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경제]세이프 헤이븐 - 남편에게 쫓긴 여인의 ‘안전자산’은

주먹으로 자신을 때리는 남편을 칼로 찌르고 도망간 아내가 있다. 남편은 의처증에 가깝다. 그는 경찰이다. 자신의 직위를 이용해 그녀를 쫓고 있다. 남편이 쫓아오지 못할 안전한 장소는 어디일까. 니콜라스 스팍스의 소설 <세이프 헤이븐>의 내용이다. 이 소설을 라세 할스트롬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동명영화로 만들어냈다. 여자주인공 케이티는 줄리안 허프, 남자주인공 조쉬는 알렉스 웨들리가 맡았다. 각각 유부녀와 아이 둘이 있는 유부남이지만 그렇게 보이기에는 두 사람의 ‘비주얼’이 너무 좋다.

케이티는 애틀랜타행 버스를 타고 가던 중 미국 남부 어느 한적한 해변마을에 내린다. 이곳에서 잡화점을 하는 조쉬를 만난다. 아내가 암으로 죽고 홀로 남매를 키우는 ‘싱글파파’다. 조쉬와의 관계 맺기를 망설이는 케이트에게 이웃에 사는 ‘조’라는 여인이 사귐을 부추긴다. 도망가지 말고 부닥치라는 것이다. 조의 정체는 뭘까.

<세이프 헤이븐>은 여러 모로 <적과의 동침>과 닮았다. 그러면서 <식스센스>나 <사랑과 영혼>도 떠오른다. 깔끔한 영상과 전개는 인상적이지만, 공포물도 아니고 스릴러물도 아닌 잡탕이라는 평가도 가능하다.

세이프 헤이븐(Safe Haven)이란 안전한 피난처다. 케이티에게는 해변마을과 조쉬 가족이 ‘세이프 헤이븐’이다. 경제에서 ‘세이프 헤이븐’은 ‘안전자산’이라는 뜻이다. 안전자산이란 어떤 상황에서도 투자원금을 지킬 수 있는 상품을 말한다. 리스크가 작고 안정성이 높은 상품이다. 수익성이 크지 않을 수는 있지만 위기 때 큰 힘을 발휘한다. 때문에 경제가 좋지 않을 때 투자는 안전자산으로 몰린다. ‘세이프 헤이븐’은 시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나라에 따라 바뀌었다. 통상은 금, 미국 국채, 일본 엔화, 스위스 프랑 등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저금리로 풀린 돈이 금과 원유, 원자재, 미국 국채, 달러, 엔 등에 몰렸다. 호주 국채도 인기였다. 신흥국 국채, 주식, 파생상품은 외면당했다. 하지만 과도한 자금이 몰리면서 금과 원유, 원자재에 거품이 끼기 시작했다. 원유에 이어 최근에는 금값이 폭락하고 있다. 구리, 동같은 원자재도 가격이 많이 안정화됐다.

달러와 엔이 안전자산으로 인식되는 것은 미국과 일본 정부에 대한 믿음이 크기 때문이다. 자국의 통화가 안전자산이 된다는 것은 세계가 그만큼 자국의 경제력을 인정했다는 얘기다. 국가로서는 매우 ‘프라이드’가 생길 만한 일이다. 문제는 경제력이 충분히 뒷받침되지 않을 때다. 그런 때 자국의 통화가 안전자산의 지위에 오르면 경제는 큰 부담을 안게 된다. 시장에서 통화를 사려는 수요가 몰리면서 주변국 돈에 비해 강세, 즉 고평가받게 된다. 예를 들면, 100엔에 1000원이 정상 환율인데 1200원, 1300원으로 오를 수 있다는 얘기다. 이렇게 되면 일본 수출기업들은 가격경쟁력을 잃게 돼 수출환경이 나빠진다. 이런 현상을 ‘안전통화의 저주’(curse under safe haven)라고 부른다. 배리 아이켄그린 UC 버클리대 경제학 교수가 일본 사례를 연구하면서 이 같은 주장을 폈다.

일본은행(BOJ)은 엔화 가치를 낮추기 위해 외환시장에 개입했지만 별 성과는 없었다. 결국은 정치가 나섰다. 아베노믹스다. 엔화 약세를 유도한 아베노믹스가 일본 국민들에게 열렬한 환영을 받은 것은 이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부동산이 대표적인 ‘세이프 헤이븐’이었다. 부동산은 투기성 높은 자산이지만 한국에서는 불패신화를 이어갔다. 하지만 금융위기 이후 땅값은 완연히 꺾였고, 저성장·고령화시대에 접어들면서 부동산은 더 이상 안전자산이 아닌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영화 속 경제

케이티에게 경찰 남편은 든든한 ‘안전자산’이었다. 하지만 남편이 폭력을 휘두르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그녀는 새로운 안전자산을 찾아 나섰고 그 답은 조쉬 가족이었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