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애의 북위66.5도](19)온난화로 신음하는 에스키모의 땅

좌충우돌 해외방랑기 ‘알래스카 시스마레프’

비행기는 마침내 시스마레프에 도착했다. 중학교 공작 시간에 만들던 고무동력기처럼 프로펠러가 달린 조그마한 비행기였다. 진짜 작았다. 승객 3명에 조종사 1명.

기후변화로 이주 위기에 처한 알래스카 시스마레프 마을 외곽에서 카리부(순록) 가죽이 말라가고 있다.

공항도… 작았다기보다는, 없었다. 창고에 조그맣게 ‘웰컴 투 시스마레프’라고 적혀 있지 않았더라면 잘못 내린 줄 알았을 것이다. ‘출발’도, ‘도착’도, ‘짐 찾는 곳’도 없었다. 활주로에 덩그러니 나를 세워두고, 조종사는 부지런히 비행기의 짐을 트럭에 옮겨 실었다. 친절한 조종사 겸 집배원 아저씨가 나까지 실어주지 않았더라면 바퀴 달린 가방을 자동차 삼아 마을까지 굴러가야 했을 것이다. 시스마레프는 알래스카 북동부 해안에 가느다랗게 붙어 있는 섬이었다. 이누피아트 에스키모 600여명과 약간의 백인이 산다. 당연히 버스도 택시도 없다. 마을 전체에 이 트럭을 포함해 자동차가 8대 있다.

온난화로 해안선 줄어들어 집단이주 결정
나는 인천에서 앵커리지로, 다시 그 이름도 건방진 알래스카 중부의 허브도시 놈으로, 다시 시스마레프로 왔다. ‘기후변화로 신음하는 에스키모 부족장과의 인터뷰’를 해야 하는 중차대한 과제를 지녔기 때문이었다. 시스마레프는 지구 온난화로 해안선이 줄어들어 주민들이 집단이주를 결정한 ‘북극의 투발루’였다. 마을사람들이 나를 따돌리기로 작정한 듯 수십 통의 이메일과 십여 통의 전화를 ‘씹고’, “비상응급센터가 유일한 숙소니 거기로 가세요. 하룻밤에 75 달러”라는 메일 한 통만 보냈지만 가야 했다. 알래스카의 인디언과 에스키모 마을을 먼저 다녀온 북극곰(여행 동행자)은 “장작을 사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앵커리지 월마트에서 랩에 둘둘 싼 장작을 팔긴 팔았다. 그러나 처녀 나무꾼도 아니고, 도저히 장작을 머리에 이고 비행기를 탈 자신이 없었다.

다행히 비상응급센터에는 전기가 들어왔다. 마을 공동 발전기로 난방도 하고, 텔레비전도 본다. 문제는 상수도와 하수도였다. 상·하수도가 얼마나 대단한 근대문명의 산물인지를 시스마레프 체류 사흘 동안 나는 새롭게 깨달았다. 상·하수도가 없으니 마실 물이 없고, 화장실도 못 간다. 싱크대 앞에는 큰 물통과 작은 물통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빗물을 받고, 눈을 녹여 만든 물이었다. 큰 물통은 세척용, 작은 물통은 식수다. 싱크대에는 “설거지한 물은 절대 싱크대에 붓지 마세요. 창문을 열고 부으세요”라는 쪽지가 붙어 있었다.

물을 버릴 때마다 사람이 지나가는지 확인해야 한다. 라면을 주먹으로 부수고, 끓는 물을 부어 컵라면으로 만들었다. 군대 갔다 온 남동생이 알려준 ‘뽀글이’ 제조법을 이렇게 유용하게 쓸 줄이야. 햇반에는 콧기름을 바르고 최면을 걸었다. 넌 이미 다 만들어진 밥이야! 노트북을 뒤져 가장 웃기는 시트콤을 한 편 찾아 켠 뒤 ‘밥상’을 들고 앉았다. 놈에서 만난 착한 한국인 아줌마가 신라면 5봉지를 주지 않았더라면 쫄쫄 굶고 지낼 판이었다.

다음날 낮에는 시스마레프 네이티브 스토어에 장화를 사러 갔다. 녹다 얼다 다시 녹은 영구동토층은 발이 푹푹 빠져 마트표 짝퉁 고어텍스 등산화로는 감당이 안 됐다. 원주민 연합에서 운영하는 네이티브 스토어는 의외로 큼직한 현대적 마트였다. 옷도 팔고, 잡지도 팔고, 콜라와 심지어 한국 컵라면도 팔았다. 한 개에 1.75 달러. 에스키모들이 물범 사냥을 갈 때 들고 간단다. 새 장화를 신고 동네를 어슬렁거리는데, 금발의 백인 소녀가 골목에서 놀다 말고 수줍게 배시시 웃었다. 내 평생 그렇게 더러운 백인 소녀는 처음 봤다. 옷은 때로 꼬질꼬질했고, 신발은 한쪽만 신겨져 있었으며, 얼굴엔 콧물이 서너 방울 달려 있었다. 피부색만 아니었다면 필리핀이나 캄보디아의 빈민촌 아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시스마레프 마을에서 한 어린이가 영구동토층이 녹아 만들어진 웅덩이에서 놀고 있다.

