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위기의 안철수]“안철수에 대한 기대가 반감됐다”

지역 시민포럼 피로도와 불만 증가… 신당 조직화·세력화 갈수록 어려워져

최장집 전 정책네트워크 ‘내일’ 이사장의 사임으로 안철수 의원의 세력화·조직화에 빨간불이 켜졌다. 위기는 최 전 이사장의 사임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니다. 안철수 의원의 최대 지지기반인 호남의 민심 또한 술렁이고 있다. 8월 5일 큐리서치와 뉴스1이 공동으로 실시한 전북지역 여론조사에 따르면 안철수 신당의 지지율은 33.6%로 33.5%인 민주당과 비슷하게 나왔다. 안철수 신당의 지역적 기반이 될 것으로 전망됐던 호남지역에서 신당에 대한 기대감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대선 직후만 하더라도 호남지역의 안철수 신당 지지율은 민주당과 2배 이상 차이가 났다.

8월 12일 무소속 안철수 의원이 국회 의원회관에서 ‘정책네트워크 내일’ 최장집 이사장의 사퇴와 관련해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 김영민 기자

안 의원에 대한 기대심리를 줄인 건 단순히 호남지역의 바닥 민심만이 아니다. 안 의원을 지지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조직화에 나섰던 지역 조직 관계자들마저 “안 의원에 대한 기대가 반감됐다”며 싸늘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안 의원의 최대 지역 조직이라고 볼 수 있는 광주·전남 시민포럼의 한 핵심 관계자는 최 전 이사장 사퇴를 두고 “이는 안 의원 조직에 대한 경고다”라고 말했다. 광주·전남 시민포럼은 포럼에 가입한 인원만 5000명에 달하는 지역 최대 규모의 조직이다. 이 관계자는 최 전 이사장이 권한은 없이 책임만 주어진 정책네트워크 내일의 구조에 문제를 제기한 것을 두고 “최 전 이사장은 자신을 권한 없는 명예직 정도로 생각한 안 의원에 대한 실망이 클 것이고, 마찬가지로 지금 각 지역의 시민포럼들도 안 의원의 파트너가 아니라 필요할 때만 찾는 관리대상이라는 점에서 실망감이 점점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최대지지 기반 호남 민심 술렁
지역 시민포럼은 모두 자발적으로 만들어진 조직이다. 정당이나 정치조직으로서의 위상을 갖고 있지 않다. 안 의원이나 정책 네트워크 내일에서 재정적 지원을 받고 있지 않으며, 따로 이들에게 공식적인 직책이 주어진 것도 아니다. 하지만 지난 대선 전부터 각 지역의 시민포럼은 실질적으로는 안 의원의 지역조직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최 전 이사장의 경우처럼 권한은 없고, 책임만 있는 것은 시민포럼 측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대선을 앞두고 1년 정도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면서 시민포럼 측 관계자들은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 지역 시민포럼 측의 한 관계자는 “이게 정당조직도 아니고 정치조직도 아닌데 이러한 상황에서 꾸준히 시민포럼에서 활동할 수 있는 사람은 결국 정치 룸펜일 뿐”이라고 말했다. 지역 조직 관계자들의 피로도와 불만이 증가하면서 시간이 갈수록 유명무실해지는 안 의원 시민포럼은 늘어가고 있다.

광주·전남처럼 안 의원에 대한 지지도가 높은 지역에서는 정리가 되지 않은 채 ‘포럼’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 단체가 9개나 난립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역 시민포럼 측이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은 ‘창당’이다. ‘포럼’이라는 틀로는 더 이상 조직화나 세력화가 지속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광주·전남 시민포럼의 이상갑 공동대표는 “현재 광주·전남지역에 포럼들이 계속 생겨나고 있어서 포럼간 관계 문제도 제도적으로 정착을 시키고 포럼 이외의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은 맞다”면서 “세력을 확장하는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 대안을 마련해야 할 것 같고, 시간이 지나면 그에 대한 결과들이 나올 것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다른 형태의 구체적인 세력화·조직화의 조짐은 아직 보이지 않고 있다. 정책 네트워크 내일에서 각 지역을 대표하는 기획위원 몇 명을 더 선발한 것 외에는 지역 포럼이 기대하는 전국 단위의 정당 창당으로 이어질 만한 특별한 세력화의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신당 창당 속도에 관해서 입장 달라
신당 창당 속도에 대한 지역 시민포럼 측과 안 의원 측의 온도차는 크다. 광주·전남 시민포럼 관계자는 “우리는 사실 내년 지방선거가 절박하다. 지방선거에서 어느 정도 세력화를 이루지 못하면 이곳에서 민주당을 견제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호남지역에서 민주당의 아성을 깨뜨리기 위해서는 창당을 하고 세력화를 한 뒤 지방선거를 치르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는 것이다.

