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이야기]‘우정 민영화 악연’ 고이즈미의 귀환

일본의 두 전직 총리가 2월 9일 치러지는 도쿄도지사 보궐선거에서 연대를 선언해 국내외 정가의 이목을 끌고 있다. 지난 1월 14일 호소카와 모리히로(細川護熙) 전 총리가 도쿄도지사 출마를 선언하고,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가 그를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히면서 그 배경과 파장에 대한 해석과 전망이 구구하다.

국가 정상까지 지내고 이미 은퇴한 두 70대 원로 정치인이, 한 사람은 지방선거에 출마하고 다른 한 사람은 그의 선거운동을 하는 상황은 보통 일이 아니다.

정치적 소속과 배경, 성향이 정반대라고 할 수 있는 두 사람을 의기투합하게 만든 것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원전 재가동 및 수출 정책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탈핵 연대’다.

두 원로 정객에게는 그만큼 탈핵 문제가 그냥 두고 볼 수 없는 국가적 중대 사안이거나 정치적으로 놓치기 싫을 정도로 유망한 카드라는 뜻일 게다.

일본 우정 민영화를 밀어붙였던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오른쪽)가 ‘탈핵 연대’를 기치로 도쿄도지사 출마를 선언한 호소카와 모리히로 전 총리와 의기투합했다. | 연합뉴스

특히 찬핵 입장이었던 고이즈미 전 총리의 탈핵 선회는 ‘헨진’(變人·괴짜라는 뜻)이라는 그의 별명에 걸맞게 극적이다. 우정인이라면 고이즈미 전 총리가 2005년 중의원 해산이라는 초강수까지 두면서 우정 민영화를 밀어붙인 기억이 생생할 것이다.

당시 일본 언론이 ‘헨진의 난’이라고 표현한 그의 승부수는 총선에서 압승함으로써 성공으로 귀결됐다. 이번 ‘2차 헨진의 난’도 귀추가 주목될 수밖에 없다.

고이즈미 전 총리는 우정과 대를 이어 각별한 인연을 맺었지만 악연이 더 강했던 것 같다. 조부가 우정상을 지냈고 그 또한 1992년 우정상을 맡은 바 있다.

하지만 첫 선거 때 우체국이 몰아주는 표를 얻지 못해 떨어진 경험이 있고, 우정상을 지낼 때 우정공사 고위 간부들이 장관을 무시하고 자민당 내 이른바 ‘우정족’ 의원에게 중요 업무보고를 하는 것을 보고 분개하기도 했다. 1995년 우정 민영화를 내걸고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와 총재 자리를 놓고 일전을 벌여 대패한 바도 있다.

세상사는 묘하다. 그가 2005년 던진 승부수로 ‘차기 총리’로 키운 아베 총리의 집권이 열렸고, 2007년 우정 민영화가 이루어졌다. 하지만 이게 자민당에게는 독이었다. 자민당은 이로 인해 민주당에 정권을 내주었고 2012년 4월 우정조직을 사실상 공사화하는 방향으로 우정 민영화법이 개정되었다.

그렇게 된 데는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도 한몫 했다. 재난 상황에서 우체국망의 중요성과 보편적 서비스의 필요성이 더욱 부각됐다. 이른바 ‘고이즈미 개혁’은 지역 우체국을 폐쇄로 내몰고 낙도나 산간지방을 비롯한 많은 지역 생활을 파괴한다고 해서 ‘고이즈미 개악’으로까지 불렸다.

하지만 우정 민영화법이 개정된 후 민주당 정권이 붕괴되고 아베의 자민당이 재집권한 것은 또 하나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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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우정 민영화법 개정과 민주당의 ‘원전 제로’ 정책에 영향을 주고, 그것이 또 아베 정권을 등장시켜 원전 재가동 및 수출 정책으로 이어졌으며, 그 결과 ‘고이즈미-호소카와 탈핵 연대’가 탄생하기에 이른 것이다. 우정 민영화에서 탈핵 연대까지 일본 정치의 전개와 변화는 고난도의 게임을 보는 듯하다.

<신동호 경향신문 논설위원 hud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