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한국 넷우익도 일본 넷우익처럼 거리로 나올까

일간베스트(일베)는 2010년에 생겨난 극우성향 인터넷 커뮤니티다. 대형 인터넷 커뮤니티인 디시 인사이드에서 특정 성향을 공유하는 이들이 분리돼 만들어진 곳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인터넷을 활발하게 이용하는 사용자들 사이에서만 화제가 됐을 뿐 주류 언론은 거의 주목하지 않았던 이 커뮤니티가 지금은 사회적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고 사회적 소수자를 비하와 모욕의 대상으로 삼는 극우성향을 보인다는 점에서 일베는 일본의 ‘넷우익’을 떠올리게 한다. 일본에서 혐한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넷우익은 일본 인터넷 상의 극우성향 네티즌들을 지칭하는 표현이다. 넷우익은 2000년대 중반 이후에는 온라인 상에 머물지 않고 오프라인으로 나와 조직화했다. <주간경향>은 일본 넷우익의 사례와 비교해 일베 논란을 짚어봤다. 지금의 논란을 시기적으로 한국에 앞서 출현한 일본 넷우익의 거울에 비추면 좀 더 다층적인 의미가 드러날 것이라고 판단했다. 일본 사례는 5월 말 출간 예정인 <거리로 나온 넷우익>(후마니타스)을 참조했다. <거리로 나온 넷우익>(원제는 <인터넷과 애국>)은 일본 언론인 야스다 고이치가 1년 반 동안 일본 넷우익 ‘재특회’를 추적한 탐사보도물로 저자는 이 책으로 2012년 일본저널리스트회의상과 고단샤 논픽션상을 받았다.

일본 재특회 회원들이 일장기와 재특회 깃발을 들고 가두시위를 벌이고 있다. 가운데 인물이 재특회 회장 사쿠라이 마코토다. | 후마니타스 제공

2013년 한국 사회에서 일간베스트는 하나의 ‘주홍글씨’다. 모두가 피하고 싶어하는 낙인이자 격한 논란을 부르는 이름이다. 일베라는 이름 주위에는 접근을 금지해야 하는 ‘유해 사이트’, 보수조차 그들과 선을 긋고 싶어하는 ‘선정적인 극우’, 최소한의 사회적 양식마저 결여된 ‘패륜 집단’ 등 부정적 수식어들이 떠돌아 다닌다. 실제로 일베에서는 여성·호남·좌파를 각기 ‘김치년’ ‘홍어’ ‘좌좀’(좌파 좀비)이라 부르며 비하하는 글이 주종을 이루고,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북한 특수부대가 개입했다는 왜곡된 주장이 이곳 회원들 사이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 이들이 ‘원정녀’(일본에서 매춘을 하는 한국여성)라 부르는 유흥업소 여성들과 위안부 할머니들을 동일시하는 글이 올라 여론의 지탄을 받기도 했다. 자신이 일베 사용자임을 주변에 알리는 행위를 동성애자들의 ‘커밍아웃’에 빗대 ‘일밍아웃’이라고 부르는 것은 일베 사용자들 스스로 자신들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곱지 않은 시선을 의식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사회 내 특정 그룹을 지목해 원색적인 언어로 공격한다는 점에서 일베는 일본의 ‘재일특권을 허락하지 않는 시민들의 모임’(이하 재특회)을 떠올리게 한다. 칼럼니스트 박권일씨는 5월 20일 한겨레 칼럼에서 “일간베스트저장소(이하 일베)에 대해 취재하고 싶다며 내게 인터뷰와 조언을 요청한 일본 저널리스트들이 공히 언급하는 단체도 재특회였다”고 말했다.

일본의 재특회는 일본 넷우익을 대표하는 단체다. 지난해 일본에서 김태희씨를 광고모델로 기용한 일본 화장품 회사에 대한 광고 중단을 요구하고 김태희 퇴출 시위를 주도하는 등 혐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시위에 앞장선 것이 바로 이 단체다. ‘재일특권을 반대한다’는 뜻의 재특회가 일본 사회에서 ‘특권’을 누린다고 지목하는 대상은 재일 코리안과 중국인이다. 그 중에서도 재일 코리안은 일본 내 외국인 그룹 중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 됐다는 점에서 이들이 가장 집중적으로 분노를 표출하는 대상이다.

일본의 대표적 넷우익 ‘재특회’ 연상
일베가 호남인을 ‘홍어’라고 부른다면, 재특회는 재일 코리안을 ‘총코’라고 부른다. 총코는 한국인을 비하하는 표현인 ‘조센진’에서 파생한 말로, 조센진보다 더욱 멸시적인 표현이라고 김현욱씨(<거리로 나온 넷우익> 번역자)는 말했다. 한 재특회 회원은 오사카에서 벌인 한 집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총코는 일본인한테 감사하란 말이야! 강제연행으로 끌려왔다느니 하면서 일본한테 사죄나 배상만 요구하는 게 조선인이잖아! 너희는 민족의 자존심도 없어? 조국에 돌아가서 생활보호를 받으라고! 일본인한테 사료라도 얻어먹고 싶으면 일본에 감사하란 말이야!”

