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그라운드.넷]성진국의 위엄?

언제부터인가 한·중·일을 부르는 별명이 온라인엔 따로 있다. 각각 반도·대륙·열도다. 대륙 시리즈는 이 코너에서 짚어본 적이 있다. ‘열도’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일본의 별명은 또 하나 있다. 바로 성진국이다. ‘선진국’을 비튼 말이다. “다른 나라라면 생각도 못해봤을 기막힌 성과 관련된 실험이 벌어지는 나라” 정도로 풀이할 수 있다. 그러니까 성진국의 ‘성’은 ‘성(性)’이 되겠다.

인터넷에 ‘성진국의 위엄’ 등의 이름으로 퍼진 사진. 일본 AV를 캡처한 것처럼 주장되고 있지만 실제로는 키예프 출신 예술가의 사진연작 중 하나다.

지난 6월 중순, 인터넷에는 ‘성진국의 위엄.jpg’ 등의 제목을 붙인 이미지 파일이 회자되었다. 이에 대한 누리꾼 반응. “진짜 일본사람들에겐 답이 없다. 아직도 정신을 못차렸구나.”(누리꾼 eternal000) 도대체 어떤 사진이기에? 사진의 배경은 지금은 멈춘 체르노빌 핵발전소와 놀이공원이다. 배경은 진짜다. 구 소련, 지금은 우크라이나에 자리잡은 체르노빌 핵발전소 주변 풍경이다. 문제는 주인공들의 행위다. 방진복을 입고 있어 성별은 확인할 수 없지만, 사진의 주인공들은 영락없이 섹스 체위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 사진은 새로운 소재를 찾던 일본 AV업계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핵발전 문제에 대한 일본사람들의 높은 관심에 힘입어 체르노빌 현지 로케로 찍은 성인비디오물의 스틸이라는 것이다. ‘성진국의 위엄’이라는 이름 이외에도 ‘열도의 최신 AV’, ‘체르노빌 AV’란 이름으로 이 사진은 급속도로 퍼지고 있는 중이다. 일부 게시물에는 배경음으로 일본 AV 제작회사 SOD(소프트 온 디맨드)의 인트로 음악을 덧붙여놓고 있다. 과거 이 코너에서 다룬 소녀시대 포르노 패러디물인 ‘미각전설’(주간경향 910호, 언더그라운드.넷 참조) 같은 작품도 만든 회사이니 실제 있음직도 하다. 그런데 정말 ‘체르노빌 AV’가 제작되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답은 “노(No)”다. 이 사진은 후쿠시마 원전사건이 나기 전부터 때때로 인터넷에 돌던 이미지다. 게다가 일본사람이 간여한 작품도 아니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어렵지 않게 이 사진을 찍은 이를 확인할 수 있다. 키예프 출신으로 독일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올해 45세의 예술가 일야 치칸(Ilya Chickan)이다. 예술 관련 사이트에 게재된 바이오그래피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뉴웨이브’라는 예술사조를 처음으로 만들어낸 인물이다. 현재 인터넷에 유포되어 있는 ‘체르노빌 AV’ 사진은 지난 2002년 ‘원자적 사랑(Atomic Love)’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한 사진연작 중 일부다.

사진뿐 아니라 같은 이름의 비디오 작품도 있는 모양이다. 조금 더 검색하면 방진복을 입고 있는 남녀가 누군지도 알 수 있다. 남자 역할은 치칸 본인이고, 파트너는 피오트르 위지코프스키(Piotr Wyrzykowski)라는 여성이다. 그나저나 치칸이 찍은 저 작품의 주제는 무엇일까. 해석은 각자 맘대로다. ‘체르노빌 데이트’라는 이름으로 이 사진 시리즈를 소개한 한 웹사이트의 해석은 이렇다: “사진은 체르노빌 지역에서 남성과 여성의 가혹한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만약 한 소녀가 체르노빌 공원에서 소년과 데이트하기 위해선 방진복을 입어야 한다. 하지만 방진복은 그들 사이의 ‘열정’에 큰 장벽이 되진 않는다.”

언더그라운드.넷

막상 번역해보니 별다르게 특별한 작품해석은 아니다. 어쨌든 ‘체르노빌 AV’는 ‘성진국’의 생산품이 아니라는 것이 오늘의 결론이 되겠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