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경제]은밀하게 위대하게 - 누구를 위한 ‘자살명령’인가

예전에는 어느 동네나 ‘바보형’들이 있었다. 콧물 질질 흘리며 동네 아이들을 따라다니다 놀림감이 되기 일쑤였다. 그런데, 만약 그네들이 바보가 아니었다면?

장철수 감독의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동네 바보들이 실은 무시무시한 북한 최정예 간첩이었다’는 발칙한 상상에서 출발한다. 원작은 만화가 최종훈이 포털사이트 다음에 게재했던 동명의 웹툰이다. 누적 조회수 2억5000만뷰를 기록해 일찌감치 온라인에서는 ‘전설’이었다.

달동네 ‘석이수퍼’에서 주인아주머니 일을 돕는 방동구(김수현 분)는 남파된 지 2년째 된 간첩이다. 본명은 원류환. 북한 최고 특수부대인 5446부대 오성조 3대 조장이다. 다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매일 멍청한 짓을 해 이웃이 자신을 의심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그게 당이 내린 명령이다. 동구와 접선하는 자는 남파 16년차 서상구다. 우체국 우편배달부로 위장했다. 북에서 잇달아 특수요원들이 내려온다. 흑룡조 조장 리해랑과 오성조 4대 조장 리해진이다. 리해랑에게는 로커가 돼 남한사회에 침투하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리해진은 고교생으로 위장해 방동구를 감시한다. 온갖 수모를 견디던 동구에게 당에서 새로운 명령이 하달된다. 자결하라는 것이다.

5446부대는 창설부터 논란이 많았지만 북한 최고위 간부인 대장 리무혁은 밀어붙인다. 하지만 남북화해 무드가 됐다. 5446부대가 논란이 될 경우 정치적 책임을 몽땅 떠안을 수 있다. 당에 위해가 될 수 있다는 이유를 앞세우지만 결국은 리무혁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자살명령’을 내린 것이다. 정부 혹은 조직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정책결정을 한다고 주장하는 경제학의 한 부류가 있다. 공공선택이론이다.

공공선택이론은 국가나 조직은 절대 이타적이지 않다고 주장한다. 개인과 마찬가지로 자신들을 위해 이기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이다. 국가나 조직은 인격이 있는 유기체가 아니라 개인의 총합에 불과하다. 갑자기 공무원이 된다고 공공의 이익을 앞세우는 천사가 되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그런 개인이 모인 집단이니 당연히 이기적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다. 국가나 조직은 ‘공익’이나 ‘다수의 이익’을 위해 정치경제적 결정을 내린다는 후생경제학의 전통을 깨는 이론이었다. 이를 주장한 제임스 뷰캐년 교수는 1986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이익집단의 로비나 뇌물도 공공선택이론으로 설명된다.

뷰캐년 교수는 정치가나 관료들도 기업가처럼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 노력한다고 주장했다. 이른바 ‘조직논리’다. 부처 개편이나 구조조정처럼 직접적으로 조직에 손을 대는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정책이나 사업 결정 때도 민감하게 반영된다.

4대강 사업을 공공선택이론에 적용해 보자. 이명박 정부는 4대강 사업으로 22조원을 투자하면 금융위기로 위축된 경제를 부양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매년 반복되는 홍수, 가뭄 대비책이 되고 자전거도로 등 수변 개발을 통해 삶의 질도 높일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정말 이뿐이었을까. 혹시 정부의 관계자들에게 4대강 사업 특혜가 돌아가니까 강행했던 것은 아닐까, 4대강 사업이 청계천 신화처럼 이어진다면 ‘성공한 정권’이 될 수 있다는 욕심은 없었을까. 이런 질문에 대해 공공선택이론은 ‘그렇다’고 답한다. 4대강 사업이 성공하더라도 정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정부는 결코 사업을 추진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얘기다.

뷰캐년은 정부와 조직의 이기심을 견제하기 위해 헌법으로 규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법적으로 의사결정 절차를 명문화하면 일방적인 결정의 폐해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헌법경제학이라 부른다.

영화 속 경제

북한 특수부대의 해체 유무를 당 대회에서 결정토록 하는 규정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렇다면 아무리 대장이라도 마냥 밀어붙이지는 못한다. 그게 싫다면 법과 규정을 피해 ‘은밀하게’ 진행했을 것이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