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경제]행복은 소득순이 아니잖아요

<세 얼간이>

라지쿠마르 히라니 감독의 <세 얼간이>(2009)는 30년 전 한국영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를 떠올리게 한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는 입시지옥에 몰린 학생들의 슬픈 저항기다. 비단 학생들뿐이 아니었다. 사회 전반적으로 경쟁과 공존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던 시기였다. 1인당 국민소득 5000 달러, 후진국과 중진국을 가르는 그즈음에는 어느 사회나 비슷한 갈등을 겪는다.

9%의 초고속성장을 거듭하면서 돈에 눈을 뜨기시작한 인도가 <세 얼간이>를 내놓은 것은 그래서 특별해 보이지 않는다. 무한경쟁을 통해 승자독식으로 갈 것이냐, 공존을 통해 천천히 함께 갈 것이냐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인도는 서있다. 돈이냐 사람이냐, 개인이냐 집단이냐,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인도인들의 삶은 크게 바뀔 것이다.

란초(아미르 칸 분), 파르한(마드하반 분), 라주(셔면 조쉬 분) 등 3명의 친구가 세 얼간이다. 인도 최고의 공대에 들어온 이들은 천재다. 하지만 천재들에게도 그림자는 짙다. 파르한은 아버지의 꿈인 공학자가 되기 위해 사진의 꿈을 접는다. 라주는 찢어지게 가난한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취직을 해야 한다. 세상 걱정이 하나도 없을 것 같은 란초도 비밀이 있다.

공대의 비주 교수는 “인생은 레이스다. 빨리 달리지 않으면 짓밟힌다”고 외친다. 경쟁을 하거나 죽거나 선택을 강요한다. 자살을 선택한 제자는 패배자일 뿐이다. 승리는 부를 가져다 주고, 부는 곧 행복을 가져다 준다고 믿는다. 학문에 대한 호기심보다는 점수가 중요하다. 그래야 월급을 더 줄 수 있는 미국 기업에 취업할 수 있다.

그런 철학을 가장 따르는 인물이 차투르다. 차투르는 얼간이들의 동기다. 학교의 가르침대로 주입식 공부를 했고, 미국 기업에 취직했다. 차투르의 시각으로 보면 세 친구는 자본주의의 본질을 모르는 ‘얼간이’다. 그는 “내가 돈을 더 많이 벌었으니 (인생에서도) 이겼다”고 당당히 외친다.

이스털린의 역설(Easterlin’s Paradox)이라는 게 있다. 소득이 일정한 수준에 이르러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되면 소득 증가가 행복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이론이다. 1974년 미국 경제학자 이스털린이 주장했다. 그는 ‘행복경제학’의 창시자로 불린다.

이스털린은 1946년부터 30개국의 행복도를 연구했다. 가난한 나라와 부자 나라, 사회주의 국가와 자본주의 국가가 망라됐다. 연구 결과 확실히 소득이 높은 사람일수록 더 행복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발견됐다. 일정시점이 지나자 돈을 아무리 더 벌어도 행복도가 높아지지 않는 현상이 관측됐다.

멀리 볼 필요 없다. 한국 사회가 딱 그렇다.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2만 달러. 30년 전보다 4배나 소득이 늘어났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011년 낸 보고서에서 “우리나라는 지난 20년 동안 1인당 국민소득이 급격히 증가했음에도 삶의 질에 대한 만족도는 정체하고 있어 ‘이스털린의 역설’이 적용된다”고 밝혔다.

OECD는 2011년 50주년 기념 각료이사회에서 ‘당신의 더 나은 삶 지수(Your Better Life Index)’라는 행복지수를 처음 공개했다. 기준은 주택, 소득, 일자리, 공동체, 교육, 환경, 거버넌스, 건강, 생활 만족도, 안전, 일과 여가의 조화 등 11개가 포함된다. 단순히 가계소득과 정부투자, 지출을 합산한 GDP를 대체하려는 지수다.

영화 속 경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 성공은 따라온다”는 영화 속 란초의 말은 한국인에게는 오래된 흑백영화에 갇혀버린 방백처럼 느껴진다. 위장전입, 논문대필, 병역회피 등 성공을 위해서 과정 따위는 무시하는 데 익숙해져버린 한국 사회에 던지는 마지막 경고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