컨테이너 박스에 지붕을 씌운 것처럼 보이는 집들도 낡은 흔적이 역력했다. 지붕엔 순록의 뿔이 수십개씩 던져져 있었다. 얼마나 큰 복을 주는지는 모르겠으나, 대범하게도 동물의 갈비뼈 한 짝을 통째로 지붕에 던져 놓은 집도 보였다. 시스마레프 에스키모들은 물범과 순록의 살점과 가죽을 빨래처럼 말린다. 이들의 주식은 물범. 에스키모는 ‘날고기를 먹는 사람’이란 뜻이지만, 시스마레프 에스키모들은 물범을 얇게 잘라 끓는 물에 살짝 데쳐 ‘샤브샤브’처럼 익혀 먹는다. 놈의 서점에는 시스마레프 학교에서 제작한 ‘에스키모 요리법’ 책도 팔았다.

집 짓기도 상·하수도 설치도 ‘쓸데없는 일’
눈이 녹기 시작한 해안은 지난 겨울 집어삼킨 물건들을 꾸역꾸역 토해내고 있었다. 양동이와 철근에 동물뼈가 냉장고 박스(!)와 함께 뒹굴었다. 압권은 뚜껑만 남은 변기였다. 2003년 11월 폭풍으로 하룻밤 새 해안가 2m가 뜯겨 나간 자리였다. 집 두 채가 무너졌고, 8채가 ‘내륙’으로 이주했다. 시스마레프의 해안선은 지난 30년간 20m 가까이 줄어들었다. 바다가 예전처럼 꽁꽁 얼어붙지 않고, 영구동토층은 녹아서 흐물거리며, 폭풍은 더욱 거세졌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입술을 깨물고 조상 대대로 살아온 땅을 버리기로 했다. 그러나 1억 달러가 넘는 이주비용은 하늘에서도, 순록과 물범을 팔아서도, 지구 온난화를 걱정하는 세계인의 주머니에서도 나오지 않았다. 어차피 이주하기로 한 이상 집을 새로 짓거나 길을 닦거나, 쓰레기장을 만들고 상·하수도를 설치하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 됐다. 주민들은 지쳐 갔고, 공동체는 금이 갔다. 그날 저녁엔 주민 한 명이 “해안가의 무너진 집 사진을 200 달러에 팔겠다”며 숙소로 나를 찾아왔다. 물범 뼈나 가죽으로 만든 열쇠고리를 팔겠다며 소년들도 끊임없이 문을 두드렸다.

시스마레프가 언제나 이렇게 안타까웠던 것은 아니었다. 일본인 사진작가 호시노 미치오의 <바람 같은 이야기>에는 시스마레프의 ‘단란했던 한때’가 나온다. 열여덟 소년 미치오는 도쿄의 한 헌책방에서 본 시스마레프의 사진에 끌려 “초대해 달라”고 무작정 시스마레프로 편지를 보낸다. 그가 여름을 보낸 1971년만 하더라도 시스마레프는 기풍 있는 마을이었다. 얼음이 풀리는 6월이면 남자들은 바다로 나가 물범을 잡고, 순록을 사냥했다. 여자들은 새알을 줍고 블루베리며 블랙베리를 땄다. 해가 뜨지 않는 겨울에는 마을 체육관에 모여서 씨름을 했다. 팔씨름, 손가락 씨름을 하다 재미가 없으면 실뜨기 놀이를 했고, 가끔은 ‘대도시’인 놈에 가서 ‘에스키모 베이스볼’을 했다. 호시노 미치오와 몇 번의 계절을 함께 보낸 사람들은 아직도 시스마레프에 산다. 소년 미치오를 초대했던 당시 부족장 클리포드 웨이오우아나는 물범 사냥을 떠났고, 아버지의 뒤를 이어 부족장이 된 토니 웨이오우아나는 떠나는 날 아침에야 비로소 “인터뷰 하자”며 나타나 내 속을 썩였다.

최명애의 북위66.5도

공항에는 짐을 부치거나 받으러 온 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멀리서 비행기 소리가 들리는가 싶었는데, 마을 끝에서 4륜 오토바이 한 대가 전속력으로 달려왔다. 비상응급센터에서 함께 며칠을 빈둥거린 딘 코즈국이었다. 그는 품에서 황급히 천 뭉치를 꺼냈다. 팔이 긴 튜닉 스타일의 에스키모 여자 어린이 옷이었다. 에스키모들은 우리와 비슷해서 처음에는 무뚝뚝하지만 속정이 깊다더니. “엄마가 손녀 생기면 입히려고 만든 옷인데, 딸아이가 태어나면 입혀서 꼭 사진을 찍어서 보내줘. 주소가….” 비행기의 프로펠러 소리에 묻혀 그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나는 아직도 그 옷을 입힐 딸아이가 없다. 시스마레프가 사라져버리기 전 그에게 사진을 보내줘야 할 텐데 말이다.

<글·사진 최명애 경향신문 사회부 기자 glauk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