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말 뒤에 숨은 불편한 위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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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군 훈련을 갔다. 익숙한 풍경이 보인다. 기간병 중 계급이 높은 선임병이 후임병들을 다그치고 있는 것이다. 아마 무언가 후임병들의 행동이 늦었던 것 같다. 그런데 듣고 있으니 말투가 조금 이상하다.

말은 타인을 대하는 태도와 위계를 결정한다. | 경향신문

말은 타인을 대하는 태도와 위계를 결정한다. | 경향신문

“빨리 빨리 움직입니다! 안 뜁니까? 안 뜁니까?”

보통 높은 계급의 병사는 낮은 계급의 병사에게 반말을 쓸 것이다. 선임병이 “빨리 빨리 움직여라! 안 뛰어? 안 뛰어?”라고 외쳤다면 훨씬 자연스럽게 느껴졌을 것이다. 기간병이 예비군을 대할 때는 높임말을 쓰는데 그런 상황이었다면 “선배님들, 신속기동하십니다!”와 같이 좀 더 공손한 말투를 사용했을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부목법’을 가르치는 조교로부터 해답을 들을 수 있었다. 말인 즉슨 훈련 전날 군의 높은 사람이 와서 병사들끼리 높임말을 쓰라는 지시를 하고 돌아갔다는 것이다. 구타와 폭언 등 군내 권력관계로 인한 비극적인 사태가 일어나는 것을 방지하자는 것이다.

취지야 십분 공감하지만 정작 높임말을 쓰는 병사들끼리는 매우 어색했을 것 같다. 이런 사연을 우리에게 말해준 조교는 이등병이었는데, 그도 선임병들이 자신에게 높임말을 쓰는 상황을 매우 어색해하는 것처럼 보였다. 조금 폭력적일 수 있어도 선임병들이 반말을 쓰는 게 듣는 입장에서는 차라리 마음이 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우리 진보정당에서는 어떻게 하고 있는가 하는 반성을 하게 됐다. 1982년생인 나는 진보정당에서 활동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젊은 축에 속한다. 따라서 무슨 모임에라도 나가면 내 나이가 가장 어린 경우도 많다. 그래서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다짜고짜 반말부터 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배운 진보는 나이, 성별, 지위를 막론하고 부당한 기준에 의해 사람을 차별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얘기를 꺼내면 내게 반말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분명히 이렇게 말할 것이다. “반말을 하는 것을 친밀감의 표현으로 받아들이면 안 되는가?”

내게 합의된 바도 없이 일방적으로 반말을 하는 사람들의 변은 늘 비슷하다. 한국적 문화에서는 서로 높임말을 쓰는 것은 서로 어색한 사이라는 뜻이므로 친해지고 싶은 마음에 자연스럽게 반말을 쓴다는 것.

그러나 문제는 ‘말’이 사람의 ‘태도’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구조조정’과 ‘노동 유연성 강화’는 일종의 당위였다. 정부는 구조조정과 노동 유연성 강화를 못해서 우리나라가 망한 것처럼 떠들어댔고,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가치를 진작에 받아들이지 못한 자기 자신들을 질타하는 대열에 합류했다. 그러나 구조조정과 노동 유연성 강화라는 말이 정확히 의미하는 것은 ‘대량해고’였고, 우리는 이 글로벌 최신 유행을 따르다 결국 불행해지고 말았다.

반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사회적 권력관계에서 늘 높은 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반말을 쓴다. ‘말을 놓는다’는 것은 결국 ‘하대’를 한다는 것이다. 높임말을 쓸 때 상대를 존중하던 사람도 반말을 쓰기 시작하면 사람을 함부로 대하기 시작한다. 진보정당운동의 중년들은 청년 활동가들의 재생산이 절실하다고 얘기하지만, 함부로 취급되는 청년활동가들은 늘 중년들의 시중만 들다 집에 간다.

[2030세상읽기]반말 뒤에 숨은 불편한 위계

물론 나도 친밀한 사이에서만 반말을 사용하는 정도의 사회성은 갖추고 있다. 그래서 나는 오로지 학업 또는 취미활동 중에 알게 된 사람에게만 반말을 쓴다. 직업이 운동권인 사람이 진보정당운동의 맥락에서 만난 사람을 사적인 관계라고 얘기하는 것은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김민하<진보신당 상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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