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세종연구소 해체’ 불순한 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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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민간단체 불구 정권비판 일부 진보학자 축출 속셈 의심

이명박 정부와 보수진영이 자기들의 코드에 맞지 않는다고 순수 민간연구기관인 세종연구소를 해산하고,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과 통합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세종연구소는 설립 이후 20여년 동안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재단 이사장과 연구소장이 낙하산 임명되는 등 정권의 바람을 탔지만 역대 어느 정권도 지금처럼 세종연구소를 해체하려는 움직임은 없었다. 현재 세종연구소에는 진보, 중도, 보수 등 다양한 성향의 연구원들이 활약하고 있다.

세종연구소 전경. | 권순철 기자

세종연구소 전경. | 권순철 기자

외교부 개입 전경련과 통합안 논의
세종연구소는 지난 1983년 버마 아웅산 테러 사건을 계기로 아웅산에서 희생된 유족에 대한 지원사업을 목적으로 설립된 비영리 공익법인인 세종재단(당시 일해재단) 산하의 연구소로 1985년 출범했다. 세종연구소는 출범 이래 외교·통일·안보분야에서 훌륭한 연구업적과 연구원들을 보유해 이 분야 국내 최고의 연구소로 자리매김했다. 세종연구소는 미국 외교정책연구소(FPRI)가 2008년 1월 발표한 ‘세계 최고 싱크탱크(연구집단)’에서 ‘아시아의 선두권 연구집단’으로 뽑히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2008년 취임한 공로명 세종재단 이사장은 재정적 어려움을 이유로 전경련 산하의 정책연구기관인 한경연과의 통합을 주도하고 있다. 지난 1981년 설립된 한경련은 전경련 회원사인 기업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기관으로 연구의 자율성에서 태생적 한계를 갖고 있다. 세종재단은 세종연구소를 해체하고 한경련과 통합해 사단법인형태의 (가칭) 한국세종연구원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세종연구소는 통합 연구원에 6만6000㎡(2만평, 시가 2000억원)의 부지와 현금자산 600억원을 기증하고, 한경련은 연구원 설립 직후 300억원의 기금을 출연하며, 매년 130억원을 지원한다는 초안이 마련됐었다.

이명박 정부와 보수진영은 왜 세종연구소를 눈엣가시처럼 느낄까. 세종연구소 통합작업은 재정난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세종연구소를 해산함으로써 일부 진보성향 연구원들을 축출하려는 것으로 세종연구소 안팎에서는 보고 있다. 세종연구소 내의 통일부 장관을 지낸 이종석 수석연구위원 등 일부가 그동안 대북정책 등에서 현 정부와 다른 목소리를 내왔다.

실제로 이같은 증거는 지난 7월 14일 통합논의와 관련한 세종재단 이사간담회 회의록을 보면 명백히 알 수 있다. 회의록에 따르면 공로명 이사장은 “세종의 설립 취지가 대한민국의 안보를 지키고 평화적인 한반도 통일에 있으나 그동안 내재적으로 친북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 세종에 있으면서부터 세종에 대한 이미지가 친북적이고 좌경화된 연구소로 인식되고 있다”며 “새로운 사단법인으로,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자”고 말했다.

또한 회의록에서는 연구원들에 대한 구조조정 계획도 확실히 밝혔다. 회의록에 따르면 ‘연구원의 중심인 박사들에 대한 기준은 일단 양측 기관이 해산시 구조조정을 마무리한 후 신설법인에 임용할 때는 계약기간을 최장 3년으로 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로 미뤄볼 때 세종재단은 진보성향의 연구원들에 대한 정리 의도를 기정사실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세종재단이 세종연구소 해체 후 통합이라는 방법을 동원한 것은 현행 연구소 시스템으로는 도저히 연구원들을 퇴직시킬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노진구 노조위원장의 전언이다.

