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라이베리아 학살자 ‘하나님의 구원’ 받을까

그는 수년째 매일 자신이 저지른 범죄의 희생자가 된 사람들을 찾아가 용서를 구한다고 했다.

모두를 공포에 떨게 했던 라이베리아 최악의 학살자가 목회자로 변신했다. 라이베리아 내전 당시 반군 지도자로 2만명 이상을 학살했던 조슈아 밀턴 블라히(42)이다. 나체로 적들에게 돌격하곤 해 ‘엉덩이 깐 장군’으로 더 잘 알려진 그는 이제 목사로 활동하며 과거 피해자들을 찾아 용서를 구하고 있다.

라이베리아 내전은 1989년부터 2003년까지 이어지면서 인구 300만명 가운데 25만명을 희생시켰다. 난민은 100만명이 넘었고, 2만명의 아동들이 강제 징집되어 총을 들어야 했다.

11살 때 크란족 족장이 된 블라히는 크란족 출신의 사무엘 도 전 대통령에 맞선 반란이 일어나자 내전에 참전한 뒤 인신 공양과 카나발리즘을 행하며 누구보다 잔인한 학살을 저질렀다.

지난 2008년 1월 15일, 라이베리아 수도 몬로비아에서는 내전 당시 군벌들의 범죄행위를 조사하기 위한 진실화해위원회 청문회가 열렸다. 블라히는 신발부터 바지, 셔츠까지 모두 하얗게 차려입은 채 청문회에 출석했다.

청문회에 증거사진들이 제출됐다. 블라히가 이끌던 ‘벌거벗은 엉덩이 연대’의 소년병들이 사람의 심장을 먹고 있는 모습, 거리 교차로를 사람의 뼈로 장식하는 모습들이 찍혀 있었다. 블라히는 자신의 나신이 탄환을 보호해준다고 믿어서 소년병들도 신발만 신은 나체로 전투에 임하게 했다.

블라히가 교회에서 설교를 하고 있다. 영화 화면 캡처

목사로 변신, 과거 피해자 찾아 용서 구해
위원회는 그에게 “희생자들이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다. 그는 “아마 2만명은 넘었을 것이다”라고 몇 해 전에야 배운 영어로 더듬거리며 답변했다. 그의 이전 진술을 재확인하는 질문이 이어졌다.

“9살에서 10살이 된 아이들을 징병했다고 했다. 맞는가?” “그렇다.” “적을 죽여 심장을 먹게 했다고 했다. 맞는가.” “좀 더 자세히 설명하겠다. 나는 사람에 대해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하도록 소년병들에게 시체를 절단하라고 시켰다.” “당신이 지금 전도사 블라히로 불리고 있는 사람과 동일인인가?” “그렇다.” “위원회에 출석하기로 결정한 이유는 무엇이냐?” “신앙 때문이다. 진실을 말해야 하고, 진실만이 나를 자유롭게 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청문회가 끝나고 5년여가 지난 지금 블라히는 자신을 조슈아라고 부른다. 모세의 후계자로 이스라엘 민족을 지도했던 성서의 ‘여호수아’이다. 최근 몬로비아를 찾아 블라히를 인터뷰한 슈피겔은 그가 목사가 되어 일요일마다 몬로비아의 한 교회에서 성서를 강독하고, 거리에서 발견하는 그의 이전 소년병들을 위해 전도단을 만들었다고 10월 30일 전했다.

아동 3명을 입양했고, 2500명 이상의 페이스북 친구도 뒀다. 옛 소년병들을 위해 요리를 하는 그의 어머니는 조슈아를 보고 “착한 사람”이라고 했고, 그의 아이들은 “관대하고 재밌다”고 했다. 아내는 “새로운 사람”이라고 했다.

블라히는 자신의 죄로 처벌받은 적이 없다. 진실화해위원회는 범죄 조사 임무만 부여받았고, 집단살해 등 국제범죄를 처벌하기 위한 헤이그의 국제형사재판소(ICC)는 재판소가 창설된 2002년 이후 사건에 대해서만 관할권을 갖고 있다.

르완다, 캄보디아, 유고슬라비아의 경우처럼 국제재판소가 설립되지도 않았다. 모든 사람이 살인으로 기소받을 지경이었던 라이베리아에선 안정이 사법 정의보다는 우선시됐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블라히는 언젠가 특별재판소가 설립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고, 그때가 되면 재판을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남은 생을 감옥에서 보낼 준비가 되어 있느냐는 물음에 “사형을 포함해 기꺼이 받아들이겠다. 도망갈 수 있음에도 그러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수년째 매일 자신이 저지른 범죄의 희생자가 된 사람들을 찾아가 용서를 구한다고 했다. 그는 “매우 힘든 순간이다. 과거엔 느낄 수 없었지만 이제 나는 그들의 고통을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블라히와 함께 몇 년을 함께 지냈던 미국의 심리학자 린 웨스트먼은 블라히가 마체테(날이 넓은 벌채용 칼)를 들고 그를 위협했던 이전 적과 마주쳤을 때의 이야기를 전해줬다.

