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진통 겪은 야권연대, 총선 승리 순산 할까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야권연대호가 4·11 총선이라는 결승선을 향해 출항했다. 야권연대호에는 한명숙·이정희 대표 등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 지도부,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등 대권주자들과 이번 총선 공천 확정자들이 모두 승선해 있다. 야권연대호는 힘겨운 상대인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을 정점으로 하는 새누리당호와 양보 없는 경쟁을 해야 한다.

민주통합당 한명숙 대표(오른쪽)와 통합진보당 이정희 공동대표가 3월 6일 국회에서 4·11 총선 야권연대를 논의하 는 대표회담을 하기에 앞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 강윤중 기자

현재 선거판세를 보면 새누리당과 야권연대는 우열을 가리기 힘든 백중지세를 보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에 따라 총선을 불과 보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양측의 승패는 통합과 분열의 변수에 달려 있다고 본다. 새로운 돌출변수가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보수진영이든 진보진영이든 후보들이 난립, 표를 분산시키면 상대진영 후보에게 어부지리를 안겨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총선정국에서 통합과 분열의 가장 큰 변수는 야권연대의 성공 여부다. 우여곡절 끝에 이뤄낸 야권연대가 온탕과 냉탕을 왔다 갔다 했기 때문에 국민들이 이를 어떻게 평가할지 주목된다. 민주통합당 한명숙 대표와 통합진보당 이정희 공동대표는 3월 10일 야권연대 협상을 타결했다. ‘감동 없는 공천’이라는 비판을 받은 민주통합당은 야권연대 협상에서 통큰 양보를 했다. 민주통합당은 경기 의정부을(홍희덕), 인천 남구갑(김성진), 광주 서을(오병윤) 등 16곳에서 자기당 후보를 내지 않고, 통합진보당에 후보를 양보했다. 또한 서울 관악을 등 76곳에서 양당 후보 간에 경선으로 후보를 선출키로 했다. 야권 단일후보 경선은 3월 17~18일 100% 여론조사 방식으로 이뤄졌다.

단일화 경선 진통 희생과 양보로 일단락
단일화 경선에서 민주통합당은 대선주자인 정세균(서울 종로)·정동영(서울 강남을) 상임고문 등이 공천권을 따냈고, 통합진보당 트리오인 이정희(서울 관악을)·심상정(경기 고양 덕양갑) 대표와 노회찬(서울 노원병) 대변인도 ‘단일화 카드’를 거머쥐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야권은 단일화 경선으로 총선에서 여당과의 확실한 일대 일 구도가 구축돼 ‘단일화 바람’을 극대화할 것으로 보고 들떠 있었다.

특히 민주통합당 한명숙 대표는 야권연대를 통해 총선 이슈에서 사라졌던 MB(이명박)정권 심판론을 다시 한 번 불 붙이려 했다. 이날 발표한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얼미터의 3월 둘째주 여론조사 결과 야권연대(민주통합당+통합진보당)의 지지율과 새누리당의 지지율이 똑같이 나온 것도 희소식이었다. 민주통합당(33.7%)과 통합진보당(5.7%)은 야권연대 효과로 지지율이 소폭 상승했으며, 새누리당은 39.4%로 소폭 하락했다. 하지만은 야권의 환호는 여기까지였다.

경선 결과가 발표된 다음날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 측에서 여론조사 경선에서 응답자의 나이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의 야권연대는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정희 대표에게 경선에서 패했던 민주통합당 김희철 의원은 “이정희 대표는 이번 사태에 책임을 지고 후보직을 즉각 사퇴하라”고 요구했다. 김 의원은 탈당해 무소속으로 서울 관악을에 출마했다. 민주통합당 경선 패배자들인 고연호(서울 은평을)·이동섭(서울 노원병)·박준(경기 고양 덕양갑) 후보도 “지역 여론조사 경선이 부정으로 얼룩졌다”며 통합진보당 후보들의 사퇴를 요구했다. 이 같은 싸움은 경선 당사자들뿐만 아니라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 지도부의 갈등으로 점화됐다.

