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경제]위험이 크면 수익도 높다

“내게 이 펜을 팔아봐.”(조단 벨포트) “저에게 사인을 좀 해줄래요?”(브라드) “저는 펜이 없는데요?”(조단 벨포트) “그럼 이 펜을 사세요. 이게 바로 수요공급 법칙이야.”(브라드)

수요공급 법칙을 이처럼 쉽게 표현한 경제학자가 있던가. 알래스카에서 냉장고를 파는 게 영업맨들의 역할이라고 했다. 금융시장이라고 다르지 않다. 사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뭐든 팔 수 있다. 일확천금을 꿈꾸는 월스트리트의 주식브로커가 있다.

기발한 아이디어로 금융권을 농락하며 그는 나이 스물여섯에 백만장자가 된다. 하지만 마약과 섹스에 빠져 흥청망청 살다가 주가조작 혐의로 구속되면서 추락한다. 조던 벨포트의 자전적 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블랙코미디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다.

감독은 마틴 스코세이지, 조던 벨포트 역은 리어나도 디캐프리오가 맡았다. <택시 드라이버>, <갱스 오브 뉴욕> 등을 제작한 마틴 스코세이지는 미국의 거장 감독이다. 스코세이지와 디캐프리오가 만난 것은 이번이 다섯 번째다.

1989년 10월 블랙먼데이로 직장을 잃은 벨포트는 조그마한 마을에서 페니 주식을 팔며 화려하게 재기한다. 페니 주식(penny stock)이란 일반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중소 벤처기업의 주식이다.

값이 싸고, 거래는 잘 안 된다. 그런 만큼 매매거래에 따른 수수료가 높다. 무려 50%가 주식브로커의 몫이다. 벨포트와 그의 친구들은 페니 주식 매매중개를 앞세워 월스트리트에 입성한다.

벨포트 무리들은 펜을 파는 방법을 안다. 상대방의 탐욕을 자극시키면 수요가 생겨난다. 경제학의 근간은 ‘수요공급의 법칙’이다. 알프레드 마샬이 수요곡선을 고안한 이후 경제학이 시작됐다.

수요곡선에서 Y축은 가격, X축은 수요량이다. 수요량이란 소비자들이 값을 치르고 구입할 의사나 능력이 있는 재화의 양이다. 가격이 오르면 수요가 줄어든다.

주로 곡선으로 표현되는데 처음 가격이 오르면 별로 수요가 줄어들지 않지만 일정 가격 이하 오르면 급격히 수요가 축소되는 것을 반영해서다.

공급곡선은 Y축이 가격, X축은 공급량이다. 공급량이란 판매자가 팔 의사와 능력이 있는 재화의 양이다. 가격이 오르면 공급량이 늘어난다. 두 선이 만나는 점이 균형가격이고, 그때 거래량이 균형거래량이다. 이게 수요공급의 법칙이다.

수요공급 곡선의 원리는 대부분의 경제학 이론에 차용된다. 페니 주식은 리스크가 높아 사기를 꺼리지만, 그럼에도 사려는 사람이 있는 것은 한 번 터지면 대박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하이 리스크(위험도) 하이 리턴(수익)’이다. 위험도와 수익성 곡선을 각각 그은 뒤 두 곡선이 만나는 지점에서 페니 주식의 판매량이 결정된다. 위험을 감내하는 정도와 얻는 수익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할 때 사람들은 투자를 한다는 의미다.

수요공급 법칙은 몇 가지 가정하에서 만들어졌다.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이 완전히 똑같고, 수요자와 공급자가 많아 특정인이 가격을 지배할 수 없다. 또 수요자와 공급자는 상품에 대한 정보를 동등한 수준으로 갖고 있다고 전제한다. 때문에 수요공급 법칙이 현실에서 잘 안 맞는 경우가 많다.

영화 속 경제

정부가 시장가격을 제한하거나 독점체제가 되면 아예 적용되지 않는다. 벨포트는 지인의 계좌를 빌려 선매하는 방법으로 주식의 공급량을 줄인다. 시중에 나도는 주식이 적다 보니 가격이 올라간다. 그래서 떼돈을 벌지만 금융당국과 FBI가 경제학의 전제를 흔드는 반칙을 그냥 둘 리 없다. ‘정부의 개입’이라는 현실을 벨포트는 생각하지 못했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