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든 아까운 책]150년 전 편지의 충청도∼파리 여정

<조선에서 파리까지 편지 따라 역사 여행>은 150년 전 조선에 들어와 살던 프랑스인 선교사 다블뤼 주교가 파리로 보낸 편지의 여정을 따라, 당시의 세계를 보여주는 그림책이다. 다블뤼 주교는 1845년에 김대건 신부와 같이 조선에 와 무려 20년 넘게 살았다. 1866년 천주교 박해 때 체포되어 처형당했고, 이를 문제 삼아 프랑스는 병인양요를 일으켰다. 불운한 우리 근현대사가 시작되는 지점에 있는 셈이다.

<조선에서 파리까지 편지 따라 역사 여행> 조현범 글 | 강전희 그림 | 너머학교 | 1만2000원

다블뤼 주교가 프랑스 선교회 본부와 고향의 집으로 보냈던 보고서와 편지들이 많이 남아 있고, 답장도 남아 있다. 이 자료들은 서양(프랑스)이 조선을 어떻게 인식했는지, 두 이질적인 문명이 만나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를 해석하는 데 중요한 사료이다. 그런데 그 시절에 어떤 길을 통해 편지들이 오갔을까? 당시 세계의 풍경은 어떠했을까? 편지가 간 길을 따라 당시의 풍경을 담아 보여준다면 독특하고도 의미 있는 책이 되겠다며, 저자 조현범 선생님과 이야기 나눈 게 2009년 봄 즈음이었던 것 같다. 이 그림책을 제대로 그려낼 화가로 떠올린 강전희 작가도 무척 흥미로워했다. 함께 명동성당 안에 있는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역사박물관에 가서 보았던 선교사들의 가방과 성물, 집 등은 이 그림책의 곳곳에서 등장한다.

편지의 여정은 이렇다. 충청도에 숨어 살던 다블뤼 주교가 몇 달치의 편지와 선물(종이 신발, 부채, 가끔 산삼 등)을 싸면 조선인 신자가 산길을 걸어 백령도로 가져간다. 백령도에서 중국 배와 몰래 접선을 한다. 중국 배는 상하이를 거쳐 홍콩과 마카오로 간다. 이곳에서 아시아에 있는 선교사들이 보낸 편지와 물건들이 로마나 파리 행선지에 따라 분류되고, 큰 상선이나 군선에 실려 인도 고아 항과 봄베이를 거쳐 수에즈 항에 닿는다. 수에즈 항에 닿으면 배에서 내려 오리엔탈특급 기차에 실려 알렉산드리아 항으로 간다. 거기서 다시 증기기선에 실려 프랑스의 마르세유 항으로 가면 그 다음부터는 단 하루 만에 파리까지 닿았다.

다블뤼 주교는 조선말을 무척 잘 했고, 조선에 대한 이해도 깊었다. 그의 편지 중에서 이 책에서 다루는 몇몇 내용은 참신하다. 우리는 조선 후기, 철종 시대라 하면 세도정치와 삼정문란으로 인해 매우 어지러웠다고 배운다. 하지만 다블뤼 주교의 눈에 비친 조선인들의 삶은 그렇지만은 않았다. 우선 조선 사람들이 즐기는 판소리가 소박하게 기분을 풀어준다며 칭찬하고, 서로 돕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공동체 문화에 대해서도 높게 평가했다. 많이 먹고 과음에 대해 관대하다며 과장되게 비난할 때는 약간은 씁쓸한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의 관찰과 생각들은 조선 사회와 문명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새롭게 해주기도 한다.

책을 만드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원고를 받고, 수정하고, 그림에 필요한 사진 자료를 찾았다. 디자이너와 어떤 그림을 그릴지 상의한 다음 화가와 상의하고, 스케치를 하고 또 수정하고 그림을 그리고 또 수정하고……. 일정이 늘어지고 가끔 작가들과 연락이 끊어질 때면 다블뤼 주교가 언제 올지 모르는 답장을 기다리던 마음은 어땠을지 절로 떠오르곤 했다. 편도로만 최소 6개월, 빠르면 1년 안에 답장을 받을 수 있었다고 했지. 중간에 해적의 손이나 태풍의 바다로 쓸려 들어간 사연들은 또 얼마나 많았을까.

마침내 올해 3월 책이 출간되었을 때 나도 몇 년 전 보낸 편지의 답장을 받은 듯한 감회에 휩싸였다. 책장을 넘기기 아까울 만큼 세밀하고 아름다운 그림과 160년 전과 지금을 이어주는 편지의 글을 읽는 설렘, 역사는 복잡하고 외워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살았던 일상이라는 것을 보다 많은 아이들이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내가 만든 아까운 책’은 출판사 편집자들이 꾸미는 지면입니다. 공들여 만들었지만 주목받지 못한 좋은 책을 소개합니다.

김상미 <너머학교 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