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이야기]집배원 차선우

충남 천안시 지식경제공무원교육원 안의 추모공원에는 순직 우정인 합동위령비와는 별도로 두 집배원의 추모비가 따로 있다. 1927년 전북 전주에서 물에 빠진 편지를 건지다 급류에 휩쓸려 숨진 이시중 집배원과 1980년 충남 안면도에서 폭설 속에 마지막 한 통의 우편물을 배달하고 돌아오던 중 절벽에서 떨어져 동사한 오기수 집배원의 추모비다. ‘고 전주우편국 집배인 이시중 순직비’는 서울 종로 체신기념관, ‘오기수 집배원 순직추모비’는 충남 태안 안면우체국에서 각각 옮겨온 것이다.

두 집배원의 살신성인은 언론에 대서특필돼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렸다. 초등학교 도덕 교과서에 실려 사회의 귀감이 되었으며, 오 집배원의 경우 만국우편연합(UPU) 기관지에 소개되는 등 나라 밖에까지 감동을 전했다.

고 차선우 집배원(위)에게 훈장을 수여한 뒤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왼쪽에서 세 번째)이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있다. / 우정사업본부

최근 순직한 경기도 용인우체국의 차선우 집배원(29)도 두 사례 못지않게 가슴 아프면서 뭉클한 이야기를 남겼다. 차 집배원은 2005년 비정규직으로 집배원 생활을 시작했다. 가정환경이 어려웠지만 성격이 밝고 매사에 적극적이었던 그는 눈에 띄게 업무에 열성적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3년 만에 정규직에 임용됐고, 우정사업본부장이 우체국마다 한 명씩 임명하는 고객만족(CS) 리더로도 활동했다.

지난 7월 27일 차 집배원은 동료 남석현 집배원과 함께 비옷을 입고 오토바이에 올랐다. 우리나라에 기상관측이 시작된 지 104년 만의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진 날이었다. 오후 1시쯤 이들은 경기도 용인시 포곡읍 금어리에서 마지막 8통의 우편물을 배달하기 위해 오토바이에서 내렸다. 도로에 물이 무릎까지 차올라 목적지까지 300m가량을 걸어서 갈 수밖에 없었다.

흙탕물이라 바닥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왕복 2차선 길을 눈대중으로 걸어가던 중 남 집배원이 무엇인가에 발이 끼어 잠시 지체됐다. 차 집배원은 남 집배원이 들고 있던 우편물을 낚아채서 먼저 앞으로 나아갔다.

사고 현장을 보면 참으로 어이가 없다. 도로변의 작은 도랑이 개구멍만한 배수관(지름 60㎝)과 이어져 있다. 건장한 성인 남자라면 일부러 들어가려고 해도 몸을 넣기 어려운 크기였다. 차 집배원은 흙탕물 속에 배수관이 있는 걸 알지 못하고 발을 내딛고 말았다.

몇 걸음 뒤에 따라 가던 남 집배원은 배수관에 빠진 차 집배원을 보고 급히 달려갔다. 차 집배원은 한 손에는 우편물 뭉치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 배수관을 잡은 채 버티고 있었다. 남 집배원은 급히 우편물을 받아 옆에 있는 철망 사이에 끼우고는 두 손으로 차 집배원을 잡았다. 하지만 수압이 상상을 초월했다. 남 집배원이 미끄러지면서 두 사람은 소용돌이에 휩쓸렸다.

마침 주변의 업체 직원 2명이 올라오다 이 광경을 보았다. 이들은 이미 다리 한쪽이 배수로에 빨려들어간 남 집배원을 극적으로 구조했다. 차 집배원은 3일 뒤 60㎞ 떨어진 서울 청담대교 북단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차 집배원이 배수관에 빠지자마자 두 손으로 버텼다면 살 수도 있었다는 게 사고 정황을 잘 아는 동료들의 아쉬움이다. 우정사업본부는 그가 목숨과 바꾼 등기우편과 EMS(국제특별운송) 중에는 중요한 국제계약 문서가 포함돼 있었다고 나중에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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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감이 강했던 차 집배원은 아버지가 장기간 투병 중일 때 아프가니스탄 파병부대에 지원했다. 집안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급박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우편물을 지켜낸 그의 ‘무한책임’ 정신은 나라를 감동시켰다. 지난 9월 2일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이 직접 그가 근무했던 용인우체국을 방문해 유가족에게 옥조근정훈장과 특별승진 임명장을 수여했다. 오기수 집배원 이래 31년 만의 일이다. 더불어 이시중·오기수 집배원 추모비가 있는 천안 우정인 추모공원에 차 집배원 추모비도 건립될 예정이다.

<신동호 선임기자 hud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