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민간인 사찰]공무원의 봄은 아직 오지 않았다

“공무원은 관료사회다.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어쨌든 독불장군식으로 하겠다는 것은 ‘옷 벗을 각오’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할 수 없는 게, ‘여기서 떠나면 갈 데가 없구나’ 하는 것을 절절히 느낄 수밖에 없다. 이해해 달라.” 이번에 공개된 공직자윤리지원관실 ‘파일’에 ‘공적’이 기재된 한 서기관급 공무원의 말이다.

민간인 불법사찰 증거인멸 ‘몸통’을 자처한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이 4월 3일 오전 영장실 질 심사를 받기 위해 서초동 서울지방법원에 들어서고 있다. | 김기남 기자

그의 ‘공적조서’를 보면 “동료간의 화합과 단합을 위해 노력”, “남다른 열정과 적극적인 업무수행”, “확고한 국가관과 사명감” 등의 표현이 들어가 있다. 그런데 다른 파일에는 이명박 정부 들어 그가 몸담았던 부서의 ‘업무’가 어떤 방식으로 추진되고 있었는지가 드러난다.

“…09년 비영리민간단체 지원사업의 유형별 배정금액 결정에 있어, 과거 비영리민간단체의 지원 보조금이 좌파단체에 지원되어 촛불집회 등 불법 폭력시위 자금으로 사용되는 문제점을 확인하고, 합리적인 공익심사위원 선정을 통해 실질적인 공익활동에 보조금이 사용될 수 있도록 추진. ※ 2.27 안전정책협력과장(장○○)은 퇴근도 하지 않고 [국민행동본부]가 시한내 지원금 신청을 접수토록 하는 등 보수단체 지원확대를 위해 노력 중이며, 관련 부처에서 불법시위단체의 보조금 지원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것을 협조 요청하는 등 열의를 가지고 관련 업무를 추진 중.”

사실로 드러난 보수단체 편파지원
지난 2009년 기자는 행안부의 비영리단체 지원을 둘러싼 ‘의혹’을 취재했다. ‘의혹’은 “자격요건이 채 갖춰지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행정안전부가 마감시한까지 넘기면서 보수단체 지원 편의를 봐줬으며, 공익심사위원이 외부에 공개되지 않는 점을 이용, 보수단체와 관련이 있는 인사들로 채워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는 단체들의 지원을 끊었다”는 것이었다. 이번에 공개된 ‘문건’에 따르면 의혹은 사실이었다. 앞에 인용한 공무원의 답변도 그때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신청한 비영리민간단체는 많고, 등록요건을 만족했는지 안했는지 여부를 따지기는 어렵기 때문에 각 부처의 판단을 존중할 수밖에 없다는 것. 당시 ‘퇴근도 하지 않고 열의를 갖고 관련 업무를 추진하던’ 부서책임자 장 모 과장은 부이사관으로 승진해 다른 부처의 책임자가 됐다. 그는 언론인터뷰에서 “공직윤리지원관실이 나에 대해 어떻게 판단했든 단체 선정과정에서 청와대나 상부의 지시를 받은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민간인 불법사찰 케이스를 포함해 이번에 공개된 공직윤리지원관실 파일이 논란이 되자 청와대는 역공을 취했다. 파일에 수록된 전체 2619건 중 2200여건이 참여정부 시절의 사찰문건이라는 것이다. 청와대가 참여정부 사찰문건이라고 주장했던 문건의 출처는 공직윤리지원관실에 파견되어 있었던 김기현 경정이 갖고 있던 USB에서 나온 것이다. USB에 사찰문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앞서 언급한 공적조서 및 각 부처에서 이명박 정부 정책이 관철되고 있는지 ‘모니터링’한 파일과 함께 특정 고등학교 동창회 파일, 각종 친목모임 연락처와 주소, 개인사건 청탁 파일 등의 자료도 들어 있다. 고등학교 동창회와 친목모임에 공통되는 인사는 김화기 전 공직윤리지원관실 조사관이다.