공로명 세종재단 이사장이 10월 21일 국회 외통위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공로명 세종재단 이사장이 10월 21일 국회 외통위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현재 세종연구소 연구원들은 입사 때 2년 계약, 그 후 3년 재계약 과정을 거쳐 이후로는 10년 단위로 재계약을 해왔다. 특별한 결격사유가 없는 한 연구원들의 재계약은 이뤄져 왔으며, 연구원은 정직원으로서 정년(65세)을 보장 받아 왔다. 세종연구소에는 박사급 연구원 16명이 있다. 하지만 연구소가 해산되고, 통합연구원이 생기면 기존의 신분보장을 받을 수 없다.

공 이사장은 구조조정 반발에 대한 해결책과 관련해 “한경연의 경우 이같은 상황이 발생할 때면 계약기간에 상관없이 3년치의 급여 지급이 있는데, 이런 방법을 검토할 것”이라며 “법정 투쟁이라든지 하는 여러 가지 반발을 감안, 법인 해산 후 신설법인 설립 형태를 선택한 것”이라고 밝혔다. 공 이사장은 “세종연구소측 회원 100명은 주로 보수학자 및 인사들로 선임할 계획”이라며 “개인적으로는 이상우 이사(현재 국가안보총괄점검회의 의장)가 통합법인의 원장으로 적임자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현금 600억등 3000억대 자산 보유
세종연구소의 통합작업에 외교통상부가 적극 가교 역할을 하는 등 정부가 개입된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순수 민간연구소인 세종연구소와 외교부는 전혀 관계가 없다. 다만 세종연구소는 비영리 공익 법인으로 외교부에 등록돼 있다.

지난 2월 당시 유명환 외교부 장관, 조석래 전경련 회장, 공로명 세종재단 이사장이 만나 세종연구소의 재원 문제를 논의했다. 당시 외교부 이용준 차관보(현 말레이시아 대사)는 유 장관의 지시에 따라 이승철 전경련 전무와 만나 한경연과의 통합을 전제로 재정지원을 할 수 있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이용준 대사는 10월 15일 말레이시아대사관 국정감사에서 “유명환 장관이 저보고 전경련 전무를 만나서 저쪽(전경련) 생각이 도대체 무엇인지 좀 자세한 상황을 알아보라고 해서 만나게 됐다”고 말했다. 이 대사는 전경련과 세종재단 의견을 중간에서 중재해 통합 연구원의 초안을 마련할 수 있었다. 이에 대해 국회 외교통상통일위 김동철 의원(민주당)은 “세종재단이 재정적 어려움이 있다면 세종재단이 풀어야지 외교부 장관이나 차관보가 전경련 사람들을 만난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외교부뿐만 아니라 청와대가 세종연구소 통합에 개입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노진구 세종연구소 노조위원장은 “송대성 세종연구소장과 대화하는 과정에서 송 소장이 이번 통합에 청와대 쪽에서도 관심을 많이 갖고 있다는 말을 했다”며 “송 소장도 MB(이명박 대통령)가 세종연구소를 미국의 헤리티지재단 같은 연구소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전해 들었다는 얘기를 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송대성 소장은 일부 진보인사가 세종연구소 연구원으로 있는 것과 관련해 보수진영으로부터 많은 공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일부에서는 송 소장을 ‘가짜 보수’라며 사상 검증까지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 10월 21일 국회 외교통상통일위 국정감사에서 참고인으로 나온 이종석 수석연구위원은 “송대성 소장으로부터 ‘너무 압박이 심하다. (내가) 글 하나만 써도 화들짝 놀라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밝혔다.

한편 세종연구소의 재정문제와 관련, 공로명 이사장은 지난 2006년 삼일회계법인의 실사자료를 근거로 이대로 가면 기금이 잠식돼 2012년에 소진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노조측은 연구소가 현재 600여억원의 현금이 있으며, 6만6000㎡(2만평)의 부지(시가 2000억원), 골프연습장 등 3000억원의 자산이 있어, 재정난은 이겨낼 수 있다고 반박했다.

<권순철 기자 i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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