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환경과 평화, 미래에 대한 교류 항해를 가다
한국환경재단과 일본 피스보트의 공동 주최로 한·일 양국 각 500명씩 1000명의 시민이 10월 19일부터 ‘피스 & 그린보트’를 타고 대만 지룽, 중국 상하이, 일본 후쿠오카를 도는 9박10일간의 항해를 했다. 피스 앤 그린보트는 동아시아의 환경과 평화, 역사를 함께 토론하고 미래를 그려보는 한·일 시민들의 교류 프로그램이다.
본지 최영진 기자도 이 배에 탑승해 대만과 일본에서 원전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풍경을 취재했다. <편집자 주>
민물고기 뱀장어는 산란기가 다가오면 태평양 심해로 떠난다. 일생을 바다에서 살다가 알을 낳기 위해 강을 찾는 연어와 정반대의 생을 사는 셈이다. 어미 뱀장어는 알을 낳고 생을 마무리한다. 새끼 뱀장어들은 본능적으로 해류를 타고 3000㎞의 긴 여행을 한다.
북적도 해류를 타고, 이후 쿠로시오 해류를 만나 이동하다 한국·중국·일본 연안에 도착한다. 일본에서 우나기(ウトギ), 중국에서 만리(鰻驪), 혹은 바이산으로 불리는 뱀장어가 한국·중국·일본에서 발견되는 것은 쿠로시오 해류 덕분이다.
쿠로시오 해류는 태평양 서부 타이완 섬에서 시작해 일본으로 흐른다. 해류의 일부는 한국 동해로 흘러들어 쓰시마 해류가 된다. 쿠로시오 해류는 동아시아의 모습을 보여주는 상징이다. 한국·중국·일본이 서로 영향을 주고,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지리학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대만 룽먼 원전 앞에서 피스 앤 그린보트 탑승자들이 원전 반대 구호를 외치고 있다.
쿠로시오는 일본어로 ‘검은 바다’(흑조·黑潮)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동아시아의 현재는 검은 색이다. 평화와 협력보다 긴장과 갈등이 지배해온 공간이다. 피스 앤 그린보트에 함께 탑승한 소설가 서해성은 “150년 동안 쿠로시오 해류는 갈등의 바다였다. 폭력이 일상적으로 행해졌던 아버지의 바다다. 이 바다를 생명의 바다, 어머니의 바다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원전이 지배하고 있는 쿠로시오 해류
19세기 말 쿠로시오 해류를 사이에 두고 전쟁과 폭력이 지배했다면, 지금은 원전이 지배하고 있다. 쿠로시오 해류가 지나가는 곳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원전이 집중된 지역으로 꼽힌다. 2013년 8월 현재 중국에는 18기, 일본 50기, 한국 23기, 대만 3기의 원전이 해안가에 건설되어 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각국은 10여기부터 많게는 130기까지 추가 건설계획을 세우고 있다. 쿠로시오 해류 주변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처럼 불안하기만 하다.
2011년 3월 11일 발생했던 후쿠시마 제1 원자력발전소 사고의 여파가 아직도 진행 중이지만, 각국 정부는 여전히 “원전이 가장 싼 전력이다” “원전을 건설해야 경제가 산다” 등 똑같은 논리를 펴면서 원전 건설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여기에 맞서 대만·일본 시민들이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보수적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이들의 싸움은 힘겨워 보인다.
대만 환경보호연맹 리슈용 사무국장은 대만 원전 4호기인 룽먼 원전을 보고 긴 생각에 빠졌다. 바다와 강이 만나는 지역이자, 황금모래 백사장이 자랑인 후롱 지역에 30년 넘게 공사 중인 룽먼 원전은 현실과 동떨어진 기이한 건물처럼 보인다. 리슈용 사무국장은 “이곳 주민은 지우콩이라는 조개를 양식해서 살아갔지만, 원전 때문에 지우콩이 사라졌다. 어업을 위주로 살아갔던 이들은 이제 관광업으로 업종을 바꿔야만 했다”고 한숨을 내쉰다.
