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탐색]파시즘은 영원히 추방된 것인가

장문석 지음·책세상·8500원

좌파를 ‘좌파’라고 부르고 우파를 ‘우파’라고 부르는 것은 모욕적인 언사가 아니다. 오히려 진지한 좌파를 우파라 부르고 신념에 가득 찬 우파를 좌파라 부르는 것이 당사자들에겐 모욕이다. 그러나 ‘파시스트’라는 호칭은 그들 모두에게 참기 힘든 욕설이다. ‘아우슈비츠’ 이후 파시스트라는 말은 금기어가 됐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반민주적 행태를 보이는 정치 세력에 대한 혐오의 감정을 파시스트라는 명명을 통해 표출하고 싶은 유혹에 시달린다. 그러나 파시즘은 정의하기에 까다로운 개념이다. 장문석 영남대 사학과 교수는 “학계에서도 n명의 파시즘 연구자가 있으면 n개의 파시즘 정의가 있을 지경”이라고 말한다. 어디까지가 파시즘이고 누구를 파시스트라고 부를 수 있나.

복잡하고 모호한 파시즘의 정체를 규명하기 위해 저자가 선택한 방법은 파시즘의 ‘원조’인 이탈리아 파시즘의 기원과 성격을 파헤치는 것이다. 이탈리아 파시즘은 이탈리아가 통일된 민족 국가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그 과정에서 드러난 성공과 실패가 모두 파시즘의 자양분이 됐다. 파시즘은 자유주의 세력이 정치적 헤게모니를 잡은 민족 국가의 성립을 바탕으로 삼고 있고, 자유주의 세력의 분열과 모순은 대중이 파시스트들의 선동에 넘어갈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다.

이탈리아 파시즘은 국가 구성 과정의 산물인 동시에 자본주의 발전이라는 또 다른 역사적 맥락의 산물이다. 이탈리아 파시스트들은 자본주의 발전 과정에서 드러난 상충하는 계급적 불만들을 모두 흡수하는 방식으로 세력을 불렸다. 필요에 따라 자본가와 손을 잡고 노동자에게도 손을 내밀었다. 특정 계급에 기반을 두지 않는 파시즘의 기회주의적 속성이다. 파시스트들은 총체적인 사회 변혁의 가능성을 전쟁에서 찾았다. 전쟁이 부패한 사회를 정화하는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파시즘의 허무주의적 속성이다.

파시즘은 필연적으로 전체주의적 속성을 지닌다. 파시스트들은 국가와 사회를 하나의 유기체로 본다. 그 정점에는 이탈리아에서 ‘두체’로 불린 지도자가 있다. 지도자는 민족의 고결한 특성을 한 몸에 지니고 있는 민족정신의 육화다. 이렇게 파시즘에서 정치는 하나의 신성한 제의 행위가 된다.

파시즘은 근대성과도 무관하지 않다. 관계의 성격은 논란거리다. 어떤 이들은 파시즘이 신화나 제의 등을 정치적으로 동원하려 한 ‘반근대적 기획’이었다고 하고, 또 다른 이들은 기계와 물질문명의 혁명적 가능성을 신봉한 파시즘의 근대적 속성에 주목한다. 저자는 파시즘의 반근대적 속성 또한 근대성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파시즘이 근대성 자체에 내장된 모순의 부정적 표출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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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파시즘 이후’다. 현실정치에서 파시즘은 완벽하게 패배했다. 파시즘은 영원히 추방된 것인가. 그렇지 않다. 저자는 “파시즘이 현실 정치에서 악마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종료되지 않은 현상”이라면서 “오히려 진정한 위협은 ‘파시즘’과는 전혀 다른 이름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 미지의 어떤 것으로부터 올지 모른다”고 경고한다. 두 눈을 부릅뜨고 사회를 들여다보는 통찰력이 필요한 이유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