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한국 경제 대외의존도 낮추자

세계 위기 때마다 휘청… 국내증시 외국자본 썰물

‘현금자동인출기(ATM) 코리아.’ 국제 금융시장이 출렁거릴 때마다 외국인들이 국내 금융시장에서 자금을 빼내가는 바람에 만들어진 조어다.

글로벌 증시의 폭락이 계속된 8월 9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금융위원회에서 열린 ‘금융위원위 자본시장 CEO 간담회’에서 김석동 금융위원장과 증권사·자산운용사 대표들이 금융위기 극복 방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 연합뉴스

미국, 유럽의 재정위기로 시작된 세계 금융시장의 패닉은 한국 경제를 피해가지 않았다. 외국계 자본은 한국 금융시장에서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또 세계경제의 장기 저성장이 예상된다는 목소리들이 이어지면서 실물경제도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외국자본 국내 실물경제 기여 없어
외국인은 지난 8월 12일, 9일 연속으로 주식을 팔아치웠다. 특히 매도의 세기가 3년 전 리먼사태에 근접한 데다 유럽 자금이 많이 빠져나갔다. 유가증권시장에서 외국인은 이날 오전 11시 현재 3805억원의 순매도를 기록했다. 외국인의 매도 규모는 코스피가 급락하기 시작한 지난 2일부터 이날까지 모두 5조원을 넘어섰다.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는 하루 전인 11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유럽계 자금 등이 상당히 빠져나간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모건스탠리, 노무라증권 등은 최근 한국이 유럽 재정위기 등에 가장 취약하다는 보고서를 내놓기도 했다.

경제 전문가인 박경철 안동 신세계연합병원 원장은 KBS2라디오 ‘박경철의 경제포커스’에서 한국 주식시장 변동성의 원인을 4가지로 제시했다. 우선 외국인의 자본유출입이 자유롭고, 신흥시장에서 규모가 큰 편에 속하지만 선진국이 아니라 신흥시장으로 분류돼 글로벌 리스크가 발생하면 신속하게 돈이 빠진다. 두 번째는 자본이득세 등이 없어 외국인이 단기 차익을 회수하기 쉽다. 세 번째는 국내 연기금 등 정책자금이 주가하락 시 부양 목적으로 투입돼 외국인이 집중 매도가 가능한 수급구조다. 마지막으로 자문형 랩 열풍, 특정 펀드 쏠림현상 등 고수익을 바라는 투자자들의 쏠림현상이 지나치고, 환율 변동에 정부가 개입하기 때문에 환차익 실현에 문제가 없다.

조복현 한밭대 교수는 “어느 정도가 적절하다고 딱 잘라 말하긴 어렵지만 한국 주식시장에 외국 자본이 지나치게 많은 건 사실”이라며 “외국 자본이 들어와 고용이 늘어나는 등 국내 실물경제를 활성화시키면 좋은데, 실물에는 영향이 거의 없고 자본시장에서 주가만 올리는 양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본이득세 등이 도입되면 외국 자본이 쉽게 들어오고 빠지는 것에 대해 과속방지턱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뒤늦게 외국인의 ‘셀 코리아’로 인해 증시가 롤러코스터를 타는 부작용을 막기 위해 장기투자펀드에 세제 혜택을 주는 방법 등을 검토하고 있다.

주식시장에 비해 외환시장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편이라는 게 정부와 한국은행의 입장이다. 2008년 리먼 도산 당시와 비교해볼 때 한국의 외채구조가 크게 개선됐고 외화 유동성도 양호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외채는 3819억 달러로 2008년 위기 당시 3651억 달러보다 다소 증가했지만, 지불능력이 충분한 정부 부문 외채가 증가했다. 또 총외채 대비 단기외채 비중은 리먼 사태 당시 51.9%에서 3월 말 38.4% 수준으로 감소했다. 또 위기시 외화 유동성을 공급하는 외환보유액 규모는 충분한 수준으로 현재 세계 7위 수준이다.

금융연구원 박해식 선임연구원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비교해 외환보유액이 늘어나는 등 외부 충격에 대비할 수 있는 여력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미국, 유럽의 재정위기는 단기간에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정부, 금융회사들이 단기 외채를 지속적으로 줄이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수출위주서 내수중심으로 체질 바꿔야
최종구 기획재정부 국제업무관리관(차관보)도 지난 8월 11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우리나라에서 대규모 자금이 일시적으로 유출입할 리스크는 여전하다”며 거시건전성 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우리 경제에 가장 큰 리스크가 2008년 경험에서 볼 때 단기 외채가 많다는 것과 많은 양의 자금 유출입이 빠르게 진행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 경제의 위기상황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쉽게 판단할 순 없지만 단기간에 풀릴 문제는 아니라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때문에 국내 실물경제도 위기로부터 자유롭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경우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미국 경제가 1% 하락하면 한국 경제는 성장률이 약 0.44% 떨어진다.

LG경제연구원 윤상하 선임연구원은 “세계 경제의 수요 자체가 줄어들면 한국 기업들이 좋은 실적을 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찌할 도리가 없다”며 “선진국 수요가 회복되길 희망해보지만 이번 경기침체 국면으로 인해 수출 타격은 불가피해 보이고, 이에 대비를 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실제로 수출기업들의 움직임이 분주해졌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지난 8월 11일 전자 관계사 사장단을 긴급 소집했다. 미국의 신용등급 하락과 유럽의 재정위기로 촉발된 금융시장 혼란에 따른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서다. 삼성전자의 주력 수출품인 반도체 가격은 사상 최저치였던 지난달보다 18.7% 더 떨어지며 급락세를 보이고 있다.

정준양 포스코 회장도 하루 뒤인 12일 사내 방송을 통해 “최악의 경우를 상정해 대응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의 사태는 미국의 재정위기뿐 아니라 유럽의 재정위기, 중국의 물가불안, 일본의 지진 및 쓰나미의 영향 등이 복합적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진단했다.

해외 위험요인에 대한 발빠른 대응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론 내수 중심으로 산업구조를 바꿔 대외 의존도를 낮추는 게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향후 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매번 휘청거리며 방어하기에 급급할 순 없기 때문이다.

조복현 교수는 “수출 주도형에서 내수 중심으로 체질을 바꿔 국내의 소비와 투자가 경제성장을 이끌어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외환위기 이후 수출 중심의 대기업은 급성장했지만 내수를 담당하는 중소기업은 약화되면서 기업 부문의 양극화가 심해졌다”고 말했다. 정태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은 “실물경제의 대외의존도를 줄이기 위해서는 내수 진작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선 노동자들의 임금을 올리고 중소기업을 살리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지환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baldkim@kha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