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위안부 피해 실상 세계에 알렸다

1000차 수요집회가 남긴 것들

1992년 1월 8일 수요일.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회원 30명은 “일본 정부는 정신대 사실을 인정하고 공식 사과하라”고 요구하며 일본대사관 앞에서 1시간여 동안 침묵시위를 벌였다. ‘1회 수요시위’였다. 당시 정대협 회원들은 8일 뒤에 예정된 미야자와 기이치 당시 일본 총리의 방한에 반대하며 요구사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매주 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벌이겠다고 선언했다.

이날로부터 7000여일이 넘도록 위안부 할머니들과 정대협 회원들은 일본대사관 앞에서 계속 수요시위를 했다. 12월 14일 1000차 수요시위로 위안부 피해자들은 7281일간, 만 19년 11개월 6일간 집회를 이어간 셈이다. 첫번째 수요시위가 벌어진 날에 태어난 아이가 대학생이 되고도 남을 시간이다. 계절이 바뀌고 세기가 바뀌었지만 일본 정부는 ‘위안부 범죄 인정’ ‘법적 배상’ ‘책임자 처벌’과 같은 위안부 할머니들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있다.

피해자 법적으로 인정 지원금 지급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1990년대 이전부터 여성단체를 중심으로 꾸준히 논의됐다. 1990년 11월 한국의 주요 여성단체를 중심으로 정대협이 출범했다. 정대협은 수요시위가 정기화되기 이전부터 일본 각료의 위안부 관련 발언 등이 나올 때마다 일본대사관 앞에서 항의시위를 주도했다. 정대협은 위안부 신고전화를 통해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기도 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사회적인 파급력을 갖게 된 계기는 1991년 8월 김학순 할머니(1997년 사망)의 증언이었다. 서울 중구에 위치한 한국여성단체연합 사무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은 위안부 피해자의 최초 공개증언 자리이기도 했다. 17세의 나이로 석달간 강제로 일본군 위안부 생활을 겪다가 간신히 탈출한 사연이 세상에 알려졌다. 김 할머니는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아시아·태평양 전쟁 한국인 희생자 보상청구소송을 제기하고, 일본 법정에서 위안부 피해상황을 증언하기도 했다. 이후 미군의 일본군 위안부 문서와 일본 방위청 도서관의 위안부 관련 문서가 발견되면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국제문제화됐다.

교과서에 정확한 사실 명시
위안부 피해자들의 운동은 ‘일제하 종군위안부 생활안정지원법안’ 통과로 일부 결실을 맺었다. 1993년 5월 18일 국회를 통과한 이 법은 위안부 피해자들을 법적으로 인정하고, 이들에게 지원금을 매달 지급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당시 보건사회부(현 보건복지부)는 관련 부처 공무원과 민간전문가로 이뤄진 심의위원회를 구성해 첫 해에만 153명을 위안부 피해자로 공식 인정했다. 정대협 신고전화를 통해 접수된 위안부 피해자들의 상당수도 법적인 인정을 받았다. 이후 매해 5~10명의 위안부 피해자들이 심의위원회를 통해 위안부 피해자로 인정됐으며, 2011년 현재 정부에 공식적으로 인정된 위안부 피해자의 숫자는 총 234명이다.

교과서에도 위안부 문제가 명시되기 시작했다. 1990년대 이전 교과서에는 “젊은 여자들까지 산업시설과 전선으로 강제로 끌어갔다”, “여자들까지 침략전쟁의 희생물로 삼기도 했다”는 정도의 서술만 실려 있었다. 일본 제국주의의 강제노역에 동원된 근로정신대와 성적 착취의 피해자인 위안부가 명확히 구별되지 않았다. 이후 1997년 중학교 교과서는 “여성까지도 정신대라는 이름으로 끌려가 일본군의 위안부로 희생되기도 했다”며 보다 정확히 사실을 기재했다. 2002년 7차 교육과정 고등학교 국사교과서는 정대협의 교육자료를 참고자료로 인용해 위안부의 피해 실상을 생생히 전하기도 했다.

2007년 이후로 신고자 한 명도 없어

위안부 할머니들의 수요시위도 언젠간 끝날 수밖에 없다. 평균연령이 너무 높기 때문이다. 2009년 여성가족부가 83명의 위안부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작성한 ‘위안부 피해자 지원사업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위안부 피해자들의 평균연령은 84세로 나타났다. 최연소자의 나이도 75세였다. 이들 중 72.8%가 돌보는 가족 없이 독거노인 상태였으며, 66.7%가 거동이 불편하거나 아예 불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보고서는 생존자들의 대부분이 고혈압, 당뇨, 치매, 척추·관절 질환을 앓고 있다고 전했다.

2년이 지난 현재 83명이던 위안부 할머니들의 숫자는 65명으로 줄었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할머니들의 평균연령도 86세로 높아졌다. 피해자의 수가 줄어드는 속도는 해가 지날수록 빨라지고 있다. 1993년부터 2011년까지 사망자 숫자를 5년 단위로 보면, 이러한 경향이 더욱 명확히 드러난다. 위안부 등록이 시작된 93년부터 97년까지 사망한 위안부 피해자의 숫자는 21명이었지만, 1997년부터 2001년까지 5년간 사망자는 41명이었다. 2002년부터 5년간 49명, 2007년부터 5년간 58명의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의 사과와 배상을 받지 못한 채 세상을 등졌다. 2009년부터는 생존자 숫자도 100명 아래로 떨어졌다.

11월 30일 998차 수요시위에서 만난 위안부 피해자들의 건강상태도 좋지 못했다. 이날 시위는 태국에서 생을 마감한 노수복 할머니의 추모제로 진행됐지만, 건강 등의 이유로 5~6명의 위안부 할머니들만 시위에 참석했다. 할머니들은 주위의 부축 없이는 거동하기조차 힘들었다. 김복동 할머니도, 3월 <주간경향>과 인터뷰한 길원옥 할머니도 5분 이상 길게 대화를 나누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반면 새롭게 위안부 피해자로 인정받은 사람들은 2007년 이후로 단 한 명도 없다. 잠재적 ‘위안부 피해자’로 추정되는 사람들의 연령이 높아지면서, 신고전화 횟수 자체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여성가족부의 한 관계자는 “매년 2~3명 정도 위안부 피해자 신청 의사를 밝히는 분들이 있다. 하지만 얘기를 들어보면 위안부가 아닌 근로정신대 피해자이거나, 진술의 증명력이 부족해 모두 기각됐다”고 밝혔다.

올해 8월까지 위안부 피해자 심의위원이었던 윤미향 정대협 대표는 “234명 외에 위안부 피해자들이 더 있지만, 정식으로 등록하길 원하지 않으신다. 신고 건수도 거의 없어서 최근 심의위원회는 문서로만 피해자 지원금과 관련한 회의를 열었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의 위안부 피해자 대책도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9년 위안부 피해자 지원사업 현황’에 따르면, 위안부 할머니들의 48.1%는 여성가족부가 지원하는 생활안정지원금이 부족하다고 응답했다. 광역 지방자치단체 담당공무원의 월 평균 방문 횟수는 0.1회, 기초 지방자치단체 담당공무원의 월 평균 방문 횟수는 0.8회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지자체 담당 공무원의 방문 등 관심을 독려해 피해자들의 외로움을 해소해줘야 한다”고 결론내렸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