그는 김기현 전 조사관의 전임자다. 친목모임에 들어 있는 사람들을 접촉해봤다. 모임의 존재를 부인하지 않았다. 하지만 언급은 회피했다. 한 회원은 “2008년 정도까지는 모임에 나갔지만, 그 뒤로 소원해졌다. 최근 1~2년간은 모임을 가진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촛불시위 소극대처’ 개인조사 문건
4월 6일, 전·현직 경찰모임인 무궁화클럽은 서울 종로경찰서 앞에서 “이명박 정부의 민간인 사찰로 인해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모임의 전경수 전 대표는 전화통화에서 “언론을 통해 공개된 참여정부 당시 서울역 집회 등은 우리도 공개적으로 연 집회였고, 실제 협의도 한 사항이니 이번에 논란이 된 사찰 문제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며 “중요한 것은 2008년 이후에 기구를 신설해서 우리도 모르게 사찰을 한 사실이 있는지, 또 경찰 내부망을 통해 비판글을 올린 경찰에 대한 내사와 같은 일이 있었냐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 대표는 “언론에 보도된 것만 봤지 실제로 국무총리실 파일에 어떤 내용이 있는지는 모른다”며 “진정을 통해 내용을 공개 받고자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관련 파일 대부분이 2008년 1월 이전에 작성된 것은 맞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 이후에 작성된 경찰관련 문건도 여럿이다. ‘공직윤리지원관실 기동팀’이 2008년 8월 11일 작성한 ‘서울지방경찰청 경비부장 관련 조사결과 보고’ 문건이 단적인 예다. 문건은 ‘조사대상’으로 ‘전남 곡성’ 출신의 이송범 당시 서울경찰청 경비부장을 명시하고 있다. 기동팀은 이 문건에서 이 전 경비부장의 지휘 스타일로 “촛불집회 관리에 소극, 미온적으로 대처하는 등 소신 없이 윗사람의 눈치를 많이 보는 편”이라며 참고사항으로 “서울청장이 수차례 물대포 사용을 지시하였으나 경비부장이 지시에 따르지 않아 현장의 지휘관들이 소극적, 미온적으로 대처할 수밖에 없었다는 여론”이라고 적고 있다. 또 그의 인사 등에 “지역색이 강하다”며 “-지난 DJ 정권시절 경호실장과 노무현 정권 시절 보훈처장을 지낸 안○○(전남 곡성)과는 같은 동향으로 친분관계-부임 초 인사 발령한 종로서 경비과장(임○○) 등 동향 출신을 중요 보직에 배치”라고 보고했다. 이 전 경비부장은 이후 광주광역시 경찰청장을 맡다가 2010년 5월 관사에서 심장마비로 순직했다.

서기호 통합진보당 민간인 사찰 대책위원장은 올해 2월까지만 하더라도 서울 북부지법 판사였다. 그는 근무평정에서 재임용 탈락하자 이에 항의하면서 법복을 벗었다. “사실 개인적으로 드러나게 사찰을 받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마 동향보고 정도는 되고 있지 않았을까 싶다.” 서 판사는 자신은 형사사건을 맡은 것도 아니었고 민사재판을 주로 맡았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주목받을 일이 없었다고 말했다. 보수언론은 그가 사적인 SNS에 올린 ‘각하의 빅엿’, 이른바 ‘76자짜리 판결’ 등을 거론하며 ‘법관의 자질문제’를 거론했다.

서 위원장은 자신이 주목받은 시기가 신영철 대법관이 박재영 전 판사에게 이메일을 보내 촛불사건 처리를 종용했던 사건 당시 법원 내부통신망에 항의 글을 올리고 판사회의를 주도하고 난 다음이 아니었을까라고 추정했다. “사실 그런 사건이 없던 것은 아니다. 2008년 7월 BBK사건을 재판하던 김균태 판사에게 국정원 직원이 전화를 걸고 재판 방청석에 나와 물의를 빚어 엄중 경고·항의한 일이 있었다. 이건 70~80년대도 아니고….” 법원 특유의 보수적인 색채가 이명박 정권 들어 더 강해지는 방향으로 흘렀다는 것이 서 위원장의 주장이다. “이를테면 사회적 논란이 될 수 있는 사안에 대해 소신을 갖고 무죄판결을 하는 것은 찍힐 수 있다. 말하자면 법관 스스로 자기검열이 강해질 수밖에 없는 분위기가 되었다.”