민주통합당 한명숙 대표와 총선 출마 후보들이 3월 21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선대위 출범 식에서 총선 승리를 다짐하고 있다. | 강윤중 기자

민주통합당은 ‘이정희 책임론’을 거론하며, 사실상 후보직 사퇴를 요구했다. 또한 단일화 경선에서 간발의 차이로 패한 백혜련 후보를 경기 안산 단원갑에 출마시키겠다고 으름장까지 놓았다. 범야권 시민사회 인사들의 모임인 ‘희망2013·승리2012원탁회의’는 “이정희 대표가 헌신과 희생을 보여야 한다”며 사퇴를 촉구했다. 이에 대해 통합진보당의 태도는 완강했다. 이정희 대표는 총선에 출마해 유권자들로부터 직접 심판받겠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양당의 자존심 싸움이 야권연대를 파국으로 치닫게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았다.

대전·충남 제외 지역서 여야 1대1 구도
하지만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 모두 야권연대의 소중한 성과를 이어가야 한다는 공감대가 견고하게 형성되어 있었다. 야권연대가 파경으로 치닫는다면 그 어느 때보다 좋았던 총선 분위기였는데 야당들 스스로가 망쳤다는 책임을 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상황이 다시 반전됐다. 이정희 대표가 총선 후보등록 마지막날인 3월 23일 서울 관악을 출마를 포기했다. 여기에 민주통합당도 백혜련 후보를 경기 안산 단원갑에 출마시키지 않기로 했다. 양당이 야권연대를 위한 희생과 양보를 결단한 것이다.

이번 사태가 치유돼 야권연대가 다시 정상궤도를 달린다면 그 시너지 효과는 크다는 것이 대부분 전문가들의 견해다. 실제로 야권 단일후보가 확정됨에 따라 대전·충남을 제외한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여야의 일대 일 구도가 완성됐다. 전국적인 단위에서 야권연대가 성사된 것은 총선 사상 처음이다.

이에 앞서 야권연대는 2010년 6·2 지방선거와 지난해 4월 재·보궐선거, 그리고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위력을 발휘했다. 야권연대를 성사시킨 선거마다 야권은 대부분 승리했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는 야권연대로 송영길(인천시장)·안희정(충남지사)·이광재(강원지사)·김두관(경남지사) 등이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승리했으며, 지난해 4월 경기 성남 분당을 재·보궐선거에서는 민주당 손학규 대표가 야권의 불모지에서 승리했다. 지난해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야권연대가 만들어낸 한 편의 드라마였다. 시민사회와 제도권 정당인 민주통합당·통합진보당이 함께 시민사회진영 출신인 무소속 박원순 후보를 내세워, 거함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를 격침시켰다.

통합진보당 지도부와 19대 총선 출마자들이 3월 20일 국회 귀빈식당에서 열린 공동선거대책위 출범식 중에 손을 맞잡고 있다. | 박민규 기자

특히 야권연대는 초박빙 지역에서 더욱 힘을 발휘할 수 있다.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 따르면 전국 70여곳에서 예측불허의 접전이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초박빙 지역은 서울·인천·경기 등 수도권에 집중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여야 후보 지지율 5%(2000여표) 차이의 초박빙 지역에서는 야권 단일후보가 승리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실제로 지난 18대 총선의 경우 수도권에서 득표율 5% 차이에서 승부가 갈린 곳이 무려 28곳에 이른다. 서울 마포갑에서는 새누리당 강승규 후보가 48.05%의 득표율로 당선됐으며, 민주통합당 노웅래 후보와 통합진보당 윤성일 후보는 각각 45.38%와 5.09%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만약 야권연대가 성사돼 단일후보로 노웅래 후보가 나섰다면 당선자가 바뀔 수 있는 상황이었다. 서울 노원병도 마찬가지다. 당시 민주통합당에서는 김성환 후보(16.26%)를 내세웠고 통합진보당에서는 당의 간판인 노회찬 후보(40.05%)를 출마시켰다. 결과는 야권의 표가 분산되는 바람에 새누리당 홍정욱 후보가 43.10%를 얻어 당선됐다.