재특회의 출발은 인터넷이다. 일본 최대 인터넷 게시판 중 하나로 주로 보수우익 성향 네티즌이 모여 있는 2채널 같은 인터넷 공간이 그 기반이다. 야스다 고이치에 따르면, 밤낮 컴퓨터를 붙들고 “조선인은 죽어버려”라는 글을 올리는 사람들은 1990년대 후반 인터넷의 보급과 함께 급속도로 늘어났다. 한국보다 익명성이 더 보장된 일본 인터넷은 이들이 익명성을 방패로 차별적인 발언을 올리기에 좋은 토양이었다.

서울시내 모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이 5·18 33주년인 5월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안국역 인근 북인사마당에서 ‘일간베스트’(일베) 회원들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연합뉴스

한국 인터넷에도 커뮤니티에 따라 보수우파적인 견해가 강한 곳이 있지만, 인터넷 공간의 표면에서 더 두드러지는 것은 진보성향 여론이다. 반면 일본은 보수우파성향 여론이 지배적이다. 후지이 다케시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은 “넷우익이 인터넷 공간을 제압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강제연행’이라는 말만 나와도 공격을 받는다. 자유로운 토론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후지이 실장은 한국현대사 연구로 한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지난 2월부터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을 맡고 있다.

재특회 회원들은 일본 인터넷 공간의 우경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사건이 2002년 한·일월드컵과 같은 해 9월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일본 총리의 방북이었다고 말한다. TV를 통해 일본 대표팀의 패배에 열광하는 한국인들의 모습에 대한 분노와 고이즈미 총리의 방북 당시 북한이 일본인 납치를 인정하면서 촉발된 분노가 2채널 같은 인터넷 공간을 배출구 삼아 폭발하면서 일본 인터넷의 이념적 지형이 급격하게 우경화했다는 분석이다. 여기에는 지식인들의 책임도 있다. 일본 지식인들은 대중화한 인터넷이 진지한 토론에 부적합하다는 판단을 내리고 인터넷에서 물러났다. 그 결과 이성보다는 감정에 휩쓸리는 우파 성향 네티즌이 일본 인터넷의 주류를 차지하게 됐다.

재특회의 탄생에는 이 같은 우경화 추세에 사쿠라이 마코토(재특회 회장)라는 카리스마적인 인물의 출현이 결합했다. ‘동아시아 연구회’라는 이름의 인터넷 스터디 모임에서 좌장 노릇을 하던 사쿠라이를 중심으로 ‘인터넷만으로 세상을 바꿀 수는 없다. 눈에 보이는 행동도 하자고 생각해 능동적인 조직을 만들자’는 데 뜻을 같이한 네티즌 100여명이 2007년 1월 20일 출범한 오프라인 단체가 바로 재특회다. 말 그대로 ‘거리로 나온 넷우익’이다. 재특회는 날조에 가까운 역사왜곡과 공격적인 언행에도 불구하고 2012년 2월 기준으로 1만1181명의 회원이 있는 일본 최대 규모의 보수우익 단체로 성장했다.

일본 넷우익, 재일 코리안에게 분노 표출
일베의 경우 오프라인 조직화를 시도하는 움직임은 아직까지 없다. 일베 회원들은 여전히 원자화된 개인으로 존재하며 일간베스트라는 테두리 안에서 ‘일베 문화’라 불릴 만한 인터넷 하위문화를 형성하고 있을 뿐이다. 주목할 지점은 일본 넷우익과 일베가 청년층을 기반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재특회의 주력은 10∼30대 청년층이다. 일베 회원들은 10대∼20대 초반을 주력으로 30대와 40대 회원들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극우성향의 사고방식이 청년층들을 끌어당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2030 논객이자 미디어스 기자로도 일하고 있는 김민하씨는 지난해 12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에 쓴 ‘넷우익, 극우담론 확산의 징후인가?’라는 제목의 글에서 일베 현상을 한국판 넷우익의 출현으로 규정하고 이를 ‘사이버 민중주의’라는 틀로 설명했다. “민주정부 10년간 서민들의 삶이 개선되지 못했다는 것이 이들의 행동방식을 이해하는 첫 번째 열쇠이다. 과거의 인터넷 현상들이 국가와 기득권의 권위가 해결하지 못한 어떤 상황들에 대한 반감을 표출하는 것으로 이루어졌다면, 이들이 만들어내고 있는 현상은 민주주의와 자유주의, 진보적 가치를 전면에 내세운 정부가 해결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불만의 표출이라고 볼 수 있다.”