대만 인구는 2300만명. 국토의 70%가 산림지역이다. 현재 3개의 원전이 운영 중이고, 4호 원전인 룽먼 원전이 건설되고 있다. 앞서 지어진 3개 원전은 계엄령이 선포됐던 시기(1949~1987년)에 추진돼 반대 목소리조차 나올 수 없었다. 룽먼 원전 공정률은 90%. 하지만 완공은 쉽지 않다. 룽먼 원전이 가지고 있는 취약성 때문이다.
룽먼 원전은 활화산 지대에 건설되고 있어서,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원전으로 꼽힌다. 시험 운행을 할 때마다 문제가 발생해 안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더군다나 3·11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국민의 70% 이상이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대만 원전 4호기 40년 넘게 공사 중
하지만 원전 건설을 적극 추진하고 있는 대만 정부는 안전성과 경제성을 내세우면서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대만 국민 70% 이상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룽먼 원전 건설이 멈추지 않는 데는 원전 반대를 내걸고 총통 자리에 올랐던 민진당 천수이볜의 공약 뒤집기가 한몫을 했다.
1990년대 후반 대만에서 원전 반대운동이 거셌다. 이 바람을 타고 2000년 원전 반대를 내건 민진당 천수이볜 후보가 총통 자리에 오르는 역사를 만들었다. 그동안 총통 자리는 보수적인 국민당이 계속 차지해 왔다. 천수이볜 총통은 원전 건설 중단을 약속했지만, 의회 다수를 점하고 있는 국민당의 반대로 4호기 건설이 다시 시작됐다.
리 사무국장은 “천수이볜이 국민당에 무릎을 꿇으면서 대만의 정치 지형도가 국민당으로 완전히 쏠렸다. 젊은 유권자들은 정치에 환멸을 느끼기 시작했다”면서 “2011년 3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전 반대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지만, 2012년 투표 결과는 국민당 압승이라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 겐카이 원전 전경. 이곳에서 생산된 전력은 송전탑을 통해 사가현, 후쿠호카현 등 북규슈 지역에 공급된다.
룽먼 원전은 후롱 지역 사회 및 원전 반대 시민사회까지 혼란에 빠지게 하고 있다.
원전 찬성파와 반대파 사이의 감정의 골은 갈수록 깊어지고 있고, 지역주민에게 돌아가는 혜택을 두고도 주민끼리 논쟁이 벌어졌다. 지역공동체가 붕괴된 것이다.
정부는 룽먼 원전 가동을 위해 경제적 효과와 안전성을 내세우고 있다. 경제불황을 타개할 수단이 원전이라는 정부의 홍보에 2012년 총통 선거에서도 원전 건설을 지지하는 국민당 후보가 압승을 거뒀다.
정부는 여기에 룽먼 원전 완공 여부를 결정한다는 명목으로 ‘국민투표’를 내세웠다. 유권자의 0.5%, 8만6000명만 서명을 하면 국민투표를 할 수 있다. 이를 두고 원전 반대 시민사회단체가 내분을 겪고 있다. 국민투표를 해야 한다는 측과 하면 안 된다는 측으로 양분된 것이다. 국민투표를 반대하는 이유는 국민투표 결과를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민투표 결과로 인해 정부의 원전 건설에 면죄부를 줄 수 있는 상황을 걱정하는 것이다.
리 사무국장은 “룽먼 원전 공정률이 90%라고 해도 포기해야 한다. 건설 비용도 계속 늘어날 뿐”이라고 주장했다. “희망은 있나”라는 기자의 질문에 “대만은 역사적으로 지위가 불안정하다. 중국으로부터 독립을 해야 하느냐, 마느냐로 갈팡질팡하고 있다”면서 “우리의 목소리가 대만인에게 에너지 주권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를 주고 싶다”고 대답했다.
원전 찬성파와 반대파 깊어지는 갈등
일본 후쿠오카 하카타항에서 차로 1시간 30분 정도 달리면 인구 7000명이 전부인 사가현의 겐카이초(초는 한국의 읍 정도 규모의 마을을 말함)에 도착한다. 규슈전력이 40년째 가동 중인 겐카이 원전이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40년 동안 원전 반대운동을 하고 있는 겐카이초원발(원자력발전) 대책주민회의 나리토미를 만났다.
