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경제]스파이 - 한국기업 가치 저평가 ‘코리아 디스카운트’

아무도 모르게 특명을 수행하는 스파이. 아내조차도 남편이 스파이란 사실을 몰라야 하는 그 세계는 냉혹하다. 승자도, 패자도 없다. 목적을 위해 쓰여지고, 쓰임이 떨어지면 용도폐기된다. 그런데 ‘목숨을 내놓고 사는’ 스파이도 집에서는 평범한 가장이다. 매월 받는 월급이 좀 올랐으면 좋겠고, 마누라 바가지가 무서운 것도 보통 사람들과 다를 게 없다.

이승준 감독의 <스파이>는 ‘세금 제하고 연봉 6000만원짜리’ 스파이 김철수(설경구 분)가 소말리아, 태국에서 벌이는 활극이다. 자신을 드러내면 안 되는 까닭에 ‘세종물산’의 김 대리라는 직함을 갖고 있다. 나랏일을 한다며 허구한 날 출장 다니는 남편에게 스튜어디스 아내 영희(문소리 분)는 불만이 많다. 아내의 휴대폰에 기록된 남편의 호칭은 ‘웬수’다.

태국에 있는 북한 물리학자 백설희를 확보하기 위해 한국과 북한, 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이 맞붙는다. 김철수가 비밀 공작에 투입된다. 때마침 아내 영희도 태국행 국제선을 탄다. 영희 앞에 잘생긴 의문의 남자 라이언(다니엘 헤니 분)이 나타난다. 이를 목격한 김철수. 나라도 지키면서 아내의 바람도 막아야 한다.

영화 <스파이>에는 큰 국제적 음모가 숨어 있다. ‘미국의 기업가들이 남북한 전쟁 무드 조성→한국의 주가 폭락→폭락한 주식을 싼 가격에 대거 매입→인수·합병(M&A)’이다.

한반도에 전쟁이 나면 그들은 더 좋다. ‘이중스파이가 남한에서 북한으로 핵미사일 발사→북한의 보복→영국 군수산업체가 한반도에 무기판매→막대한 수익창출’의 시나리오다. 영화 속 김철수 상관의 말처럼 한반도를 갖고 장난치는 ‘나쁜 놈’들이다.

항상 불안불안한 한반도 정세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만들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란 한국과 한국 기업의 가치가 실제보다 평가절하되는 현상을 말한다. 우리 기업들이 경쟁국인 대만, 싱가포르 기업은 물론 태국, 말레이시아 기업보다도 저평가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도 이런 코리아 디스카운트 때문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은 불투명한 회계, 재벌 중심의 기업지배구조, 노동시장의 경직성, 정치적 불확실성 등 다양하다. 그 중에서도 지정학적 위험, 즉 대북문제는 대표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 유발인자다. 2004년 대한상공회의소가 외국계 펀드매니저 30명에게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원인을 물어보니 북핵 등 국가위험도가 30.4%로 가장 많았다.

북핵문제나 남북 경색 같은 북한 관련 이슈가 터지면 금융시장이 먼저 출렁댄다. 주가는 떨어지고, 환율은 약세로 돌아선다. 국내 채권과 주식에 투자된 해외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기도 한다.

세계적인 신용평가사들이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에 대해 언급한다. 반대로 남북경협이 술술 풀리거나 이산가족상봉, 금강산 관광 재개 등의 소식이 들리면 현대아산 등 남북경협 테마주는 급등한다.

대북 이슈는 여전히 큰 이슈지만 국내 금융시장이 예전만큼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다는 분석도 있다. 2009년 5월 2차 북한 핵실험 당시 코스피지수는 장중 한때 6% 넘게 급락했지만 이후 급속히 회복됐다.

2010년 3월 천안함 침몰과 11월 연평도 포격사건 때도 마찬가지였다. 남북이 핑퐁게임을 수십년째 되풀이하면서 시장도 내성이 생겼다는 얘기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한국 기업들에 대한 평가도 많이 회복된 것으로 보인다. 기업들의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으로 주가수익비율(PER)이 있다. 주가를 주당 순이익으로 나눈 것인데, 주가수익비율이 10이면 주식이 주당 순이익의 10배 가격으로 팔린다는 뜻이다

영화 속 경제

. 높을수록 고평가를, 낮을수록 저평가를 받는 것으로 분석된다. 영국의 경제전문지 파이낸셜타임스는 올 5월 기준 우리나라 PER는 16.3으로 글로벌 평균 15.1에 비해 높다고 밝혔다. 글로벌 평균 수준까지는 우리 기업들도 평가를 받고 있다는 의미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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