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이야기]“체신청? 이젠 우정청이에요”

‘체신청이 뭐하는 데예요?’
꼭 1년 전 이 지면(주간경향 878호)에 나온 기사 제목이다. 결혼을 앞둔 여성이 시골의 친척 어른에게 인사하러 가 신랑될 사람의 직장을 얘기했을 때 그 어른이 “체신청이 무엇하는 곳이냐”고 반응했다는 이야기에서 뽑은 제목이다. 체신청이 우리 국민의 귀에 익숙하지 않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에피소드다.

서울체신청에서 이름을 바꾼 서울지방우정청.

이 예화가 아니어도 체신청이란 명칭이 지금 시대에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은 끊임없이 있어 왔다. 옛날 체신부 시절 쓰던 지방조직의 명칭을 체신부가 정보통신부로 바뀌고, 이어 지식경제부 소속 우정사업본부로 기능이 이전된 뒤에도 그대로 사용해 왔기 때문이다.

이번달부터 이 문제가 해소됐다. 체신청이 지방우정청으로 이름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서울체신청은 서울지방우정청, 부산체신청은 부산지방우정청 하는 식으로 전국 9곳의 체신청이 모두 ○○지방우정청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혼사를 앞둔 우정청 직원이 배우자 집안 사람으로부터 “거기가 뭐하는 데냐”는 난감한 질문은 더 이상 받지 않아도 되게 된 것이다.

체신(遞信)이란 단어가 이 땅에 처음 등장한 것은 1895년 4월이다. 구한국 정부가 갑신정변으로 폐지한 근대우정을 10년 만에 재개하면서 농상공부 통신국 아래 ‘체신과’를 둔 것이다. 기록은 없지만 이 명칭은 일본에서 들어왔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일본이 1885년 내각제도를 새로이 발족하면서 농상무성(農商務省)과 공부성(工部省)에서 맡던 우편과 전신 등의 업무를 떼어내 체신성을 신설했기 때문이다. 이때 체신이란 말은 역체(驛遞·과거 역참에서 공문을 주고 받던 일)와 전신(電信)에서 한 글자씩 따 지었다고 일본 백과사전에 소개돼 있다.

말하자면 체신은 우리의 독창적 우정 용어가 아니다. 한자로 써놓으면 읽기도 어렵고, 보통 사람은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도 어렵다. 이렇게 국민 생활과 거리가 있는 단어이니 역사 속으로 보내는 데 큰 아쉬움은 없다. 체신청을 지방우정청으로 바꾼 것은 개명 초기 다소 혼란이 있다 하더라도 긴 안목에서 잘한 선택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1959년 출범해 50년 이상 체신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는 체신노조(집배원 노조)도 우정청으로의 개명에 동의한 바 있다.

문제는 이 개명으로 우정행정의 조직체계가 완전히 정리되지는 않는다는 데 있다. 지방우정청의 상급기관은 우정사업본부이고, 그 위에는 지경부가 있다. 지경부-우정사업본부-지방우정청-우체국으로 이어지는 구조로 돼 있다. 그러니까 부처 밑에 사업본부, 그 밑에 청(廳), 그 밑에 국(局)이 있는 것이다.

대개 청이란 본청이 있고, 그 아래 지방청이 있다. 또 청 밑에 본부가 있다. 국세청 밑에 서울지방국세청, 병무청 밑에 부산지방병무청이 있고, 산림청 소속기관 중에 산림항공본부가 있는 식이다. 그런데 우정은 본청이 없고 지방청만 있는 데다, 그것도 본부와 청이 다른 곳과는 달리 거꾸로 있다. 본부장 밑에 청장이 있는 어색하고 혼란스러운 조직체계는 체신청에서 우정청이 된다고 해서 달라질 게 없는 것이다.

이런 체계는 우정사업본부를 우정청으로 승격시키면 말끔하게 해결된다. 그러나 이는 정부 조직 팽창이라는 비판을 받을 소지가 있다.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는 현 정부의 국정운영 방침에 부담을 주는 것이다. 이 때문에 국회에서도 몇 차례 제기되었지만 이런 저런 반대에 부딪혀 번번이 무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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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선진당 류근찬 의원이 2008년 11월 우정청 승격에 관한 법안을 발의했으나 제대로 논의 한 번 해보지도 못하고 폐기처분됐다. 지난해 10월에는 민주당 조경태 의원이 국회 질의를 통해 “비정규직을 포함한 직원이 4만4000여명, 연간 예산이 6조원에 이르는 거대한 조직을 사업본부로 두는 것은 옳지 않다”며 우정청 승격을 주장했으나 당시 최경환 지경부 장관은 “현 체제에서 자율성과 책임경영을 강화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반대의견을 나타냈다. 그 뒤 지경부 장관이 바뀌었지만 그런 기조가 변할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지방우정청은 큰 어려움 없이 세상에 나왔는데, 우정청이 탄생하려면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까.

<이종탁 출판국장 jtl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