나리토미는 넉넉한 웃음이 보기 좋은 동네 할아버지 같은 인상을 가지고 있다. 고등학교 일본어 평교사로 일할 때부터 원전 반대운동을 시작했다. 그는 승진을 못하고 평교사로 정년퇴직했다. 나리토미는 “이런 작은 마을에서 원전 반대를 외치는 것이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다”며 웃었다.
7000명의 지역주민 중 겐카이 원전에 고용된 이가 600명, 직·간접적으로 겐카이 원전과 관련 있는 이가 지역주민의 60%나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나리토미와 같은 목소리는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너무나 약한 셈이다.

겐카이초 지역 주민과 원전 반대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원전 유출로 인해 오염된 공기가 어디까지 가는지 확인하는 풍선을 날리고 있다.
겐카이 원전도 마을공동체를 붕괴시켰다. 보상금 때문이다. 40년 전 원전이 들어설 때 어업권이 있는지, 혹은 땅이 있는지에 따라 주민들에게 주어진 보상금 규모가 달라졌다. 이 때문에 지역주민 사이에서 보상금을 놓고 싸우는 일이 잦았다. 원전을 반대하는 소수의 사람들은 지역에서 왕따를 당해야만 했다.
하지만 겐카이초는 일본에서 가장 잘사는 지자체로 꼽힌다. 가난하기만 했던 겐카이초는 원전이 들어서는 조건으로 1년 예산의 60%를 교부금으로 받을 수 있었다. 모든 지자체장이 이 교부금 때문에 원전 가동 중단을 말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보상금 문제로 지역공동체도 균열
겐카이 원전 건설 당시 규슈전력은 30년 가동을 약속했다. 하지만 40년이 지난 지금도 가동 중(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일본 원전 50기는 모두 가동 중단된 상황)이고, 규슈전력은 60년 가동을 위해 힘을 쓰고 있다.
5년 전 지자체와 규슈전력은 겐카이 원전을 60년 동안 가동하기 위해 지역주민 공청회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정상적인 공청회라면 겐카이 원전의 연장 가동은 불가능했을 터. 그런데 예상과는 다르게 찬성 의견만 나왔다. 지자체와 규슈전력의 꼼수 때문이었다.
나리토미는 “토론회장 곳곳에 규슈전력 직원과 계열사 직원들이 앉아 있었다. 사회자는 그 직원들에게만 발언권을 줬다”면서 “연장가동 찬성 이야기만 나왔다. 나중에 알고 보니 지자체와 규슈전력이 모종의 합의를 했던 것이다. 이 사실이 내부고발자를 통해 밝혀졌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만과 일본에서 원전을 두고 벌어지는 일들은 한국과 비슷했다. 지역주민들은 찬반 목소리로 나뉘면서 앙금이 깊어지고, 보상금을 두고 분쟁이 일어나면서 지역공동체가 붕괴된 것도 비슷했다. 원전 건설을 위해 정부나 지자체가 나서서 꼼수를 부리는 모양새도 비슷했다. 나리토미는 “한국이건, 대만이건 원전이 들어서는 지역에는 대부분 비슷한 문제가 발생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일본 ‘탈원전을 지향하는 지자체장회의’ 사무국장 우에하라 히로코
“원전사고는 미래세대 아이들에게 큰 부담”

10월 26일 선상에서 열린 ‘탈원전 자연에너지 네트워크’ 대담에서 발언을 하고 있는 우에하라 히로코 전 지사.
현재 ‘탈원전을 지향하는 지자체장회의’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우에하라 히로코는 도쿄 주변에 있는 신도시 구니다치 시장을 두 번이나 역임했다. 3선에 도전해도 당선 가능성이 높았지만,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시민사회 활동가로 돌아온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우에하라 전 시장이 활동하고 있는 단체는 일본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는 지자체장들의 첫 번째 모임이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
지난해 85명의 지자체장이 참여해 설립했다는데, 85명이라면 어느 정도 규모인가.
