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삼성경제연구소는 국가정책연구소?

발빠른 이슈선점 독특한 보고서로 성가 올려

이광근 성공회대 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와 이경환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 연구원이 발표한 ‘스마트 통치의 등장: 삼성경제연구소의 등장과 영향력 강화’라는 제목의 논문이 주목받고 있다. 이 논문은 참여정부 시절 삼성경제연구소(소장 정기영)가 국가 정책 형성에 주도적으로 개입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가 다른 민간 연구소를 제쳐두고 정부 정책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곳으로 성장한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설립의 출발점이 달랐다”고 지적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기업경쟁력 강화를 위해 전략·정보를 창출하는 싱크탱크, 국가와 사회를 선도하는 권위 있는 오피니언 창조자’를 설립 목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의 힘은 발빠른 이슈 선점과 연구영역의 다양성이다. 사진은 삼성경제연구소가 주최한 강연회 모습. | 경향신문 자료

1986년 7월 7억원의 자본금과 25명의 연구원으로 공식적인 출범을 하면서 초기에는 경제·경영·산업연구가 주를 이뤘다. 이후 계열사 컨설팅과 지자체 프로젝트로 확장을 했다. 1994년 서울시 시정개혁 프로젝트가 삼성경제연구소의 작품이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연구주제가 그룹을 넘어서기 시작한 출발점은 1996년 2월 조직개편을 통해 만들어진 ‘정책연구센터’(현재는 경제정책실)라는 분석이 많다. 행정자치부의 ‘공무원 보수제도 개편방안’(1998년), 교육부의 ‘국립대학 평가 프로젝트’(1998년), 산업자원부의 ‘지역경제 활성화 방안’(1999년), 국민의료보험관리공단의 ‘의료보험 재정안정종합대책 수립’(1999년) 등 당시 굵직굵직한 프로젝트를 삼성경제연구소가 맡아서 진행했다.

참여정부 주요 정책 삼성연구소가 제안
삼성경제연구소는 점차 기업의 테두리를 넘어서 사회 경영까지 범위를 확대해나갔다. 참여정부 시절 ‘국민소득 2만불’ ‘매력국가’와 같은 제안을 하면서 정부 정책에 방향성까지 제시하는 힘을 보여주기 시작한 것. 이경환 연구원은 “삼성경제연구소는 자신의 모토부터 기존의 기업 연구소와는 다르게 설정하고 있다.

이런 목표의 차이는 조직적 구성의 차이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내 판단”이라면서 “삼성경제연구소는 다른 기업 연구소와 달리 정책 관련 부서를 중요한 부서 중 하나로 가지고 있다. 이런 목표와 조직 구성의 차이는 삼성경제연구소의 중요한 특징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상지대 홍성태 교수(문화콘텐츠학과)는 ‘삼성경제연구소와 삼성이데올로기’라는 글에서 “겉으로 제시된 임무만 보면 삼성경제연구소는 삼성재벌의 이익이 아니라 전체 기업과 국가의 이익을 추구하는 기관인 듯하다”면서 “그러나 기업 연구소는 무엇보다 자기가 속한 기업의 이익을 위해 존재한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어디까지나 삼성재벌의 기업 연구소다”라고 비판했다.

정부 정책에 민간 연구소가 영향을 끼치는 것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모 대기업 연구소 관계자는 “우리의 경우 그룹 계열사 컨설팅과 그룹 경영에 관련된 보고서만 작성하고 있다. 우리는 내부에 충실하자는 생각인데, 삼성경제연구소는 대외적인 활동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면서 “정부가 의뢰해오면 정부 정책 관련 컨설팅을 해주지만, 우리가 직접 나서서 하는 경우는 없다. 민간 연구소가 정부와 발을 맞추는 것에 대해서 좋은 평가를 받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삼성경제연구소 관계자는 이런 비판에 대해 “우리는 네티즌이라면 누구나 다 참조할 수 있는 보고서를 내는 것으로 사회적인 책임을 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다른 연구소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며 “외부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정부 정책이나 거대담론을 주도하는 곳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삼성경제연구소, LG경제연구원, 현대경제연구원은 1986년 설립됐다. 설립 초기에는 1984년 설립된 대우경제연구소와 함께 공동 프로젝트를 하는 등 민간 연구소끼리 사이가 좋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30년이 지난 지금 규모와 연구원, 매출액 면에서 삼성경제연구소가 가장 앞서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에는 인사조직실·사회공헌연구실·경제정책실·글로벌연구실 등 8개실에 150여명의 연구원이 일하고 있다. 이 중 박사과정 이상의 연구원이 107명으로 전체 연구원의 70%가 넘는다. 전자공시시스템(DART)을 통해 살펴보면 2012년 12월 현재 총자산은 1100억원이고, 2012년 한 해 경영자문 용역수익·인력개발 용역수익·도서판매 수익 등으로 올린 영업이익이 1544억원이다. 이에 비해 LG경제연구원의 한 해 매출액은 200억원이다. 삼성경제연구소와 다른 민간 연구소의 규모와 인력 차이가 크게 나는 것이다.

회원의 활발한 참여가 돋보이는 사이트(www.seri.org)의 활성화도 삼성경제연구소의 인지도를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2012년 5월 현재 ‘세리’의 전체 회원 수는 약 10만명이고, 세리에 만들어진 포럼(토론광장)에 가입한 회원은 3만여명에 이른다. ‘세리 CEO’는 연회비 150만원에 이르는 유료 서비스로, 여기에서 매년 순이익 100억원을 올리고 있다.

