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경제]26년 - 분업을 통한 목적의 극대화

가수 이승환은 이 영화에 투자를 하면서 “정의감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어렸을 때 배웠던 정의를 조금이나마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가 투자한 영화는 조근현 감독의 <26년>(2012)이다. 1980년 5월 광주의 아픔을 모티브로 한 영화다.

영화는 거칠다. 광주에서 부모·형제를 잃은 사람들, 혹은 그들에게 총을 겨눴던 계엄군이 26년 뒤 복수극에 나선다는 것이 골격이다. 그 대상은 최종 명령권자였던 전직 대통령이다. ‘그’에게 직접 총을 겨눈다는 설정은 파격적이었다. 전직 대통령과 광주의 피해자들이 아직 살아 있는, 진행형인 현대사를 끄집어냈다는 점에서 논란이 많았다. 2009년 크랭크인이 되는 시점에서 돌연 투자가 중단됐다. 하지만 2012년 이 영화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영화를 완성시켰다. 1호 투자자가 가수 이승환이었다. 이 영화는 2006년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에서 연재한 만화가 강풀의 작품이 원작이다.

광주민주화운동 이후 26년. 아버지·어머니·누나를 잃었던 아이들은 커서 어른이 됐다. 곽진배는 건달이 됐고, 심미진은 국가대표 사격선수가 됐다. 권정혁은 서대문경찰서 소속 경찰이 됐다. 이들의 가족들에게 총을 겨눴던 계엄군 김갑세(이경영 분)는 보안업체 대기업 회장이 됐다. 각기 하는 일은 달라도 이들에게는 공통분모가 있다. ‘광주의 아픔’이다. 이들의 삶 내내 괴롭혀 왔던 트라우마의 영향은 크다. 냉철함보다는 분노의 감정이 앞선다.

네 사람은 ‘복수’라는 목적을 위해 자신의 역할을 분담한다. 건달 곽진배는 몸으로 밀어붙여 안가에 진입한다. 사격소녀 심미진은 고공크레인 위에서 총을 겨눈다. 경찰관 권정혁은 경찰서에서 안가 내부와 ‘그’의 일정 정보를 빼낸다. 김갑세는 뇌물을 이용해 안가에 잠입, ‘그’와 독대한다. 이 같은 역할분담은 경제에서 말하는 ‘분업’이다. 분업은 기술적 분업과 사회적 분업이 있다. 이 중 사회적 분업을 전문화라고 부른다.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을 통해 분업은 생산성을 높인다고 밝혔다. 그는 핀 제조공정을 통해 분업의 효과를 설명했다. 핀을 한 사람이 만들면 하루에 약 20개밖에 못만든다. 열 사람이 만들어봤자 200개다. 하지만 핀을 만드는 공정을 18개로 나누었더니 10명이 4만8000개, 즉 4800개의 핀을 만들어냈다. 애덤 스미스는 국가의 부는 얼마나 많은 생산품을 만들어내느냐에 달렸는데, 분업은 생산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봤다. 분업이론은 20세기 제조업에 혁명을 가져왔다. 분업을 현장에 잘 적용시킨 대표적인 인물이 ‘자동차왕’ 포드다. 포드는 자동차 공정을 나눈 뒤 컨베이어벨트 위에 부품을 올렸다. 모델T의 공정은 7882개였다. 포드는 이 공정에 대해 “949개의 공정은 육체적으로 강한 남자 숙련공이, 3338개의 공정은 보통체력의 남자가, 나머지 공정은 여성이나 어린아이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포드의 컨베이어벨트 시스템은 자동차를 대량생산해냈다. 자동차는 비로소 대중화된다. 분업은 표준화, 전문화, 단순화라는 3S운동으로 이어진다.

분업은 국제무역에도 영향을 많이 미쳤다. 각 나라가 서로 잘 만드는 것을 교환하면 전체 부가 늘어서 다 잘 살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됐다. 영국은 국물의 수출입을 막는 곡물법을 폐지해, 곡물은 수입하고 공산품을 수출하는 전략을 폈다. 하지만 국가간 분업은 가난한 나라는 계속해서 저가제품을, 선진국은 계속해서 고가제품을 만드는 불균형을 낳기도 했다.

복잡해진 현대사회는 한 사람이 모든 것을 다 잘하기 어렵다. 철학자이면서 수학자이고 경제학자인 그런 시절은 다시 오기 쉽지 않다. 주먹을 잘 쓰면서 총도 잘 쏘고, 그러면서 재력도 있고, 관급 정보를 잘 빼내는 철인은 없다. 분업 성공 여부의 핵심은 유기적인 결합이다.

영화 속 경제

영화 <26년>에서 이들의 복수에는 정교한 팀플레이가 필요하다. 이들은 복수를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복수는 광주의 한을 풀어줄 수 있을까.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