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이야기]러시아가 보낸 오바마 생일기념 우표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에게 있어 2011년 8월은 운명적인 달이다.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일들이 연이어 일어났다.

8월 5일 신용평가회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한 단계 내린다고 발표하자 미국은 물론 온 세계가 패닉상태에 빠졌다.

오바마와 메드베데프의 친근한 포즈와 러시아에서 낸 오바마 생일우표.

하루 전만 해도 오바마의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8월 4일은 그의 50번째 생일이었다. 백악관 주인이 50번째 생일을 맞는 것은 미국 역사상 세번째. 전례가 드문 만큼 오바마의 젊음을 국민들이 새삼 깨달을 수 있는 기회였다. 생일 전날(3일) 그는 정치적 고향인 시카고에서 생일 파티 겸 정치자금 모금행사를 갖고 재선의 의지를 다졌다.

생일날, 오바마는 백악관 로즈 가든에서 가까운 친구들을 불러 생일 파티를 다시 가졌다. 닭요리와 립(rib), 햄버거, 핫도그, 파스타, 샐러드 등이 곁들여진 ‘요란하지 않은’ 저녁식사였지만 모두들 환한 표정이었다. 식사가 끝날 무렵 부인 미셸과 두 딸이 케이크를 들고 와 생일 축하 인사를 전했고, 이어 실내 공간인 이스트룸으로 이동했다. 오바마는 참석자들과 함께 춤을 추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영화배우 톰 행크스, 미국프로농구(NBA) 스타 찰스 바클리, 코미디언 크리스 록, 영화배우 힐 하퍼도 파티를 즐겼다.

하루 전인 8월 3일 저녁 오바마는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대통령님 생일 축하합니다.”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은 오바마가 이런 내용의 인사를 받았다고 밝혔다. 메드베데프는 러시아가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할 수 있도록 밀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맨 입에 그런 부탁을 한 것은 아니다. 러시아 우정은 오바마 생일 기념 우표와 기념 봉투를 제작, 발행해 오바마에게 선물로 보냈다. 이 우표는 일반적으로 편지 보낼 때 붙여서 쓰는 정규 우표는 아니다. 그래서 러시아라는 국가 이름도, 얼마짜리 우표라는 액면가도 쓰여 있지 않다. 50번째 생일이라는 뜻에서 ‘50’이라는 숫자가 적혀 있다. 그러니까 기념용 또는 선물용으로 제작해 일부에게만 증정하는 기념 라벨 같은 것이다. 이런 라벨은 우표수집 세계에서는 가치를 한 단계 아래로 친다. 하지만 오바마에게 정규 우표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다. 러시아(구 소련 포함)가 생일을 챙겨 우표를 발행해준 최초의 미국 대통령이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미·소 대결구도일 때, 혹은 냉전 종식 이후라 해도 러시아에서 미국 대통령 우표를 낸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오바마는 우표 선물을 받고 무척이나 기뻐했다고 미국 언론은 전했다. 오바마는 선물로 받은 편지봉투 몇 장에 소인을 찍고 서명을 한 다음 러시아 우정박물관으로 보냈다. 오바마 얼굴 우표에 오바마 서명이 담긴 봉투이니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역사적 우취자료다.

미국의 극우세력은 이 일을 두고 “오바마의 친(親) 공산주의 성향이 드러난 것”이라며 비난을 퍼붓기도 했다. 하지만 오바마는 이 일이 있기 며칠 전 러시아 기자들 앞에서 “50년 전 미국과 러시아가 협력파트너가 될 것이라고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며 “냉전은 끝났고, 이제 인터넷과 매스미디어가 전 지구인을 가깝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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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의 생일을 맞아 미 우정당국은 우표를 냈을까. 국가지도자의 생일 우표를 내는 나라는 정치 후진국이다. 과거 한국이 그랬고, 지금의 북한이 그렇다. 미국에는 대통령은 물론 살아있는 사람 모두에 대해 우표를 발행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다. 대통령은 사후 1년, 그 외 인물은 사후 5년이 돼야 우표에 실릴 수 있다. 현직 오바마든 전직인 부시든 살아있을 때 자기 얼굴이 들어간 자국 우표는 구경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국내 신용평가회사로부터 한 방 맞고 비틀거리는 오바마에게 외국에서 날아온 우표 한 장이 적지않은 위안이 될지도 모르겠다.

<이종탁 출판국장 jtl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