지난 5월 24일 일간베스트에 민주당의 일베 운영 금지 가처분 소송 검토에 관한 기사가 올라와 있다. | 일간베스트 캡처

중요한 것은 이런 불만의 뒤에 ‘피해자 의식’이 도사리고 있다는 점이다. 일베에서 ‘김치년’이라는 비하적 표현으로 지칭되는 한국 여성들은 이들에게 남성을 이용해 사익을 취하는 존재로, 호남과 좌파는 민주정부 10년 동안 수혜를 입은 기득권 집단으로, 이주 외국인들은 다문화라는 이름의 보호막 아래 특혜를 누리는 존재로 여겨진다. 이들이 ‘좌좀’이라 칭하는 자유주의 정치세력과 좌파세력(민주당과 진보정당)을 제외하면 실제 사회적 힘의 균형관계에서 여성과 호남, 이주 외국인은 사회적 소수파에 속한다. 진보세력 또한 1945년 해방 이후 지금까지 70년 가까운 세월 동안 10년을 제외하고는 정권을 잡은 적이 없다. 그럼에도 일베 사용자들의 분노는 한국 사회의 전통적 기득권 집단보다는 이명박 정부 이전 10년 동안 발언권이 강화된 집단을 향하고 있다. 전도된 현실인식이다. 김민하씨는 “만일 민주정부 10년 동안 국민 대다수가 만족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이 조성되었더라면 이들의 이러한 생각은 별 의미 없는 외침에 지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러나 잘 알려져 있듯 19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한국 사회의 신자유주의적 무한경쟁 구도는 민주정부 10년 동안 고착화했다.

일본의 경우에도 상황은 비슷하다. 재특회 회원들 중에는 전문직 종사자들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아무리 멋있는 척을 해도 이 사회(일본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이 어려워 보이는 사람들”이다. 그 배경에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미·일동맹의 우산 아래 경제성장과 정치적 안정을 도모했던 이른바 ‘전후 민주주의’가 약화했다는 사정이 자리잡고 있다. 일본의 전후 민주주의 체제를 떠받치고 있던 정서적 지지대는 열심히 노력하면 내일이 오늘보다 나을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이 믿음이 붕괴했다. 일본을 대표하던 종신고용은 사라졌다. 정규직은 줄어들고 비정규직은 큰 폭으로 늘었다. 일본 기업들은 비정규직을 인사부가 아니라 기자재를 다루는 부서에서 관리한다. 졸업-취직-결혼-출산-안정된 노년으로 이어지는 고리는 끊어졌다. 불안정한 사회에서 소속감을 잃어버린 일부 개인들이 정체성을 찾기 위해 의지한 것이 바로 ‘일본인’이라는 소속감이라고 야스다 고이치는 말한다. 재일 코리안, 재일 코리안을 감싸는 것처럼 보이는 언론과 정부, 안정된 생활을 누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중산층은 넷우익에게 사실관계와는 무관하게 ‘가해자’로 인식된다. “사실관계야 어떻든 상관없다. 혜택을 받고, 보호를 받고, 세상에서 인정받고 있는 사람들은 위에서 생존경쟁을 지켜보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재특회가 생겨난 것이었다.”(<거리로 나온 넷우익>)

역사교육 약화가 넷우익 출현 원인인가
일부에서는 역사교육의 약화를 넷우익 출현의 원인으로 지목한다. 중·고등학교 교과서의 5·18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서술에서 진압군의 발포 사실이 다뤄지지 않았다거나 ‘1980년 광주’를 박정희 전 대통령 시기에 일어난 일로 아는 학생들도 많다는 최근의 언론 보도는 그런 맥락에서 나온다. 후지이 실장은 그러나 “역사에 대한 지식이 근본적인 문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사회가 진정으로 민주화되어 있지 않아서 발생하는 문제다. 몰라서 하는 행동이라고 전제하고 교육을 시키면 된다는 발상은 폭력적인 발상이다. 그렇다면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민주시민이 되고 그렇지 않은 아이들이 극우성향의 아이들이 될까. 1990년대 일본에서 역사왜곡 교과서가 문제가 됐을 때도 비슷한 주장이 나왔다. 그렇지 않다. 주입된 지식이 아니라 지식을 비판적으로 검토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학교 현장은 민주화되지 않았다. 학생인권조례 하나 제대로 만들고 있지 못하고 있지 않나. 민주화 이후 학교를 다닌 학생들에게는 민주화도 주어진 체제다. 그런 상황에서 학교 현장의 권위주의적 교육에 반발심을 가진 학생들은 민주화에 대해서도 반발심을 가질 수 있다.”

일베 현상은 분명 문제적이다. 일베 현상을 인터넷 하위문화로만 치부하지 말고 좀 더 경계심을 갖고 보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야스다 고이치 인터뷰 참고) 그러나 일베든 넷우익이든 사회의 일부다. 야스다 고이치는 “순간의 축제를 즐기는 것으로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사람들, 그것이 재특회이고, 예전의 나였다”고 고백하며 이렇게 말한다. “‘재특회’란 무엇인가?라고 내게 묻는 사람들이 많다. 그때마다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당신의 이웃들입니다.’”

일본의 넷우익이나 한국의 일베를 ‘괴물’이라고 부르며 이들을 타자화하는 방식으로는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얘기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