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경제]관상 - 나무(미시)만 봐서는 숲(거시)을 모른다

한재림 감독의 <관상>은 궁중 쿠데타를 담은 역사 드라마다. 무대는 1453년 계유정란이다. 수양대군이 자신의 조카인 단종을 폐위하기 위해 김종서를 살해한 사건이다.

한바탕 피비린내가 일었고, 그 결과 수양대군은 세조가 된다. 이리 상의 수양대군(이정재 분)과 호랑이 상 김종서(백윤식 분)의 권력 게임에 김내경(송강호 분)이라는 관상쟁이가 끼어든다. 김내경은 김종서의 편에 선다.

<관상>의 특징은 선과 악을 함부로 규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조카를 살해하고 왕위를 찬탈한 수양대군의 ‘패륜’을 부각시키면서도 ‘이씨 조선왕조’를 지켜야 했다는 명분도 빠뜨리지 않는다. “언제부터 조선의 왕가가 이씨가 아니라 김씨가 됐단 말이더냐”라는 수양대군의 항명이 그것이다. 김종서의 ‘황표정치’를 신하들이 단종의 왕권을 농단한 것으로 해석한 것이다.

관상쟁이 내경은 외진 해변가에 숨어 산다. 역적의 후손으로 권력의 속성을 누구보다 잘 안다. 하지만 운명은 그를 가만두지 않는다. 한양의 유명 기생인 연흥(김혜수 분)은 그를 세상 밖으로 유혹하고, 아들 진형도 과거를 통해 관직을 얻기 위해 길을 떠난다.

내경은 사람의 얼굴상을 통해 과거와 미래를 안다. 돈을 벌 상, 인덕을 얻을 상, 시와 서예를 즐길 상 등을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시대의 큰 흐름은 작은 개개인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그는 알지 못했다. 애초에 시대정신을 초야에 묻혔던 관상쟁이가 읽기에는 버거운 주제였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경제를 알려면 미시경제와 함께 거시경제도 알아야 한다. 아무리 미시경제에 정통한들 거시경제를 모르면 흐름을 그르치게 된다.
미시경제학(microeconomics)이란 가계와 기업 등 개별 경제주체들을 관찰하고 연구하는 학문이다.

이들의 행동양식을 통해 시장에서 재화와 서비스의 가격이나 거래량이 어떻게 결정되는지를 분석하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생산자에게 생산량은 이윤을 극대화할 수 있는 지점이다. 반면 소비자에겐 효용을 극대화하는 점이 소비량이다. 공급과 수요가 맞는 지점에서 균형 가격이 성립한다.

거시경제학(macroeconomics)은 가계와 기업이 모두 포함된 한 나라 전체 경제현상을 분석한다. 경제성장률, 소비자물가, 실업, 국제수지, 국민소득, 환율 등이 어떻게 작용하며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파고든다. 통화정책, 재정정책은 거시경제의 영역이다. 시장에 국가의 개입이 필요없다는 고전학파나 신자유주의, 국가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케인즈 학파에 대한 연구도 거시경제가 다룬다.

삼성전자의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스마트폰을 얼마나 생산해야 하는지를 고민한다면 미시경제고, 환율변동이 삼성전자 수익구조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다면 거시경제다.

부동산과 주식투자에도 거시적 관점과 미시적 관점이 필요하다. 정부가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해 분양주택 공급을 늘리고 주식시장에 활력을 주기 위해 연기금을 동원했다고 치자. 하지만 이는 미시적 대책일 뿐이다. 향후 미국이 양적완화를 중단하고 돈을 거둬가게 되면 부동산과 주식은 하락을 피하기 어렵게 된다.

경제를 제대로 읽으려면 거시경제에 대한 주시를 거두지 말아야 한다. 정부가 공짜로 주택담보대출을 해준다손 치더라도 향후 세계 경제는 어떻게 될 지, 국내 경제는 흔들림이 없을지, 국민소득은 증가할지 등을 다각적으로 검토한 뒤 집을 사야 한다는 얘기다.

영화 속 경제

“난 사람의 얼굴을 봤을 뿐 시대의 모습은 보지 못했소. 시시각각 변하는 파도만 본 격이지. 바람을 보아야 하는데…. 파도를 만드는 건 바람인데 말이오.” 조선 최고의 관상쟁이 내경이 바다에 이는 파도를 보며 읊조린다. 나무(미시)만 봤지 숲(거시)은 보지 못했다는 자기 고백이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