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와의 전쟁’ 이후 중앙아시아·중동 정치문제 영향력 강화
브루스 커밍스 교수(68)는 미국 뉴욕 주 출신으로 컬럼비아대에서 동아시아학 박사를 받았다. 현재 시카고대 역사학과 학과장이며, 전공분야는 한국현대사와 현대 동아시아 국제관계다. 대표작 <한국전쟁의 기원>에서 커밍스 교수는 제3자의 시각에서 한국전쟁을 ‘내전’으로 보는 시각을 선보여 한국전쟁의 책임을 북한에만 돌리는 전통주의적 시각에 반기를 들었다. 2004년에 발간한 북한 연구서인 <김정일 코드>에서 커밍스 교수는 북한 체제를 ‘폭력적 권력이 장악한 병영국가’로 비판하면서도,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북한에서 자행한 전쟁범죄가 현재 북한 반미주의의 기원임을 밝혔다. 1985년 미국 망명중이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귀국 비행기에 동승한 인연이 있는 커밍스 교수는 지난해에 발간한 신간 <한국전쟁> 서두에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헌정한다”고 적기도 했다. <편집자 주>
9·11 공격 이후 10년간 미국인들은 여러가지 새로운 경험을 했다. 크게 강화된 미국내 감시 체계도 그 중 하나다. 하지만 국가 안보의 관점에서 보면 9·11의 결과가 진정 새로운 것은 아니다. 9·11은 지난 60년간 계속된 미국의 ‘봉쇄 정책’을 지속시켰다. 봉쇄 정책은 두 가지 축으로 이뤄져 있다. 하나는 자신의 적을 봉쇄시키는 것이고, 또 한 축은 자신의 동맹을 압박하는 것이다.
1941년 이후 미국이 치른 거대한 전쟁은 정치적 차원에서의 봉쇄 정책을 위태롭게 했다. 9·11 이후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리비아에서 벌어진 3개의 전쟁은 미국을 세계에서 가장 불안정한 지역에 개입하도록 만들었다. 그곳은 바로 인도네시아에서 서쪽의 알제리에 이르는 높은 인구 밀도를 가진 일군의 무슬림 국가 벨트다.
미국의 봉쇄 정책의 본질은 전쟁이 끝나더라도 미군과 군사기지가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1945년 일본과 독일, 1953년 한국에 설치된 미군기지는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있다. 미국이 전쟁에 패한 베트남만이 유일한 예외인데, 오히려 이 예외가 미국의 봉쇄 정책의 본질을 거꾸로 증명하고 있다.
지금처럼 최고의 강대국이 여타 강대국들의 영토에 군대를 주둔시키는 상황은 세계사적으로도 유례가 없다. 독일, 일본, 영국, 스페인, 이탈리아, 한국에 미군기지가 설치돼 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경제인 중국에는 미군기지가 없지만, 주변국의 미군기지가 중국을 둘러싸고 있다.
아프간 주둔 미군 철군 계획 없어
또한 많은 미군기지가 지금은 독립국가가 된 구소련의 영토에 자리잡고 있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과 같은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구소련의 군사기지를 활용하기도 한다. 이는 20년 전에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시작된 지 10년이 지난 지금, 펜타곤(미 국방부)이 아프가니스탄에 오랫동안 머무를 계획을 갖고 있다는 점은 아주 명백해졌다.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에 머무르고자 하는 목적은 아프가니스탄뿐만 아니라 키르기스스탄과 같은 구소련 지역 근방의 군사기지들 중 되도록 많은 숫자를 활용하기 위함이다. 또한 대중에게 알려지진 않았지만 펜타곤은 파키스탄에 있는 여러 군사기지들을 비밀리에 운영하고 있다.
2001년에는 9·11 공격이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상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펜타곤은 이라크에서 수십억 달러를 들여 만든 수십 개의 군사기지를 운영하고 있다. 알려진 것만 해도 13개의 미군 기지가 이라크에 있다. 이라크 정부가 미군의 영구주둔을 약속한 적은 없지만, 이라크 주둔 미군의 완전한 철군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중동의 서쪽 끝에 위치한 알제리의 경우 아직 미국의 레이다망에 포착되지 않은 상황이다. 하지만 이웃국가 리비아는 이미 미국의 시야에 들어와 있다. 세번째 ‘포스트-9·11 전쟁’인 리비아 내전은 카다피 정권을 붕괴시켰지만, 리비아의 미래는 명백히도 어둡고 불투명한 상태다.
여기서 우리는 미국의 민주-공화 양당이 군사력의 효용에 관해서 생각의 일치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딕 체니, 도널드 럼스펠드와 같은 보수주의자들은 미국의 군사력이 사담 후세인의 군대를 패퇴시키고, 이라크에 평화를 회복시키는 일을 빠르게 해치웠다고 여겼다. 힐러리 클린턴과 그의 측근 서맨서 파워와 같은 자유주의자들은 대규모의 군사력 사용이 인도주의적 목적에 부합할 것이며 ‘새 리비아’를 만들어 낼 것이라 보았다. 시민을 보호하겠다는 명분으로 시작된 개입은 빠르게 살상과 정권교체를 동반하는 군사작전으로 변했다. 앞으로 두고 볼 일이다.
군사력 확대 ‘세계의 경찰’ 역할
이처럼 ‘테러와의 전쟁’은 지구 전체에 군도처럼 퍼져 있는 미국 군사력의 거대한 확장을 가져왔다. 2007년에는 아프리카의 미국 지역 사령부인 아프리콤(AFRICOM)이 설치됐다. 또한 테러와의 전쟁 이후 군사력이 정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납득할 수 없는 믿음이 깊어졌고, 이 믿음은 ‘세계의 경찰’이라는 미국의 부정할 수 없는 역할을 강화시켰다. 더불어 매순간 지불 기일이 다가오고 있는, 감당할 수 없는 양의 청구서가 미국에 떨어지고 있다.
9·11 공격은 다음과 같은 두 개의 지속적인 영향을 남겼다. 9·11 공격은 미국을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밀어넣었다. 중앙아시아는 9·11 이전까지는 전략적 요충지가 아니었지만, 현재는 러시아, 중국, 파키스탄, 인도라는 4개의 핵 강대국의 이해가 교차하는 곳이다.
또한 미국은 9·11 이후 이란 봉쇄와 중동 안정화라는 두 가지 목적을 위해 중동의 미군과 사설 보안군의 수를 크게 늘렸다. 세계에서 가장 위험하고 혼란에 빠진 지역인 중동은 ‘아랍의 봄’으로 인해 불안정성이 크게 높아진 상황이다.
1945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미군기지가 중앙아시아와 중동에서 앞으로 수십년간 유지되리라고 예측하는 쪽이 타당한 분석이다.
글·브루스 커밍스<미국 시카고대 역사학과 교수>
<번역·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