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그라운드, 넷]일본 성씨의 기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을 통일하는 과정에서 남자들이 많이 죽자 명(命)을 내려 여자들은 외출할 때 등에 담요 같은 것을 항상 메고 아랫도리 내의는 절대 입지 말고 다니게 했다. 그래서 남자를 만나면 무조건 아기를 만들게 했는데, 여자들이 아기를 만든 장소로 작명을 했다. 그것이 지금까지 전래되어 일본인들의 성(姓)씨가 됐다.”

지난 5월 중순 한 대형 커뮤니티에서 논란이 된 글이다. “일본 족보를 들춰보니…”라는 제목의 글이다. 그러니까 일본사람 성씨는 이런 식으로 만들어졌다는 주장이다. “기노시타(木下): 나무 아래서 (만든 아이), 야마모토(山本): 산 속에서 만난 남자의 씨, 다케다(竹田): 대나무 밭에서 작업한 아이, 오타케(大竹): 큰 대나무 밑에서, 무라이(村井): 시골동네 우물가에서, 야마노(山野): 산인지 들판인지 아리송….” 뭔가 므흣한 그림이 상상되는 이야기다. 진짜일까.

인터넷에서 논란이 된 ‘일본인의 족보를 들춰봤더니’라는 제목의 글 | slrclub

게시판에서 논란이 된 건, “일본사 전공한 사람에게 들었다”는 식으로 이 주장이 사실이라고 말하는 사람과 “성진국(언더그라운드.넷 931호, ‘성진국의 위엄?’ 기사 참조) 이미지 때문에 만들어진 말”이라는 쪽이 치열하게 맞섰기 때문이다. 일본사 전공자들에게 물어봤다. “글쎄요… 그럴 리가요. 잘 모르겠지만 설마 나무 밑에서 했다고 성을 그렇게 지었겠어요?” 의외로 ‘일본 성씨의 기원’에 대해 아는 학자를 찾기 힘들었다.

물어 물어 추천받은 전문가는 숙명여대 일본학부 이지선 교수. 이 교수는 “에도시대까지만 하더라도 성은 무사만 갖고 있었고, 메이지시대에 들어서 성을 갖게 되면서 막 짓게 된 것은 맞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어떤 법칙으로 ‘막 짓게’ 된 걸까. 혹시 성관계가 이뤄진 장소? “아, 그건 남자들이 술자리에서 이야기하기 좋아서 만들어낸 말이고요. 성씨의 상당 부분은 지명에서 가져온 거예요. 어느 정도 지위가 있는 사람은 자기가 소유한 토지가 있는 지역명에서 딴 거고.” 이 교수의 답을 요약하면 자연과 관련된 성이 많긴 한데, 야릇한 상상을 일으키는 어떤 행위가 아니라 그 사람들이 소유하거나 평민의 경우 무리를 이뤄 살던 장소의 특징에서 가져온 것이라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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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교수에 따르면 기모노와 관련한 이야기도 낭설이다. 등에 지는 것을 오비마쿠라라고 하는데, 마쿠라가 일본말로 ‘베개(枕,まくら)’라는 말이니 야한 속설이 만들어진 게 아닐까 추론했다. 이 교수는 “한국에서는 오래 전부터 그런 이야기를 들었는데 막상 일본에 가서는 실제 그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며 “조선이 개항된 뒤 접한 일본사람들의 성문화나 의복문화가 일으킨 ‘문화충격’ 때문에 만들어진 속설이 아닐까 싶다”고 덧붙였다. 그렇다고 하니, 앞으로 저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괜히 야한 상상은 하지 말고 가볍게 웃어 넘기도록 하자.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