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대엽의 눈]‘바뀐 것’과 ‘바뀌지 않은 것’의 충돌

정부의 민간인 불법사찰 문제는 이번 총선 기간을 가장 뜨겁게 달군 이슈다.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불법사찰 문건 2619건이 공개되었을 때 쉼 없이 이어지는 이 정부의 비정상성에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즉각적인 사과에 대한 기대와는 달리 불법사찰 문건의 80%가 참여정부의 작품이라는 청와대의 답변은 참으로 어이없는 것이었다. 치졸하고도 뻔뻔스러움이 철판 깐 얼굴에 비할 바 아니다. 사찰문건을 공개했던 KBS 새노조 측은 지난 1일 저녁에 문건 전체를 분석한 내용을 발표했다. 노무현 정부가 작성한 이른바 ‘80%’의 문건은 총리실이 만든 것이 아니라 경찰이 작성한 통상적 보고자료라고 했다.

특검을 하든지 청문회를 하든지 분명한 자료가 있으니 불순한 범죄사실은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나는 이 유치한 공방에 훈수를 보탤 마음이 없다. 다만 이번 불법사찰에서 내가 보고자 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맞닥뜨리고 있는 ‘바뀐 것’과 ‘바뀌지 않은 것’ 간의 충돌이 보여주는 사회변동 현상이다.

민간인에 대한 불법사찰이 만연했지만 입도 벙긋하지 못했던 엄혹한 시절이 있었다. 군부가 지배하던 정치적 암흑기에는 임의동행, 불법구금, 고문치사가 횡행했으므로 불법사찰은 차라리 경미한 감시였다. 이처럼 깜깜한 규율의 시대는 이제 ‘역사’가 된 줄 알았다. 그러나 전자 네트워크로 개방된 이 놀라운 노출의 시대에 민간인 사찰이라는 음습한 국가의 망령이 세상의 변화와 엇박자를 드러낸 것이다. 불법사찰의 내용은 방송 3사가 파업 중인 상태에서 KBS의 새노조가 만든 ‘리셋 KBS 뉴스 9’에 공개되었고, 이 프로그램은 정규방송이 국가권력에 의해 ‘장악된’ 상태에서 ‘유튜브’로 전파된 인터넷 팟캐스트 방송이었다.

우리는 미디어 사회의 놀랍게 바뀐 현실과 바뀌지 않은 국가권력의 고약한 놀음이 드러내는 거대한 균열을 보고 있다. 세상이 바뀌었다. 국가주의의 일체성으로 막히고 굴절되고 폐쇄되었던 사회가 예측 불가능한 온갖 방향에서 세상을 비추는 다종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가려지고 숨겨졌던 것들이 점점 더 투명하게 들여다보이는 세상으로 변한 것이다. 막힌 사회가 뚫려 ‘투명사회’가 된 것이다. 기존 노조를 막으면 새노조가 생기고, 공중파 정규방송을 막으면 팟캐스트로 뚫는다. 개인이든 조직이든 네트워크로 이어지고 네트워크로 뚫려 있다. ‘나꼼수’가 걷어버린 장막에 환호하던 시민들은 어느덧 합창하듯 ‘쫄지마!’를 외친다.

우간다 반군의 수괴 코니를 잡자는 취지로 ‘사라진 아이들’이라는 구호단체가 만든 동영상 ‘코니 2012’는 순식간에 1억에 가까운 조회 수를 기록했다. 저 아프리카 시골 국가의 가려진 밀림 속조차 뚫어 추악한 실상을 세계의 시선 앞에 내놓은 것이다. 보이지 않는 개인의 ‘신상털기’조차 국가가 아니라 개인이 마음먹은 대로 되는 그런 투명사회가 된 것이다.

조대엽의 눈

그러나 정작 국가의 행태는 바뀌지 않았다. 1961년 쿠데타의 날, 공포의 시대를 예고했던 한 장의 사진에서 박정희의 차가운 표정을 가리던 그 섬뜩한 검은 안경을 이 정부는 다시 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보이지 않아야 할 검은 안경 속 눈동자의 움직임이 이제 투명하게 드러나 더 이상 가려지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아무래도 총선에서 대선까지 이어지는 올 한 해 우리 사회는 바뀌지 않은 국가주의와 바뀌어버린 우리의 생활세계가 더욱 강렬한 충돌의 파열음을 내게 될 듯하다. 거기에서 우리는 또 한 번의 선택을 해야만 한다.

<조대엽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