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철의 눈]재벌기업의 구시대적 윤리의식

이마트의 피자 판매 문제는 기업의 사업영역이라는 준론의 성격을 띠기 전에 지배구조의 문제점과 기업을 사유화하고 기업의 이익 기회를 대주주 일가가 가져가는 것에 대한 문제 제기가 먼저 있었어야 할 사안이었다.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인 트위터를 활발하게 이용하고 있는 기업인 중의 한 명인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이 트위터로 인해 곤경에 빠졌다.

정 부회장의 한 팔로어(이웃)가 던진 ‘신세계 이마트가 피자까지 판매하며 주변의 영세상인들을 힘들게 하는 것이 정당하냐’고 질문하자, 정 부회장이 ‘소비도 이념적으로 하느냐’는 답을 리트윗(타인의 글을 전송하는 것)하면서 ‘이념적 소비’라는 말이 순식간에 전파되었기 때문이다.

혹자는 이 부분을 두고 ‘재벌기업가’의 ‘탐욕적 본성’을 드러낸 장면이라고 비판했고, 혹자는 ‘소비자가 판단할 일’을 기업가에게 물어 괜한 궁지에 몰았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문제의 진짜 본질은 그것이 아니었다. 이 문제를 다루는 언론이나 네티즌들의 시각은 단순히 ‘이념적 소비’라는 용어와 ‘대기업의 상생’이라는 윤리적 담론의 영역에 머물렀을 뿐, 이 사건의 이면에 존재하는 규범적 성격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세계 이마트에서 판매하는 피자는 정 부회장의 해명대로 ‘조선호텔 베이커리’에서 판매한다. 즉 신세계는 매장만 빌려주고 임대수익을 가져가는 구조인데, 문제의 조선호텔 베이커리는 이름과는 달리 신세계의 관계사인 ‘조선호텔’의 계열사가 아니다.

만약 조선호텔 베이커리가 조선호텔의 자회사라면 신세계 입장에서는 자사의 이익 극대화를 위해 이마트에 조선호텔 베이커리가 독점적으로 입점하는 것이 일면 타당하지만, 조선호텔 베이커리가 정 부회장의 여동생인 정유경씨가 대주주로 있는 사실상의 개인회사에 해당하므로 여기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조선호텔은 베이커리 사업부를 분사하면서 정유경씨에게 상당수의 주식을 양도했고, 조선호텔 베이커리는 오너의 오빠가 대주주로 있는 이마트에 독점적으로 입점하면서 막대한 실적을 올리며 매출액이 조선호텔에 육박하는 규모로까지 성장했다. 국내 최대 유통체인인 이마트에 입점한 공이 큰 것이다.

그렇다면 조선호텔이 분사를 하지 않고, 관계사인 이마트에서 같은 방식의 영업을 계속했다면 조선호텔의 매출은 거의 두 배로 늘어났을 것이다. 즉 조선호텔 입장에서는 큰 이익을 낼 수 있는 사업을 대주주 일가에게 양도함으로써 직접 이익을 낼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한 셈이 되고, 정유경씨는 조선호텔의 기회이익을 편취한 결과가 되는 것이다. 이 경우 조선호텔의 주주 이익은 심각하게 저해된다.

이마트 역시 마찬가지다. 관계사인 조선호텔 베이커리 시절에 배타적인 입점을 허락하는 것은 기업의 논리상 정당화될 수 있지만, 조선호텔 베이커리가 개인회사일 경우 경쟁입찰을 거치지 않고 조선호텔 베이커리의 독점적 영업을 인정한 것은 이마트가 더 많은 이익을 낼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포기한 결과가 된다. 이 경우 이번에는 신세계의 주주들에게 배임이 되는 것이다.

즉, 이마트의 피자 판매 문제는 기업의 사업영역이라는 준론의 성격을 띠기 전에 이러한 지배구조의 문제점과 기업을 사유화하고 기업의 이익 기회를 대주주 일가가 가져가는 것에 대한 문제 제기가 먼저 있었어야 할 사안이었으며, 이 문제를 외면한 것은 법적 문제에는 눈을 감고 그 보다 더 상위개념인 윤리의 문제를 두고 논쟁을 벌인 셈이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최근 일부 재벌기업들이 잘못된 관행을 청산하지 않고, 여전히 차명계좌나 불법 변칙 증여 등의 구태를 보이고 있다. 이렇듯 재벌기업들의 윤리의식은 여전히 80년대의 그것에 머무른다면, 겉으로 아무리 상생을 외치고 트위터 등을 통해 소통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해도 아무도 그것을 진심으로 받아 들이지 않을 것이며, 그것은 우리나라 기업들의 미래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안동신세계연합병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