“일본 전체 지자체장은 약 1200명 정도 되니까 그렇게 많지는 않다. 하지만 정부 정책을 반대하는 지자체장들이 모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현재는 115명의 지자체장이 참여하고 있는데, 이 중 현직은 17명이다.”
현직 지자체장이 이런 모임에 참여하면 정부로부터 압력을 받을 것 같다.
“정부도 대놓고 압력을 가하진 못한다. 일본 정치의 특성상 지자체장의 역할이 크다. 만일 정부가 압력을 가하면 반발이 클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참여한 지자체장은 공공사업을 따내기 어려워진다. 정부가 그런 식으로 압력을 주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원전이 들어서면 지역에 여러 가지 부작용이 생긴다. 대만과 일본 지역 주민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한국과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맞다. 어디나 원전 때문에 생기는 부작용은 비슷하다. 돈 때문이다. 보조금 때문에 지역주민들 사이에 앙금이 생기고 지역공동체가 무너지게 된다. 정부는 가난한 지자체를 선택해서 돈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정부와 지자체는 원전의 안전성과 경제성만 강조하고, 다른 정보는 주지 않는다. 원전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은 혹하게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지역주민들 사이에 분쟁이 생기게 마련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후쿠시마 사람들은 어떻게 생활하고 있나.
“원전 사고 이후 후쿠시마 사람들의 생활이 비참하다. 피난을 가야 하기 때문에 모든 인간관계가 무너졌다. 정부에서 주는 보조금 때문에 주민들 사이에 분쟁이 일어나기도 했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원전 사고 이후 어떤 일을 겪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원전 사고 이후 오염된 공기를 마셨던 아이도 있을 것이다. 정부는 아이들에게 평생 책임감을 느껴야 할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지역주민의 인생을 붕괴시켰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일본 정부가 후속 대책을 내놓지 못한다는 불안감이 한국에도 많다. 일본인들은 어떻게 평가를 하나.
“일본 언론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어떤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지 보도하지 않고 있다. 일본 정부가 정보를 조절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가 보기에도 정부의 대처가 늦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아베 총리는 경제활성화를 위해 원전의 안전성만 내세우고 있다. 시민들의 분노가 계속 쌓이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50기의 원전이 모두 가동 중단된 상황이다. 원전이 없어도 전력 수급에 문제가 없나.
“정부는 전력 수급에 문제가 있다고 했는데, 올 여름에도 전혀 부족하지 않았다. 도쿄전력에서는 계획정전을 실시했다. 전기가 없으면 경제가 어려워진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하지만 전기가 없어도 큰 문제가 생기지 않았다. 원전 중단 이후 일본인이 노력하면 에너지 절약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해줬다. 전기 절약형 주택도 많이 건설되고 있다. 원전 중단 이후 일본인들은 원전이 없어도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책임자 처벌이 이뤄지지 않았다. 도쿄전력 경영진과 당시 간 나오토 총리 등 40여명이 모두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왜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인가.
“원전은 국가 정책으로 추진했기 때문에 정치인, 기업, 안전신화를 만든 학자들 모두 책임이 있다. 하지만 아무도 반성하지 않고 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지역주민들은 큰일이 발생했을 경우 책임규명 여부에 대한 약속을 철저히 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어떤 교훈을 줬다고 생각하나.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대해 세계는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 후쿠시마 사태로 무엇을 배웠는지,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무엇보다 우리의 미래인 아이들에게 엄청나게 큰 부담을 주었다. 후쿠시마 이후 한국에 문제가 생길 수 있고, 대만에도 사고가 터질 수 있다. 후쿠시마 문제는 단순히 일본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중국·대만에도 영향을 끼친다. 원전 사고는 국경을 뛰어넘는다. 원전에 대해 모두 함께 고민해야 한다.”
<대만 지룽·중국 상하이·일본 후쿠오카|글·사진 최영진 기자 cyj@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