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경제]터보 - 약자가 이기기 바라는 마음 ‘언더독 효과’

미국산 애니메이션은 전형적인 스타일이 있다. 주인공은 생뚱맞은 꿈을 꾼다. 주변에선 그를 놀린다. 하지만 누군가는 “꿈을 포기하지 말라”고 격려한다. 마침내 시련을 이기고 꿈을 이룬다. 할리우드는 애니메이션이 어린이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공장이 되어야 한다고 작정을 한 모양이다. 프로야구처럼 말이다.

드림웍스의 <터보>는 이 공식을 매우 잘 따랐다. 지상 최대의 느림보 달팽이가 세계 최고의 자동차 대회에 나가 인간과 겨뤄 마침내 승리한다는 게 이야기의 기본 골격이다. 말도 안되는 얘기도 현실이 될 수 있으니 꿈과 용기를 잃지 말라는 명징한 메시지가 내포돼 있다.

<터보>는 <쿵푸팬더>와 <슈렉> 제작진이 만들었다. 데이비드 소렌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기도 하다. 주인공은 달팽이 테오다. 그의 우상은 최고의 카레이서 ‘기 가니에’다. 테오는 말한다. “가슴 뛰게 하는 것이 누구나 하나쯤 있잖아요. 저에겐 그게 폭발적인 스피드예요.”

테오는 우연히 자동차 안으로 빨려들어간다. 여차여차한 과정을 겪으면서 ‘슈퍼 달팽이’가 된다. 눈은 전조등이 되고, 꼬리는 후방등이 된다. 몸에서는 라디오 음악이 흘러나온다. 등 뒤 껍데기는 모터가 된다. 테오는 ‘터보’로 이름을 바꾼다. 드림웍스 판 <카>다. 테오만큼 엉뚱한 꿈을 꾸는 인간이 있다. 티토다. 티토는 테오를 통해 자신의 가게와 동네가 활기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이들은 ‘인디500’에 참여하기로 한다. 고릴라가 야구하고(미스터 고), 달팽이가 카레이싱을 하는 세상이 됐다. 인디500은 미국 인디애나폴리스에서 열리는 대표적인 자동차 경주대회로, ‘인디애나폴리스 500마일’이 정식 명칭이다. 2.5마일의 원형 서킷을 200바퀴 돌아 총 500마일(804.7㎞)을 달린다.

1911년 첫 대회가 열렸고, 40만명이 동시에 관람할 수 있는 블록버스터급 스포츠 이벤트다. 초기 대회에는 2인승 자동차로 정비사가 운전자 옆에 타 후방상황을 알려줬다. 하지만 레이하륜은 백미러를 장착한 1인용 자동차를 설계해 대회에 참가, 우승을 차지한다. 아내의 화장거울이 힌트가 됐다. 백미러는 이렇게 탄생했다.

“덩치가 작다고 꿈마저 작지 않다”고 격려해주던 기 가니에. 하지만 터보가 참여하자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약자를 응원하지. 자신도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아.”

달팽이 터보가 인디500에 참가하자 언론과 관중들은 터보를 응원한다. 약자가 강자를 이기기 바라는 마음, 이른바 ‘언더독 효과’다. 언더독(Under dog)이란 싸움에 진 개라는 의미다. 탑독(Top dog)은 이긴 개다. 투견에서 이긴 개가 위로, 진 개는 밑에 깔린 것에서 유래했다.

사람들은 강자는 견제하지만 약자에겐 동정하는 마음이 있다. 남양유업 사태 당시 대리점주들의 편을 드는 여론이 많았던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원청기업과 하청기업이 충돌할 때 어쨌든 약자 주장에 먼저 귀가 쏠린다. 재기를 꿈꾸는 기업인이나 꿈을 이루기 위해 대학 창업센터에서 밤을 새는 대학생들도 ‘언더독’이다.

언더독은 초라하게 시작하지만, 꿈과 희망을 가지고 도전해 역경을 헤치고 성공한다는 스토리가 있다. 스토리는 강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대다수의 개인은 언더독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공감은 더하다. 기 가니에의 말처럼 ‘혹시 나도…’라는 기대감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한 실험에서는 약자의 성공 스토리를 담은 영화를 보여준 뒤 초콜릿을 고르게 했더니 70%의 실험자가 유명기업보다 중소기업의 제품을 선택했다는 결과도 있다.

영화 속 경제

언더독 효과가 본격적으로 쓰인 것은 1944년 미국 대선이다. 당시 각종 여론조사에서 패배가 예상되던 민주당 해리 트루먼은 예상을 깨고 공화당 토머스 듀이에 승리한다. 선거 막판 동정표가 쏠렸던 것으로 분석됐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