타연구소 압도하는 자본금과 영업이익
삼성경제연구소의 또 다른 힘은 시의적절하게 나오는 보고서다. 민간 경제연구소에서 나오는 보고서는 딱딱하다고 외면받기 쉽다. 하지만 삼성경제연구소에서 발간하는 보고서는 ‘신세대의 특성과 조직관리 방안’ ‘워킹맘의 실태와 기업의 대응방안’ 등 일반인도 재미있어 할 내용이 많다. 보고서에 나오는 단어도 일반인의 눈높이에 맞추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기발하거나 독특한 보고서를 내는 것으로 인지도를 높이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관계자는 “우리는 보고서를 낼 때 개인 연구를 거의 하지 않는다. 프로젝트 매니저가 연구원 3~4명을 한 팀으로 묶어서 각자에게 숙제를 내주고, 숙제를 모아서 공동과제 보고서로 낸다”면서 “다른 연구소는 경제·경영전문가가 대부분인데, 우리는 융합형 인재가 많다는 것이 장점이다. 같은 부서 안에서 공학자, 물리학자, 수학자가 함께 일하는 식이다. 경제학자들은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을 관행대로 쓰지만, 우리들은 내부에서 어려운 표현은 쉽게 풀어서 쓸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회적인 이슈가 터질 때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발 빠르게 보고서를 낸다. 일반인이나 언론인은 이런 보고서를 읽고 사안을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입주해 있는 삼성서초타운 전경. | 경향신문 자료

독특한 보고서 많지만 “수준 낮다” 지적도
하지만 전문가들은 삼성경제연구소가 펴내고 있는 보고서의 품질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다. 보고서 양은 많은데, 품질은 그리 좋지 않다는 것. 경제개혁연대 김상조 소장(한성대 교수)은 “삼성경제연구소의 보고서를 보면 그 수준이 굉장히 실망스러울 정도로 낮다. 만약 세리 보고서를 학술저널에 기고해서 논문 심사를 거친다면 95% 정도는 거부당할 것”이라며 “이론적 기반이나 실증분석의 엄밀성이 떨어진다고 평가한다. 그런데 허술한 보고서가 언론을 통해서 광범위하게 유포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한 민간연구소 관계자도 “삼성경제연구소 보고서의 질에 대한 비판이 많다. 사회 트렌드에 맞춘 보고서가 많이 나오다 보니까 그런 현상이 생기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삼성경제연구소 관계자는 “읽히지 않는 보고서를 내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본다. 읽히는 보고서를 내야 한다”고 해명했다. 이경환 연구원은 “삼성경제연구소의 보고서가 가지고 있는 학문적 질은 문제라고 할 수 있다”면서 “다만 그들의 보고서를 대중성의 측면에서 살펴본다면 높은 점수를 받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이경환 연구원 인터뷰

“삼성의 핵심축 중 하나가 삼성경제연구소”

사회학을 전공하고 있는 이경환 연구원은 삼성경제연구소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학자로 꼽힌다. 2011년 대학원 석사 논문부터 시작해 이번에 발표한 논문까지, 삼성경제연구소가 다른 민간 연구소와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를 연구했다. 이 연구원은 삼성경제연구소가 정부의 정책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 한국 사회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지켜보고 있다.

2011년 석사 논문도 삼성경제연구소를 다뤘다. 이번에 발표한 논문도 삼성경제연구소인데, 왜 관심을 가지게 됐나.
“삼성경제연구소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소위 ‘삼성공화국’에 대한 논의를 접하면서다. 삼성공화국의 중요한 핵심축 중 하나가 삼성경제연구소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삼성뿐만 아니라 대기업은 모두 경제연구소를 두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가 다른 민간 연구소와 다른 점이 무엇인가.
“삼성경제연구소는 모토부터 기존의 기업 연구소와 다르다. 이런 목표의 차이가 조직적 구성의 차이로 이어지고 있다고 판단한다. 삼성경제연구소는 다른 곳과 달리 ‘정책’ 관련 부서를 중요한 부서로 운영 중이다. 구성원에도 차이가 있다. 다른 기업 연구소는 경제학 전공자들로 대부분 충원되는데, 삼성경제연구소는 경제학뿐만 아니라 다양한 전공의 사람들로 채워져 있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참여정부와 밀접한 관계를 가졌다고 주장했다.
“이 부분은 말하기 조심스럽다. 밀접한 관계라는 표현이 엄밀하게 증명되기 어렵고, 또 내가 쉽게 이야기할 수 없는 부분이다.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삼성경제연구소의 보고서와 참여정부의 정책이 가진 지향적 유사성이다. 참여정부가 초기에 호기롭게 주장했던 재벌개혁의 좌초와 함께 대안적인 발전전략의 부재로 이어졌다고 본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참여정부를 넘어 MB정부와 박근혜 정부와 관계가 이어진다고 평가하나
“이 부분은 앞으로의 연구과정에서 더 살펴봐야 할 사항인 것 같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일반인과 언론인에게 신뢰감을 주고 있다. 이로 인한 문제점이 있다고 보나.
“연구소의 신뢰감은 보고서의 대중성에서 기인하지만, 한국에서 삼성이 가진 힘의 재생산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기자들이 인용하기 좋게 자료를 생산하는 측면도 있을 것이다. 그 문제점이라면 삼성경제연구소의 보고서가 가지고 있는 프레임에 언론의 프레임이 갇히게 된다는 점이다.”

삼성경제연구소가 가지고 있는 힘은 어디에서 나온다고 보나.
“삼성경제연구소의 힘을 파악하는 것은 한마디로 정리될 수 없다. 그 바탕에는 삼성이라는 기업이 지니고 있는 물질적인 그리고 사회적인 힘이 존재할 것이고, 삼성경제연구소의 대중적인 활동을 통해 만들어진 힘이 있을 것이다.”

<최영진 기자 cyj@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