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미국 재정위기, 한·미 FTA 가속페달?

오바마 의회에 빠른 비준 요구… 국내 금융분야 대비책 마련해야

미국은 향후 통상정책의 초점을 수출 증대와 일자리 창출에 맞췄다. 미국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비롯한 FTA를 재정위기를 빠져나갈 탈출구로 보고 비준안 처리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 8월 2일 미국 하원에 이어 상원에서 연방정부 부채 한도 증액안이 통과됐다. 법안 통과 시한인 8월 2일을 앞두고 미국의 국가부도(디폴트) 위기가 불거지고 신용등급 강등이 가시화되면서 미국 뉴욕 증시를 포함한 전 세계 증시는 폭락했다.

8월 5일 한나라당 황우여 원내대표는 미국이 한·미 FTA 이행법안을 9월 중 처리하기로 한 데 대해 “우리도 보다 박차를 가해 양국이 서로 어깨를 겨루듯 비슷한 시기에 처리됨으로써 국민 기대에 부응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 연합뉴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상원의 결정을 환영하며 한·미 FTA의 빠른 비준을 의회에 요구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앞으로 몇 달 동안은 미국민이 가장 염려하는 새로운 일자리와 임금인상, 빠른 경제성장을 위해 싸울 것”이라며 “의회는 우리가 이미 합의한 일련의 무역협정, FTA들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무역협정들이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고 아시아와 남미 국가들에서 더 많은 미국 상품들을 팔 수 있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채 한도 증액안 통과로 미 연방정부는 부채 한도를 최소 2조1000억 달러 늘릴 수 있게 됐다. 대신 앞으로 10년 동안 2조4000억 달러의 재정지출을 삭감하기로 했다. 이는 미국 정부가 당분간 나라빚을 갚느라 돈을 쓸 수 없어 경기를 부양할 여력이 없음을 뜻한다.

재정지출 삭감으로 내수경기를 살릴 수 없고 미국의 주력산업이던 금융서비스업도 위기에 처했다. 미국으로서는 제조업을 중심으로 한 수출에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8월 12일 오바마 대통령이 “‘메이드 인 아메리카’ 도장이 찍힌 수많은 물건이 세계 시장에서 팔리기를 원한다”고 말한 것은 이와 같은 배경에서다. 그러나 다자간 무역협상인 도하개발어젠다(DDA)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은 별다른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미 행정부와 의회가 다자협상보다 행정절차가 신속한 양자협상인 FTA를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이유다.

미국 행보에 정부·여당도 처리 서둘러
오바마 대통령의 기자회견이 있던 바로 다음날인 8월 3일 미국 상원의 양당 지도부는 한국 등 3개국과의 FTA 이행법안(비준안)을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그 결과 한·미 FTA 비준안은 9월 내에 미국 국회를 통과할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 정부와 한나라당도 미국의 행보에 맞춰 FTA의 추진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한나라당 황우여 원내대표는 8월 5일 한나라당 주요당직자회의에서 “미국의 한·미 FTA 9월 중 처리 보도를 접하고 반가움과 동시에 우리 입장도 조속히 결정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우리도 보다 박차를 가해 양국이 서로 어깨를 겨루듯 비슷한 시기에 처리해 국민 기대에 부응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미국의 비준안에 맞춰 우리도 8월 내에 한·미 FTA 재협상안이 국회 상임위인 외교통상통일위원회를 통과해야 한다는 게 한나라당의 입장이다.

이시형 외교통상부 통상교섭조정관도 8월 10일 정례 브리핑에서 미국 금융위기가 한·미 FTA에 끼치는 영향을 언급했다. 그는 “국제 금융시장이나 국내 상황이 앞으로 대외 무역환경이나 우리가 추진하고 있는 FTA 등 몇 가지 중요 정책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지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서 “세계 경제가 어려울수록 보호주의에 대한 경계, 일자리 창출 등의 문제가 화두가 된다”며 “오히려 우리가 추진하고 있는 주요 통상정책에는 더 자극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미국의 재정위기가 한·미 FTA 촉진제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민주당은 비준안 조기 처리에 반대
반면 민주당은 미국의 재정위기가 한·미 FTA 비준안 통과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오히려 이번 미국의 재정위기가 한·미 FTA를 늦출 계기가 될 수는 있어도 서두를 계기는 될 수 없다고 본다. 민주당 관계자는 “미국이 앞으로 긴축재정을 하게 되면 미국내 소비가 줄어들기 때문에 한국 측이 FTA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은 작다”며 “한국이 서두를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국회의 9월 비준안 처리에 맞춰 우리도 비슷한 시기에 처리해야 한다는 여당의 주장에 대해서 “언제까지 처리하겠다는 미국 측의 발언은 예전부터 있어 왔고 외교적인 수사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2월부터 미국이 처리 시점을 언급하면 곧이어 정부·여당이 미국과 속도를 맞춰야 한다고 말해왔다”며 “국회에서 외통위가 열리기 전에 정부는 항상 속도전을 이야기한다”고 말했다.

미국 재정위기를 계기로 한·미 FTA를 비판적으로 재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유종일 교수는 “미국은 더 이상 세계의 초강대국이 아니고 미국 달러는 더 이상 세계 최고의 안전자산이 아니다”라며 “미국식 제도를 금과옥조처럼 여겨온 우리나라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거대 변화의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대처하는 것이 절체절명의 과제”라고 말했다. 그는 이와 관련, “정책 주권을 포기하면서 한·미 FTA에 매달리는 것이야말로 최악의 선택이 될 것”이라며, 이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불러온 미국 시스템에 우리 금융시스템을 거의 그대로 노출시키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FTA를 체결하기에 앞서 이번 미국발 재정위기로 한국 증시가 폭락한 점에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유럽 재정위기와 미국 신용등급 강등 염려가 본격화된 8월 2일부터 9일까지 코스피지수는 무려 17.8% 급락했다. 위기의 진앙지였던 미국(-13.01%), 독일(-14.82%), 영국(-12.20%)보다 더 많이 떨어졌다. 외국인들의 매도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에 외국인들이 우리나라 시장을 투자 대상이 아닌 투기 대상으로만 바라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한·미 FTA에는 금융산업도 포함되어 있으므로 이에 대한 대비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삼성경제연구소 곽수종 수석연구원은 “한·미 FTA를 비롯한 FTA는 시장경쟁체제를 완전경제에 가깝게 만들고 소비자 효용을 극대화한다는 점에서 체결되어야 한다”면서도 “그러나 한·미 FTA 체결보다 더 급한 문제는 이에 대한 보완책 마련”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미국발 위기로 우리 증시가 폭락한 것을 예로 들며 “지금도 국내에 진출한 외국 유명 금융회사들이 국내 주식시장과 환율시장을 좌지우지한다”며 “한·미 FTA를 체결하기 전에 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금융분야에 대한 보완조치가 잘 준비되어 있는지, 투자자보호협정이나 투자자제소권 등이 불리하게 작용하지 않을지 꼼꼼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소비자 효용을 높이고 국가의 부를 늘리기 위해 체결하는 FTA인데 외국 금융자본에 의해 국가의 자본이 손쉽게 빠져나가게 된다면 하나마나 한 FTA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