지난 해 10월 안철수 당시 대선 후보가 광주 충장로에서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 강윤중 기자

반면 안 의원 측 관계자에 따르면 창당에 대한 뚜렷한 입장은 없는 상황이다. 차기 총선을 앞두고 정치 일정 및 정치적 환경에 맞춰서 진행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 있는가 하면, 10월 재·보선 결과와 내년 지방선거의 흐름을 지켜본 후에 진행해야 한다는 입장도 있다. 이러한 온도 차이는 지역 시민포럼 측과 안 의원 측의 이해관계가 계속해서 엇갈리기 때문이다. 기초단위 정당공천제 폐지 문제에서도 지역의 시민포럼과 안 의원 측의 입장은 엇갈리고 있다.

광주·전남 시민포럼 측 관계자는 정당공천제 폐지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선거에서 정당공천제 폐지가 안철수 신당에 유리하게 작용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관계자는 내년 지방선거에서 기초의원에 대한 정당공천제가 폐지된다면 모두 무소속인 상황에서 현직이 유리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는 정치평론가들 또한 인정하고 있는 부분이다.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은 “지금 흐름상 기초의원 정도는 무공천으로 가게 될 것 같은데, 그렇게 된다면 현역들이 다시 재선이 될 가능성이 꽤 높다”고 말했다. 하지만 안 의원 측은 정당공천제 폐지를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던 만큼 여기에 대해서는 번복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서로간의 이해관계가 엇갈리고 입장이 달라지다보니 지역 시민포럼과 안 의원 측이 신뢰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지역의 한 시민포럼 관계자는 “안 의원 핵심 그룹 측이나 정책 네트워크 내일에서 지역으로 사람이 내려오는 것이 껄끄러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시민포럼이 공식적인 조직이 아니라 자생적인 조직인 만큼 서울에서 안 의원의 측근이라고 하는 누군가가 내려와서 (시민포럼과는 별개로) 따로 조직화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는 뉘앙스다.

안 의원 측과 시민포럼 측이 서로 불신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시민포럼 측과 안 의원 측의 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지역 포럼에서는 안 의원 측이나 정책 네트워크 내일과 지역포럼이 긴밀하게 소통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만도 크다. 지난 대선 당시에도 캠프와 지역 포럼 간의 소통의 문제점은 지적돼 왔다. 지난 대선을 얼마 앞두고 충북지역에서 포럼이 발족했다. 하지만 그날은 안 의원이 대선 후보직 사퇴를 발표하던 날이었다. 결국 충북 시민포럼은 발족 직후에 포럼을 해체하는 해프닝을 벌여야 했다. 지역과 대선캠프가 전혀 소통하지 못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안 의원 측과 시민포럼 간 소통에 문제
지역 시민포럼이 안 의원 측 및 정책 네트워크 내일과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 또한 정당구조가 아닌 네트워크라는 모호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안 의원의 핵심 측근들은 ‘바이버’로 소통한다고 알려져 있다. ‘바이버’는 카카오톡과 비슷한 커뮤니케이션 서비스다. 서버가 미국에 있다보니 도·감청이 어려워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들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카카오톡보다 바이버를 많이 사용한다. 안 의원 측 관계자는 ‘바이버’가 지난 대선에서 핵심적 역할을 했던 실장·부실장 그룹들의 최대 의결기구라고 말했다.

핵심 그룹 간 메신저를 통해서 긴밀한 소통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정당조직이 아니기 때문에 공식적인 커뮤니케이션 채널 없이 핵심 그룹 간 메신저로만 소통하다 보니 핵심의 외곽에 있는 정치세력들은 소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이는 ‘바이버’에서 소통하고 있다는 안 의원 측 관계자들도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는 부분이다. 한 관계자는 “내부에서 커뮤니케이션의 채널이 제도화되어 있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사실 이 때문에 내부 그룹에서도 커뮤니케이션 문제로 오해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은데 지역에서는 오죽하겠나”라며 “특히 지역에서는 구심점이 없고 내부 정책 결정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모르고 있기 때문에 답답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책임이나 권한이 공개적이지 않는 시스템은 지양을 하고, 조직의 권한을 분명하게 배분하는 발전 방향이 필요하기는 하다”고 말했다.

이렇듯 지역 민심마저 이탈하고 있는 상황이 지속되면서 최근 들어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당 창당이 시급하다는 위기의식이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안 의원 측 관계자에 따르면 조직화·세력화에 위기감을 느낀 안 의원 측 그룹에서는 최근 신당 창당을 가속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 관계자는 “지금 위기상황에서 동력을 만들기 위해서는 정당을 만드는 게 필요하고, 현재 안 의원 측 핵심 그룹에서는 그러한 것에 대해서 대부분 동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문제는 신당 창당의 방향에 대한 컨센서스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내부에서 정당의 필요성은 알지만, 이념이나 가치 지향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면서 “너무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중요한 것에 대한 결정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결국 안 의원이 이를 소화해서 결정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조직화·세력화의 위기에 봉착한 현 상황에서 결국 이를 해결할 사람은 안 의원 자신이라는 것이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