야권연대가 복원되면 야권의 총선 승리 가능성은 높다. 특히 비온 뒤에 땅이 더욱 굳어지듯 야권이 똘똘 뭉치면 시너지 효과는 더욱 클 것으로 예상된다. 민주당이 목표로 하는 원내 1당, 통합진보당이 목표로 하는 교섭단체(20석 이상) 지위 확보도 전혀 비현실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이렇게 되면 여소야대는 떼어놓은 당상이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서치 앤 리서치(R&R)의 배종찬 본부장은 “야권연대는 2000표차 초박빙 지역에서 야권 단일후보가 새누리당 후보를 누를 수 있는 확실한 카드”라며 “야권연대가 이뤄지면 정당 득표율 부문에서도 상승 모멘텀이 살아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진보적 야권이 화학적으로 결합했을 경우 정치컨설팅 전문 P&C정책개발원(대표 황인상)이 역대 총선 및 2010년 지방선거 결과를 토대로 19대 총선을 시뮬레이션해본 결과 민주통합당, 통합진보당 등 야권연대는 154석, 새누리당은 131석, 자유선진당은 14석을 얻는 것으로 나오기도 했다.

젊은층과 진보적 무당파 지지 기대
야권연대의 이점은 많다. 첫째, 야권연대가 공동선대위를 꾸릴 수 있다. 경선에서 승리한 후보가 야권 단일후보로 나서고, 패한 후보는 선대위원장을 맡는다. 자연스럽게 양쪽의 조직이 화학적으로 결합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단일화 효과는 단순히 1+1=2가 아니라 2+알파가 되는 셈이다. 하지만 경선에서 패한 후보가 불복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한다면 상황은 정반대가 될 수 있다. 선거과정에서 양측은 격렬하게 비판할 수밖에 없고, 표는 분산될 수밖에 없다. 새누리당 후보에게 매우 좋은 구도가 되는 것이다. 리얼미터의 이택수 대표는 “야권연대가 완벽히 이뤄져 야권 후보와 새누리당 후보가 일대 일 구도가 되면 야권 후보가 유리하다”며 “하지만 야권연대에 승복하지 않고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일부 지역구에서는 새누리당 후보에게 어부지리를 안겨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둘째, 야권연대는 젊은층과 진보적 무당파층을 대거 투표장으로 끌어들이는 효과도 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등 최근 주요 선거 결과를 보면 2040(20대·30대·40대)이 선거의 승패를 좌우해 왔다. 특히 이들은 개혁성향으로 여당 후보보다는 야권 단일후보와 코드가 맞는다. 또한 진보적 무당파층도 선거에 참여하게 할 수 있다. 만약 이번에 야권연대가 파경을 맞았다면 이들은 야권후보들의 난립에 실망한 나머지 투표를 거부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야권 단일화가 톱니바퀴처럼 잘 돌아간다면 이들은 대거 투표장으로 나와 야권 단일후보에게 힘을 보탤 것으로 전망된다.

셋째, 야권연대는 사라졌던 MB 심판론을 되살릴 수도 있다.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이 공동선대위를 구성하고, 공동유세를 통해 이명박 정권에 대한 실정을 집중 부각시키면 다시 MB 심판론이 탄력을 받을 수 있다. 최근 이명박 정부의 민간인 사찰문제가 다시 이슈화되는 등 여론도 MB 심판론에 공감하고 있다. 그동안 야권은 정권심판론을 띄우려 했으나 새누리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제주 해군기지 논쟁을 집중 이슈화시켰고, 민주통합당이 공천 후유증에 시달렸기 때문에 대여 전선을 효과적으로 짜지 못했다.

윤희웅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조사분석실장은 “이명박 정권 말기에 치러지는 총선에서 정권심판론이 아예 국민들 마음 속에서 사라지지는 않았다”며 “이번 선거의 관건은 야당이 국민들의 마음 속에 있는 정권심판 정서를 얼마나 많이 끌어낼 수 있느냐의 문제”라고 말했다. 윤희웅 실장은 “국민들은 동시에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을 정권심판의 대상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야당은 박 비대위원장에게 대응할 전략도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권순철 기자 ik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