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이야기]우정총국 ‘128년 만의 귀환’

“나 땅에 떨어질 때 땅에 내 피 스며들었네(我落地時地沾我血)/나 죽을 때 하늘이 내 맘 내려다보리니(我死之時天鑑我心)/뜻을 같이하는 동지들과 맹세했거늘(惟我同心同我誓心)/이 마음 배신한다면 반드시 하늘이 벌하리라(若背此心天必誅?).”

갑신정변 전야인 1884년 12월 3일 서재필의 아우 서재창의 집에서 술을 마시던 정변 주역들이 김옥균의 집으로 자리를 옮기던 중이었다. 금릉위 박영효의 말을 타고 가던 홍영식이 낙마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위의 글은 말에서 떨어진 홍영식이 행장에서 석필과 종이를 꺼내 피가 흐르는 팔로 휘갈겨 써서 김옥균에게 건네준 시 전문이다. 목숨을 건 개화혁명의 비장함을 담고 있지만 그 뒤 전개된 갑신정변의 결말을 암시한 예언시처럼 읽히기도 해 섬뜩하다.

지난 8월 30일 우정총국에서 홍영식 선생 흉상 제막식이 열렸다. 왼쪽부터 이승재 서울지방우정청장, 일일우체국장인 개그맨 유민상씨, 홍석우 지식경제부 장관, 홍영식 선생의 증손자 홍석호씨, 홍만표 우편사업단장, 서춘택 광화문우체국장.

일본의 배신(?)과 홍영식의 죽음으로 갑신정변은 삼일천하로 끝났지만 홍영식의 위업과 정신은 한 세기가 지나도록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갑신정변의 무대인 우정총국이 정변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폐쇄된 지 128년 만에 다시 문을 연 것이 이를 말해주는 상징적인 사건 가운데 하나다. 우정사업본부가 지난 8월 28일 우정총국우체국 개국과 함께 탤런트 손현주씨를 명예우정총판에 임명하고 우정서비스 업무를 재개한 것이다.

물론 우정총국우체국이 모든 우정 서비스를 다 하는 것은 아니다. 우정총국 본연의 기능을 복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문화재(1970년 사적 제213로 지정)인 점을 감안해 원형을 보존해야 할 필요성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10통 이내의 국내외 일반통상우편물 발송과 나만의 우표, 우체국쇼핑상품, 경조카드 신청 등 기본적인 우편 서비스만 제공한다. 대신 우체국 업무 공간 외에 우정사료 전시 공간도 함께 마련해 근대 우정의 역사와 문화의 상징 공간으로서의 기능을 강화했다.

우정총국우체국에는 37종 114종의 우정사료를 전시하고 있다. 기존 전시물에다 한성순보, 승정원일기, 뉴욕타임스 기사 등 우정총국 개국 배경과 관련한 16종 35점의 자료를 추가했다. 우정사업본부는 우정총국 재탄생을 널리 알리기 위해 지난 9월 2일까지를 ‘우정문화주간’으로 정하고 각종 문화행사를 열었다. 런던올림픽 양궁 2관왕 기보배 선수를 비롯해 유명인과 일반인이 참여하는 1일 명예우체국장 체험행사도 진행했다.

서울 종로구 견지동 39-7(우정국로)에 위치한 우정총국 청사는 갑신정변으로 우정 업무가 중단된 뒤 일제 강점기 경성우체국장 관사로 사용되고 광복 후 개인 소유로 넘어가는 등 굴곡을 겪다가 1956년 당시 체신부가 매입, 1987년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됐다. 우리나라 근대 우정의 발원지이자 갑신정변의 무대로서 역사적 의미가 깊다. 현존하는 궁외 건물로 가장 오래 된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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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으로서 우정총국은 근대 우정의 효시이자 최초의 근대 행정제도로 꼽힌다. 기존 기구를 개편하거나 외국의 제도를 그대로 옮겨온 것이 아니라 홍영식이 고종의 전교를 받아 독자적으로 ‘창설’한 점도 특별한 의미가 있다. 우정총국 설치의 밑거름이 된 보빙사는 조선이 서구에 파견한 최초의 외교사절단이기도 했다. 1883년 미국에 간 보빙사의 전권대신이 민영익, 부대신이 홍영식이었다. 홍영식은 미국의 신문물을 시찰하고 고종을 설득해 신식우편제도의 시행이라는 업적을 이루었다. 우정총국우체국은 이처럼 중요한 역사의 현장이자 살아 있는 우정 공간인 셈이다. 홍영식의 ‘예언시’가 더욱 비장하게 느껴지는 게 그래서일까.

<신동호 경향신문 논설위원 hud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