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사회 중계석]‘전략적 봉쇄소송’을 금지하자

‘전략적 봉쇄소송(SLAPP)’이라고 들어보셨나요?
한 유통 대기업이 자사의 SSM 입점을 막는 중소상인들의 생존권 활동을 ‘업무방해’로 고소하고, 거액의 민사소송까지 제기한 일을 기억하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고소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이른바 전략적 봉쇄소송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지난 2009년 5월,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중소상인 네트워크 발족식에 참여한 한 상인이 SSM 규제 등의 요구가 든 상자를 머리에 쓴 채 서 있다. |강윤중 기자

“우리 입장에선 최소한의 방어행위를 한 겁니다. 경찰 조사를 받고 나면 아무래도 위축되는 게 사실 아닙니까.” 상인 정구화씨(45)는 지난 5월 30일 “먹고살려고 한 일을 업무방해로 몰아붙이니 황당하고 착잡할 뿐”이라고 말했다. 유통 대기업 측은 지난 3월 31일 서울 상계동의 매장 개점을 막으러 나선 지역 상인과 주민 등 10여명에 대해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박주민 변호사는 “유통 대기업들의 고소 남발은 실제 피해를 보전하기 위해서라기보다 중소상인과 지역 단체들의 비판활동을 위축시키려는 ‘전략적 봉쇄소송’에 해당한다”며 “시민의 정당한 문제제기와 표현의 자유를 가로막는 이 같은 행위는 자유민주주의 질서에 반하는 것으로 자제돼야 한다”고 말했다.(경향신문 5월 31일 보도 요약)

이처럼 최근 시민사회를 괴롭히고 있는 ‘전략적 봉쇄소송’이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권력이나 자본이 비판적 목소리를 차단·억제·위축시키기 위해 소송에서 질 것을 알면서도(소송에서 이기면 더욱 문제겠죠) 전략적으로 민사소송, 형사고소 등을 제기·남발하는 것이 바로 ‘전략적 봉쇄소송’(SLAPP·Strategic Lawsuit Against Public Participation)입니다. 즉 “공공영역에 대한 비판적 참여를 봉쇄하기 위한 전략적 소송행위”라는 뜻입니다.

최근의 전략적 봉쇄소송의 대표적인 사례들로는 네티즌 ‘미네르바’에 대한 검찰의 구속기소 사건, 박원순 변호사에 대한 국정원의 명예훼손 민사소송 사건, ‘피디수첩’에 대한 전직 고위 관료들의 명예훼손 고소사건, 중소상인들에 대한 모 유통회사의 무더기 민·형사소송 제기사건 등을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일반 국민, 언론, 지식인, 중소상인 등을 상대로 무차별적으로 제기된 이 소송들의 효과는 승소 여부와 상관없이 실로 지대한 것이었습니다. 권력과 자본의 전략적 봉쇄소송 행위를 지켜본 대부분의 이들은 권력과 자본에 대한 비판과 표현행위에 대해 심각한 위축감을 느끼게 됐고, 이것은 실제 행동의 위축으로 이어졌습니다. 전략적 봉쇄소송이라는 것이 권력과 자본집단이 비판자, 저항자들에 대해 입막음을 시도하는 정말 좋은 방편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도 권력과 자본의 전략적 봉쇄소송은 곳곳에서 남발되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위에서도 언급된 모 유통회사의 중소상인들에 대한 무더기 고소사건일 것입니다. 이 유통회사는 지난해에도 인천, 서울 등에서 중소상인들과 지역 주민들을 상대로 3억3000만원을 물어내라며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등 민·형사소송을 남발해 큰 물의를 일으켰지만, 이를 반성하기는커녕 지금도 고소를 남발하고 있습니다. 평생 처음으로 고소를 당하는 것, 그것도 힘센 대기업으로부터 고소를 당하는 것이 어떤 고통과 부담이 될지는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시민사회 중계석

이렇게 시민사회에서 전략적 봉쇄소송이 문제가 되자 지식인들도 대응에 나서고 있습니다. 1968년 ‘국경 없는 의사회’, 1985년 ‘국경 없는 기자회’를 탄생시킨 프랑스 파리에서 최근에는 ‘국경 없는 학자회’라는 비정부기구(NGO)가 출범한 것입니다. 이들은 특히 비판적 목소리를 차단하기 위한 전략적 봉쇄소송에 적극 맞서기로 결의했다고 합니다. 전략적 봉쇄소송이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모두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죠. 이에 따라 우리나라에서도 미국처럼 ‘전략적 봉쇄소송 금지법안’을 추진하자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전략적 봉쇄소송 금지법안은 기업, 정부, 공직자 등이 공공의 참여 또는 공론을 봉쇄할 목적으로 공적 관심사나 쟁점에 대해 언론기관이나 개인, 조직단체를 상대로 제기하는 소송을 금지토록 한 법안입니다. 고려대 로스쿨의 박경신 교수가 앞장서서 공론을 만들고 있는데요. 앞으로 활발한 논의가 진행되기를 기대해봅니다.

안진걸 <참여연대 사회경제팀장/성공회대 NGO 담당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