블라히는 무릎을 꿇고 그에게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죽겠다고 말했고, 남자는 결국 블라히를 남겨두고 갔다고 한다. 블라히는 단순한 용서가 아닌 마음 깊은 곳에서 나오는 “완전한 용서”를 원한다고 했다. 그는 76명의 피해자 중 19명이 그를 용서했다고 했다.

페이스 그웨(39)는 그가 만난 77번째 피해자다. 블라히는 그녀에게 못된 짓을 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정확히 무슨 일을 했는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그웨가 16살이고 블라히가 19살이었던 1991년 7월, 라이베리아 동부 즈베르두 교외에 살던 그웨 가족은 라디오로 전쟁 소식을 들었지만 우기로 불어난 강물 때문에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블라히 무리들이 그웨의 집을 쳐들어왔다.

그웨 집이 보호하던 지오족 출신의 유모 때문이었다. 그웨의 오빠는 유모를 내놓으라는 블라히에게 “그녀는 너나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라고 말하며 맞섰다. 곧 블라히의 명령으로 그웨의 오빠는 잔인하게 죽임을 당했다. 엄마와 언니들은 성폭행을 당한 뒤 살해됐다. 그웨는 살아남았지만 끔찍한 상처와 기억은 잊혀지지 않았다.

“이제 나는 그들의 고통을 느끼고 있다”
교사로 일하며 한 달에 27달러를 버는 그웨의 허름한 집을 찾은 블라히는 무릎을 꿇고 그녀의 발을 잡은 뒤 울음을 떠트렸다. 그리곤 “나를 용서해 달라”고 말했다. 흐느끼던 그웨는 수분이 지난 후 “어떤 말도 듣길 원하지도, 어떤 말도 하고 싶지 않다”며 “그냥 가달라. 더 묻지 말고 혼자 내버려 두라”고 말했다.

그러나 블라히는 포기하지 않으려 했다. 돈을 제안했지만 거절당했다. 블라히는 그웨가 가족이 있는지, 왜 혼자 사는지 물었고, 가족을 만나고 싶다고도 했다. 여전히 자신이 그웨의 온가족을 몰살시켰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블라히는 “나의 아이들은 웃고 있는데 내가 죽인 아이들은 어떨까. 매일이 도전이고 모두에게 닿을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웨는 “용서가 불가능하다는 것은 당신도 알 것이다”라고 답했다.

모든 것을 가식으로 본다면 블라히가 굳이 17년간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는 이런 일을 되풀이하는 것은 쉽게 설명되지 않는다.

내전 당시 사무엘 도 대통령의 귀를 잘라내 출혈로 죽게 내버려둔 동안 그의 권자에 앉아 맥주를 마셨던 군벌 지도자 프린스 존슨이 상원의석에 앉아 있을 정도로 전쟁범죄에 완전한 면책을 준 라이베리아에서 그가 정치에 뛰어들어도 놀라운 일은 아니다. 그렇다면 블라히가 정말로 변했다는 가능성만 남는다.

몬로비아의 존 쿤 쿤 주교는 1996년 내전을 종식시키려 군벌 지도자들을 찾아다니며 설득하던 때를 떠올렸다. 그는 블라히를 찾아 “예수는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의 인생을 위한 더 좋은 계획을 갖고 있다”고 말한 뒤 그를 위해 기도했다. 잠자코 듣던 블라히는 그의 경호원에게 다가가 주교를 안에 들여보냈다며 무릎에 총을 쐈다.

블라히는 나중에 그 경호원 가족을 찾아 사죄를 구했다. 이후 다시 블라히를 만난 쿤 쿤 주교는 “블라히는 자신이 악마에 사로잡혀 있다고 믿으며, 매우 두려워해 빠져나올 방법을 찾고 있었다”고 말했다. 주교는 블라히가 아마도 수천 번 살인을 행한 사람도 용서해주는 종교를 발견하고 용서라는 행위에서 신의 위대함을 깨달았을지도 모른다고 전했다.

전범이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는가? 블라히는 “천국에 갈 것 같으냐”는 물음에 “성서가 말하는 바다. 예수를 믿는 이는 구원받는다”고 말했다.

그는 항공정비사를 꿈꾸는 12살이 된 그의 큰아들이 자신을 자랑스러워할 것이라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신이 나를 하나의 징표로 사용하길 원한다고 믿는다. 사람이 아무리 (구원에서) 멀어지더라도 변할 잠재력을 갖고 있다. 내일이라도 예수를 만났을 때 ‘너는 내가 준 기회를 허비했다’는 말을 듣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

<주영재 경향신문 국제부 기자 jyj@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