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경제]터미네이터4 - 승자 독식의 ‘네트워크 경제’

터미네이터를 단순한 로봇 공상과학영화(SF)로 보면 오산이다. 스토리의 핵심은 타임머신이다. 백투더 퓨처와 같은 부류의 영화라는 얘기다. 터미네이터는 미래 세계에서 말썽이 되는 요주의 인물을 제거하기 위해 미래에서 과거로 암살 로봇을 파견한다는 것이 이야기의 큰 줄기다. 터미네이터 1·2·3편은 모두 이런 시퀀스를 따르고 있다. <터미네이터 4, 미래전쟁의 시작>은 앞선 3개 영화의 프리퀄이다. 프리퀄이란 속편이지만 전작의 앞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시간적으로 보면 1편은 1984년이고, 2편은 1995년이다. 3편은 핵전쟁이 난 2003년이다. 4편은 2018년이다. 그러니까 터미네이터 T-800(아놀드 슈왈츠네거 분)이 사라 코너를 찾아왔던 1편의 34년 후의 이야기지만 스토리 구성으로 보면 가장 먼저다.

1편에서 기계군단을 이끄는 ‘스카이넷’은 저항군 지도자 존 코너의 어머니 사라 코너를 살해하기 위해 T-800을 보낸다. 이를 막기 위해 존 코너는 자신의 부하 카일리스를 보낸다. 사라 코너는 카일리스와 사랑에 빠져 존 코너를 낳는다. 2편에서는 중학생이 된 존 코너를 죽이기 위해 스카이넷이 최신 터미네이터 T-1000을 보낸다. 존 코너는 T-800의 개량 터미네이터를 과거로 보내 어린 자신을 보호하게 한다. 3편에서 존 코너가 스무살이 되자 스카이넷은 더 개량종인 T-X를 보내고 존 코너 역시 또 다른 터미네이터를 보낸다.

존 코너는 심판의 날을 막기 위해 공군기지에 침입, 스카이넷의 스위치를 끈다. 하지만 스카이넷은 군사방위 인터넷 네트워크다. 어디에도 본체는 없었다. 1997년보다는 늦었지만 예언된 대로 핵전쟁이 일어난다.

그리고 4편이다. 핵전쟁(심판의 날)이 지나갔고 존 코너(크리스찬 베일 분)는 이제 저항군으로 성장했다. 스카이넷은 아직 어린 저항군인 카일리스를 위험 인물로 보고 납치한다. 존 코너는 카일리스 구출에 나선다. 카일리스는 과거로 보낼 그의 부하지만 동시에 아버지다. 존 코너가 스카이넷을 폭파시킨다. 하지만 끝이 아니다. 존 코너는 “스카이넷은 파괴되었지만 스카이넷의 주변 시스템은 아직 작동하고 있다”고 말한다.

스카이넷은 네트워크다. 쉽게 말해 인터넷이다. 지금이야 일반화가 됐지만 1984년 당시 ‘네트워크’를 미래의 적으로 설정한 것은 대단한 상상력이다. 이제는 경제도 네트워크를 빼놓고는 말하기 어렵게 됐다. 이른바 ‘네트워크 경제’(network economics)다. 네트워크 경제란 네트워크에 이용자가 추가될 때 비용은 추가적으로 들지 않지만 한계 이득은 훨씬 많이 발생하는 경제상황을 말한다. 즉 인터넷 쇼핑몰 이용자가 10명이든, 100명이든 추가적인 비용은 발생하지 않는다. 오프라인 쇼핑몰은 이용자가 10명이냐 100명이냐에 따라 고객관리 비용이 크게 달라진다.

네트워크 경제는 정보기술이 발달하면서 가능해졌다. 네트워크에서는 수확체감의 법칙이 통하지 않는다. ‘수확체감의 법칙’이란 자본과 노동 등 생산요소가 한 단위 추가될 때 이로 인해 늘어나는 한계생산량은 점차 줄어드는 현상이다. 즉 생산요소를 추가적으로 계속 투입하더라도 어느 시점이 지나면 수확 증가량이 꺾인다는 의미다. 하지만 네트워크 상에서는 추가 인원에 대한 한계비용이 0이기 때문에 한계수익(한 단위 당 수익)은 더 늘어난다. ‘수확체증’이 되는 셈이다.

영화 속 경제

때문에 네트워크 경제는 승자 독식 경제라고도 부른다. 닷컴 기업들의 독점력이 커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 3Com의 설립자 밥 메트칼프는 네트워크의 가치(V)와 사용자 수(N) 사이에 V=N²-N의 관계가 성립한다고 주장했다. 사용자 수가 늘어남에 따라 그 가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는 것이다. 일단 시장을 선점하면 고착화와 잠금효과(Lock-In)가 발생한다. 처음 포털사이트 ‘다음’을 사용한 유저라면 ‘네이버’로 옮겨가기 쉽지 않다는 얘기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