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경제]안나 카레니나 - 가치가 급락한 ‘추락한 천사’

‘안나 카레니나’는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의 대표작이다. 번역본으로 2000페이지에 육박하는 대작이다. 남편이 아닌 남자를 사랑한 여인의 파멸을 다뤘다. 욕망을 참지 못한 일탈의 사랑으로 그렸다면 TV <사랑과 전쟁>과 같은 ‘불륜 스토리’로 끝났을 터다. 하지만 ’안나 카레니나’는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사랑은 왜 변덕스럽기만 한 것인지를 다양한 사람의 세세한 심리를 통해 풀어헤친다. 이 소설이 고전으로 읽히는 이유다.

조 라이트 감독의 영화 <안나 카레니나>(2013)는 연극적 배경으로 스토리를 전개해나가는 것이 색다르다. 안나는 아름다운 외모와 우아한 자태, 교양을 갖춘 러시아 고관대작의 부인이다. 그녀는 청년 장교를 만나 불륜에 빠지고, 사랑을 쟁취하지만 결국 자살로 막을 내린다. 순탄치 않은 그녀의 인생역정이 연극처럼 극적이라는 것을 감독은 강조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셰익스피어는 <맥 베드>에서 “인생은 시끌벅적한 헛소리와 분노로 가득찬, 결국 아무 의미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공연을 끝내면 컴컴한 무대로 바뀌는 연극과 인생은 닮았다는 얘기다.

안나 역은 키이라 나이틀리가 맡았다. 그녀는 조 라이트 감독의 전작 <오만과 편견>(2006)에서도 고전적인 아름다움을 뽐냈던 배우다. 안나의 남편인 카레닌 역은 주드 로가 맡았고, 안나가 사랑에 빠지는 젊은 장교 브론스킨은 아론 존슨이 맡았다.

오빠의 불륜을 상담해주러 떠났던 안나가 젊은 장교와 열정적인 사랑에 빠지는 것은 역설적이다. 안나는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며 젊은 장교 브론스킨을 선택한다. 하지만 브론스킨의 마음은 변한다. 안나는 잃어버린 만큼 그에게 집착한다. 그리고 다시 사교무대로 돌아가지만 세상이 그녀를 보는 시각은 차갑게 변했다.

딱딱한 관료주의에 염증을 느껴 자유를 찾았던 안나. 하지만 모든 것을 버리고 택한 사랑이 식어가자 그녀는 허무감을 느낀다. 세간의 시선을 극복하지 못한 안나의 선택은 자살이다. 러시아 사교계에서 그녀는 ‘추락한 천사’였다.

경제에서도 ‘추락한 천사’가 있다. ‘추락한 천사’란 인기주였다가 인기를 상실한 주식이나 우량채권이었다가 정크본드 수준으로 떨어진 채권을 말한다. 신용등급이 투자등급에서 투기등급으로 급락한 기업도 ‘추락한 천사’다. 2005년 5월 미국의 대표 기업이었던 GM과 포드의 신용등급이 정크본드로 떨어지자 미국 언론들이 이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천사로 불릴 만큼 잘나가다가 땅으로 추락했다는 비유였다. 미국을 상징하는 두 기업의 추락은 미국인에게 큰 충격을 줬다. GM과 포드는 1900년대 초 미국의 자동차 시대를 대표하는 거인들이었다.

글로벌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천사들의 추락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세계적인 신용평가시인 피치는 2012년 보고서에서 일본 3대 가전업체인 소니, 파나소닉, 샤프를 ‘추락하는 천사’라고 불렀다. 한때 세계 최대 휴대폰업체였던 노키아와 프랑스 대표 은행인 소시에테 제네랄(SG)은 주가가 급락하면서 2011년 유럽의 대표적인 주가지수인 STOXX유럽50지수에서 빠지는 비애를 맛봤다.

영화 속 경제

러시아 정치계 거물의 아내 안나는 ‘천사’였다. 그녀는 들어오는 지하철에 몸을 던졌다. 예나 지금이나 ‘추락’은 ‘몰락’ ‘파멸’의 상징인 셈이다. 안나 카레니나는 서른 번 이상 각종 영화와 드라마로 리메이크 됐다. 안나는 할리우드 여배우들이 탐냈던 역이다. 파격적이고 치명적인 팜므파탈의 사랑이야기는 매력적이었다. 그레타 가르보(1925), 비비안 리(1948), 소피 마르소(1997)가 앞서 이 역을 거쳐갔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