, 지역의 정체성이나 역사성, 문화 등도 반영하지 못하는 셈이다.

반면 도로명 프리미엄에 대한 기대로 경기 성남시 분당구 판교신도시는 판교로·판교원로·판교역로·동판교로·서판교로·안양판교로·대왕판교로 등 온통 ‘판교’라는 이름이 들어간 도로명주소를 갖게 됐다.

크리스탈로·청라라임로·파인토피아로·컨벤시아대로·엘씨디로 등 정체불명의 도로명이 너무 많다는 지적도 있다. 길이가 85㎞에 이르는 진도대로, 서울 중구에서 경기도 고양·파주시까지 이어지는 통일로(47㎞), 서울 강서구에서 강남구까지 8개 자치구에 걸쳐 있는 남부순환로(31㎞) 등처럼 지나치게 긴 구간은 도로명주소만으로는 위치를 가늠하기가 더 어렵게 됐다.

주소 체계가 바뀌면 가장 큰 영향을 받는 분야가 우정일 것이다. 주소에 가장 민감한 우편 분야에서 큰 혼란이 발생하지 않은 것은 도로명주소 시행에 대비해 일찍부터 준비를 했기 때문이다.

우정사업본부는 2011년부터 기본계획과 세부 실행계획을 확정해 도로명주소 사용 환경을 본격 구축하기 시작했다. 도로명주소를 현행 우편번호 사용 환경에 맞추는 것이 첫 번째다. 그 다음은 우편정보시스템에 도로명주소 반영, 자동화 장비의 도로명주소 처리 기반 구축, 도로명주소 표기 우편물 구분 및 배달체계 마련 등이다.

구체적으로 지번주소-도로명주소-우편번호 매칭 데이터베이스를 비롯해 우편물류시스템(PostNet), 집배순로시스템, ePOST 우편서비스, 순로구분기 등 모든 장비와 시스템을 도로명주소에 맞춰 재구축하고, 집배원을 비롯한 직원들이 여기에 적응하는 과정을 거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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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무리 철저히 준비를 했다고 하더라도 주소 체계 변화는 가뜩이나 어려운 우편사업과 열악한 근무 환경에서 일하는 집배원들에게는 큰 부담일 수밖에 없다. 새 주소 체계의 연착륙을 위해 무엇보다 우정에 대한 정부의 배려와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신동호 경향신문 논설위원 hud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