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장성택 처형을 계기로 내려진 전군 골프 금지령이 이달 중순부터 해제됐다. 군에선 ‘골프 금지령’은 있어도 ‘골프 해제령’은 사실상 없었다. 이번 국방장관의 ‘골프 해제령’은 이례적이다.
군 골프장에 현역 군인들이 다시 돌아왔다. 국방부가 지난해 12월 북한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 처형을 계기로 내렸던 전군 골프 금지령이 이달 중순부터 해제됐기 때문이다.
군의 ‘골프 금지령’은 남북관계가 민감하게 돌아갈 때마다 군 수뇌부가 하달하는 단골 메뉴다. 과거에는 군에서 ‘골프 금지령’은 있어도 ‘골프 해제령’은 사실상 없었다. 민감한 사태가 조금 진정된다 싶으면 군 간부들은 알아서들 다시 골프장에 나타나곤 했다. 그런 면에서 이번 국방장관의 ‘골프 해제령’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앞으로도 금지령이 있으면 해제령까지 명확히 내려질지는 두고 볼 일이다.
군의 골프 사랑은 유별나다. 군은 국방부 3곳, 육군 7곳, 해군 5곳, 공군 14곳 등 전국에서 군 골프장 29곳을 운영하고 있다. 총 320홀 규모다. 여기에다 새로 짓고 있는 골프장 3곳까지 합하면 곧 30곳이 넘을 예정이다. 전국에 산재한 골프장이 410개 정도라고 하니 적지 않은 숫자다.
정지윤 기자
군 골프장 전국에 29곳…3곳 건설 중
심지어 국군기무사령부도 김종태 사령관 시절 경기도 과천에 위치한 사령부 부지 내에 골프장 건설을 추진했다. 기무사는 관련 예산까지 확보하고 골프장 건설에 나섰지만 좌절됐다.
기무사에 땅을 팔았던 일부 주민들이 “군 골프장 지으라고 땅을 팔았던 게 아니었다”면서 법원에 ‘공사중지 가처분 신청’을 냈고, 법원이 이들의 손을 들어준 때문이었다. 만약 기무사 골프장이 만들어졌다면 서울에서의 접근성을 고려할 경우 그 희소가치는 매우 높았을 것이다.
군 골프장의 ‘단골 손님’은 ‘별’을 단 장군들이다. 국감자료로 살펴본 이용횟수를 보면 2011년과 2012년 육·해·공군 장군 450여명이 2만2000번 넘게 군 골프장을 출입했다. 한 명당 연평균 24.5회 정도니까 2주에 한 번씩 골프를 쳤다고 볼 수 있다. 2013년도 크게 다르지 않다.
계급에 따라서는 대령이 연평균 16.9회, 중령이 9.9회, 소령이 4.1회 이용했다. 초급 간부급인 대위는 0.9회, 중위는 0.1회를 이용하는 등 계급이 낮은 군인은 거의 이용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국정감사의 계절만 되면 국방부 국감장에서 군을 질타하는 단골 메뉴로 군 골프가 등장한다.
군 골프장의 숫자를 보면 공군이 압도적으로 많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공군이 운영하는 골프장은 기지 활주로 주변을 활용한 부지이기 때문에 조성하기가 상대적으로 쉽다.
또 공군 조종사들은 유사시뿐만 아니라 평시에도 긴급 출동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24시간 영내 대기를 해야 한다. 그런 만큼 기지 내 골프장을 이용하는 사례가 많다. 육군이나 해군에서는 주위 눈치 때문에 대개가 영관급 장교가 되고 나서야 골프를 시작하지만 공군의 경우 위관 장교도 주위의 눈치를 보지 않고 영내 골프를 칠 수 있는 분위기가 마련돼 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대통령들 애용…주중엔 민간인 이용
현역시절 골프를 전혀 치지 않았다는 남재준 국정원장. | 박민규 기자
그뿐만이 아니다. 공군 골프장은 유사시 전략물자를 수용하는 공간이다. 수송기로 전장에 보내야 하는 보급품을 야적할 수 있는 장소이고, 적진에 투입하는 병력이 숙영할 수 있는 대기소이기도 하다.
이런 저런 이유들을 살펴보면 공군의 골프장은 나름대로 명분이 있다. 반면 육군이나 해군 골프장은 운영의 명분이 다소 떨어진다. 군 간부들은 군 부대가 있으면 골프장이 부대시설처럼 돼 있는 미군과 비교하지만 땅이 좁은 국내 상황과 비교하기는 무리인 듯싶다.
역대 대통령들도 군 골프장을 자주 이용했다. 보안이 잘 지켜지고 경호가 용이한 것이 장점이기 때문이다. 노태우 대통령 당시에는 대통령이 태릉골프장에 나타나는 날이면 그 전날부터 특전사 요원들이 불암산 일대에서 경호작전을 펼쳤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임시절 부인 등 일행과 함께 대통령 전용열차편으로 계룡대 골프장을 찾아 라운딩을 즐기기도 했다. 이 역시 군 골프장이 보안 유지에 적격이기 때문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인 권양숙 여사는 태릉골프장을 자주 찾았다. 그러면서 캐디들과의 대화 자리를 마련하기도 했다. 그 자리에서 “태릉골프장을 이용하는 민간인만 캐디를 써야 하고 현역 군인은 캐디를 쓰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벌이가 들쑥날쑥하다”는 말을 듣고 캐디를 의무적으로 쓰도록 규정을 바꾸게 하기도 했다.
흔치는 않지만 군 간부들의 골프에 대해 비판적인 군인도 있다. 남재준 국정원장은 현역 시절 상사를 모시고 회식을 할 때 폭탄주 한 잔을 세 모금 만에 털어넣는, ‘미들홀에 버디’로 마시기는 했으나 실제 골프는 치지 않았다.
남 원장은 현역 장군 시절에도 군인의 골프에 대해서는 매우 부정적이었다. 장교들이 회식하면서 골프 이야기하는 것도 싫어했다. 대한민국 군대의 장교가 주중 내내 골프를 화제로 삼고 주말엔 골프장을 찾는다면 차라리 골프선수가 되지 왜 군인이 되었는지 모르겠다고 군 고위 간부들의 골프를 비판하기도 했다.
군이 골프장을 체력증진을 위한 ‘체력단련장’이라고 굳이 고수하는 이유는 각종 세금이 중과세되는 일반 골프장과는 다른 면세대접을 받는다는 점과도 연관이 있다. 면세 혜택으로 그린피 등이 싸 18홀 기준 정회원인 현역 군인과 예비역은 1만원대면 골프를 즐길 수 있다.
군 골프장은 적자난에 허덕이고 있다. 국회 예산정책처가 펴낸 ‘2012회계연도 재정사업 성과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12년까지 4년간 적자를 기록한 군 골프장은 모두 14곳으로 누적 순손실은 20억3700만원이다.
예산정책처는 경영상 책임이 크다고 지적했다. 예비역 장성이나 영관장교만 군 골프장 사장으로 임용하는 제도를 고쳐 전문 경영인을 영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산정책처는 “골프장 경영성과는 군인복지기금 재원 확보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며 “적자를 기록하는 골프장 수가 증가하고 있고 전체 골프장 수익률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기 때문에 적극적인 문호 개방이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통상 군부대 골프장을 이용하는 민간인은 현역 군인의 3배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역은 주로 주말에 군 골프장을 찾고, 주중에는 민간인이 많이 찾는 식이다. 그래서 군 골프장의 적자를 민간인이 메워주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박성진 경향신문 기자 longriv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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