“어느 정권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이 정부는 특히 심했다”며 한 공무원은 운을 뗐다. 그는 “조직 내의 상급자가 누구냐에 따라 달라진다. 이 정부 들어 소위 영포라인, 고려대 출신의 위세가 셌다는 것은 다 알려진 일이 아니냐”고 말했다. 이 공무원은 참여정부 시절 계약직으로 들어갔다. “10년 이상 잘나가던 직원이 정권이 바뀌고 한직으로 밀려나는 것을 보면서 실감했다. 그때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지와 상관없이 밀려나 결국 그만뒀다.”

<주간경향>이 접촉한 전·현직 공무원들 상당수는 공무원 조직의 수장급, 즉 장·차관, 원장, 청장 등의 교체는 정권 초기부터 벌어졌지만 상대적으로 간부급 공무원의 교체가 본격적으로 일어난 것은 2008년 촛불시위 이후라고 말했다. 앞의 한 공무원은 덧붙였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이상득 전 의원 보좌관 출신인 박영준 전 차관이 실세였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지 않느냐. 박 전 차관 주변에서 ‘전 정권 핵심실세와 친분이 있는 공무원이 누구’라는 식의 이야기가 끊임없이 흘러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영포·고대라인 밖 공무원들의 생각
“하위직 공무원은 그래도 노조를 통해 불만 토로나 민원을 하지만 간부급 공무원은 어디에 하소연할 데도 없었다.” 기자를 만난 한 부이사관급(3급) 공무원의 말이다. 그는 “아마 일반직장도 비슷하겠지만 어느 정도 계단을 올라간 공무원은 자신의 경력을 신중하게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 2년차에 들어섰을 때 소위 ‘영포라인’에 줄이 닿지 않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몸을 사리게 되더라는 것이다. “우리라고 ‘영포회’처럼 친목모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회식 장소를 잡는데 아예 직장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잡았다. 조금 과장을 보태면 화장실에서 만나도 혹시 누가 들을까봐 모임 이야기는 서로 꺼내지도 못했다.” 이 공무원에 따르면 또 다른 공무원은 중앙부처에 발탁되면서 아예 출신지 호적을 파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의 일이다. 혹시 그의 출신지역이 인사상 불이익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서라는 설명이다.

물론 기자가 만난 공무원들이 모두 그런 반응을 보인 것은 아니다. 한 서기관급(4급) 공무원은 “흔히 ‘영혼 없는 공무원’ 식의 비하를 하는데, 전 정부 때나 현 정부 때나 소신을 갖고 일을 하면 정당한 평가가 따르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자질부족 문제를 파벌싸움이나 특정 세력의 횡포 때문으로 돌리는 사람들은 어느 조직이나 있게 마련”이라며 반론을 폈다.

과거 기자가 취재할 당시 이명박 정부에 대한 강한 비판의식을 드러내보였던 중앙부처 공무원들은 여럿이었다. 하지만 정작 이번 취재를 위해 다시 접촉한 이들 대부분은 “내 이야기는 빼주면 안 되냐”고 말했다. 정부 위원회의 한 별정직 사무관은 “일반 공무원 출신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승진과 인사 문제”라며 “지난 2007년 이명박 정부로의 ‘정권 교체’를 경험하면서 소위 줄을 잘못 서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직접 눈으로 봤기 때문에 더욱 몸을 사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 임기 말이 되면 현 정부의 행태에 대해 증언하겠다”고 과거 약속했던 한 공무원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직은 때가 아닌 것 같다. 언제 술 한 잔 하면서 다 이야기해주겠다. 이번 정부에서 확실히 배운 것 하나는 ‘혹시 있을지 모르는 사태’에 대비한 카드를 적어도 하나쯤은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는 거다.”

2007년 봄 무렵 기자는 참여정부의 정책검증 기사를 준비하면서 정권 레임덕의 실체를 확인했다. 대부분의 공무원들은 자신들이 정책입안자이거나 해당 정책 담당자임에도 불구하고 대답을 피했다. 이를테면 기획재정부가 담당해야 할 해명도 국정홍보처로 돌리는 식이었다. 당시 총대를 메 기자들에게 정부정책기조를 옹호한 이들은 현 정부가 들어선 후 예외없이 밀려났다.
2012년 4월, 표면적으로 이명박 정부에 대한 조직적 반항이나 태업은 드러나지 않는다. 소신을 갖고 발언하면 확실히 배제된다는 것을 이번 정부 들어 뼈저리게 경험했기 때문일까. 아직 공무원 사회의 봄은 오지 않았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